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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Jul 28. 2024

결이 다른 두근거림

feat. 초등 공부 봐주기



[하루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 유선경 지음]


최근에 시작한 나의 필사 도서이다.


그간 필사의 필요성은 절실히 느껴 왔지만 내 구미를 확 당길만한, 써도 써도 지루해지지 않을 필사용 원고를 찾지 못했었는데 날파리를 공중에서 때려잡을 수도 있을 같은 단단한 하드 커버와 적당한 채도의 푸른 하늘색 표지는 나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그렇게 따지더니 원고는 안 보고 골랐단 얘기)


여름 방학을 맞이한 5살, 8살 남자 어린이들의 교육 및 육아를 전담하고 있으므로 매일 필사할 순 없지만 시간의 틈새가 작게라도 벌어질 때마다 내 손은 아이의 필통 속 연필을 집어 이 책으로 건너간다.

또 첫째 아이가 오늘의 할당된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을 때 나는 의식적으로 이 필사 도서를 집어 아이의 근처에 앉아 필사를 시도한다.


책과 연필을 들고 아이와 함께 앉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효과가 있다.

아이가 공부할 때 엄마도 공부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연출하여 학습 분위기 조성에 일조할 수 있으며

아이도 공부하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가까이 있는 엄마에게 쉽게 도움을 요청하며 함께 공부할 수 있다.

자 여기까지가 엄마가 아이와 함께 공부하면서 얻는 유익이고,

내가 요즘 초등 1학년 아이와 함께 공부하면서 겪는 실제 사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아이가 하루에 할 공부는 예전 그 어느 날 의욕과 집중력을 가지고 앉은자리에서 모두 끝냈을 때 35분 정도

소요되는 분량이라는 실제 데이터가 있다.

그리고 아이와 나는 방학에 앞서 서로 합의 하에 방학 중 공부 계획표를 만들어 방에 붙이고 열심히 해보자고 의지를 다지는 과정도 마쳤다.


대부분의 많은 날들에서 나는 아이를 일단 책상에 앉히는 것에서 이미 20분을 잡아먹고 들어간다.

어디서 그랬는데, 능동적 학습 습관을 잡아줘야 한다고.

시키지 않아도 자기 공부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앉아 공부하는 아이가 재미있게 공부한다고.

그러려면 중요한 것이 동기를 심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아, 오늘도 이것을 공부할 때 네가 살기가 왜 편해지는지, 이걸 배우면 뭐가 도움이 되는지, 하다못해 이거 다 하면 지렁이 젤리(최애)  등등 갖은 감언이설로 동기만 심어주다가 큰 바늘이 4칸을 지나가 버렸다.


어찌어찌 앉은 아이는 '연필낙하병'이 발병했다.

필통에서 연필을 꺼내 교재로 가져오면서 툭, 떨어뜨린 연필을 주워 올리다 책상에 부딪혀 다시 툭,

줍는 것을 제지하고 다른 연필을 꺼내주면 그걸 잡다가 툭, 겨우 겨우 문제를 하나 읽으면서 줄을 치다가 돌연 몸을 왼쪽으로 돌려 앉으면서 툭,

가만히 지켜봐 주면 책상 아래엔 여기저기 억울하게 낙하된 연필들이 뻗어있다.

교재에서 갖가지 색으로 칠해보라는 문제가 나오면 책상 밑에선 억울하게 낙하된 색연필과 연필들의 콜라보 향연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미 머릿속에 다른 놀이를 구상 중인 아이에게 눈앞의 공부거리들은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는 짧은 지문도 읽기 어려워하고 눈앞에 답이 뻔히 있는 것을 찾지 못하고 나를 호출한다.


"엄마 이거 어려워"


뭐가 어렵나 들여다보면 답을 옆에 두고 떠먹여 주는 수준.

8살 국어이니 문제가 꼬여있을 수도, 함정이 있을 수도 없다.

잘 읽었나를 알아보기 위한 문제라서 그냥 본문을 보고 적으면 되는 것이다.


어렵단다.


나는 정정한다.

"어려운 게 아니고 하기 싫은 거야"


정색한 나의 반응에 아이는 마지못해 다시 교재로 시선을 떨어 뜨리고, 이내 히잉 하는 소리를 시작으로 거실에 징징거리는 울음이 퍼진다. 갑자기 어제 동생이 자기를 때렸는데 거기가 아프단다.


할 수 있는 것을 아는데 하지 않는 것을 성질대로 응징하지 않고 인내로 지켜보고 있는 것은

정말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런 광경 앞에서 필사를?

앞서 내가 아이의 공부 시간에 맞춰 필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한다고 언급했던 이유다.

뚜껑 열린 머리와 김 뿜어대는 콧구멍의 화난 코뿔소가 되어 있는 나는 펼쳐둔 책 속 오늘의 필사 원고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권대용 산문 <두근거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두근거린다. 씨앗은 땅 속에서 두근거리고 꽃들은

햇빛을 만나 두근거리고 물방울은 구름을 만나 두근거리고 나무는

바람을 만나 두근거리고 나는 당신을 만나 두근거린다. 두근거림

속에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있다. 그러면서 두근거리는 것들은

성장한다.




씨앗과 속이 만나 열매를 맺고 꽃들이 햇빛을 만나 잎을 활짝 열물방울이 구름을 만나 시원한 비를 내리고 나무가 바람을 만나 이글거리는 더위 살랑이는 나무 그늘이 되어 주듯 내가 너를 만나 두근거릴 때 우린 기분 좋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아름답고 예쁜 산문.


그리고 그날 내가 한 필사(아닌 필사)



"나도 늘 두근거린다. 나의 두근거림은 설렘도 아니요 달콤하고 새로운 것은 더더욱 아니요

잔뜩 쌓인 홧더미가 폭발할 듯 위태로이 들숨과 날숨을 내쉬며 진동하는 그런 두근거림인 것이다."




권대웅 시인은 두근거림을 통해 피어나는 상호간의 성장을 그려내었다.

아이의 자주적 공부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근처에 자리한 나의 결이 다른 두근거림은 무엇을 피어낼까.

아름답고 설레는 성장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나는 두근거림 끝 코뿔소의 콧김을 멈추었고 아이는 결국 할당된 공부를 마쳤으며 우린 뒤풀이하듯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꺼내 입안 가득 시원함을 머금는것으로 그 시간의 언덕을 넘어왔으니 그만큼의 성장은 피어냈다 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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