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다 1
주말 내내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가 백색소음이 되어 거리의 모든 소음을 거둬들인다. 비의 발걸음이 혼란했던 마음의 발자국을 한걸음 한걸음 거두고 땅 끝으로 사라져간다. 비의 발자국을 세노라니 어느 사이 나는 비와 하나가 된다. 비는 내가 되고 나는 비가 되어 무경계의 세상에 놓인다.
독서하기에 좋은 날이다. 구소은 장편소설 <검은 모래>를 완독 했다. 때마침, “해금과 한태주는 서로에게 깊이 스며들었다.”라는 문장을 만난다. 함께 하는 대상이 너무 아름답고 소중해서 그 순간, 자신을 잊고 그 대상에 스르르 녹아드는 것. 우리는 이것을 ‘스며든다’라고 말한다. 곧 ‘사랑’의 다른 표현인 것도 같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되는’ 순간들을 스쳐왔을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순간들을 지나왔을까?
뉴진스 하니가 부른 도쿄돔 라이브 실황인 푸른 산호초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10번씩 듣는 어느 60대 남성의 루틴, 자전거를 타고 평화누리길을 달리다 너무 아름다운 석양을 만나 자신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숨 막힌 자연과의 물아일체의 경험을 한 사람,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에 빠져 모든 여가 시간을 그 수십 편의 드라마에 헌신하는 남자, 이처럼 우리는 내 소중한 것들에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고, 비를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영화를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대상에 스며들어가는 연속성으로 우리는 삶을 이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며든 순간들에 내 영혼을 편히 뉘어 마음의 발자국을 씻어 냈던 것처럼, 현대의 우리는 사랑해서 스며든 일상의 순간들로 부터 살아갈 힘을 얻는것은 아닐까?
어느 소중한 것들에 스며드는 하루를 바래 본다. 오늘 나는 무엇에 스며들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