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쓰고 싶은 이야기는 넘쳐난다. 워낙 생각의 홍수 속에서 헤엄치는 인생이라, 주변에 온갖 아이디어가 둥둥 떠다니기 때문이다. 그물만 펼치면 하루에 수십 개도 건질 수 있다.
문제는 그중 온전한 놈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개중 쓸 만해 보이는 게 있어서 건져서 닦고 말리고 고쳐 보아도, 결국은 힘만 쪽 빠진 채로 애써 건지고 고친 것을 창고에 다시 던져 버릴 때가 많다. 그래서 언제나 창고=저장함만 터져나간다.
더 골치 아픈 건, 무엇이든 막상 손보고 말려서 전원을 넣어보기 전에는 그게 쓸 만한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 글쓰기의 절반 이상은 헛수고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모른다.
이런 내가, 비록 공저지만, 작년 추석 즈음 에세이집을 출간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 다음에 만나면 출판사 대표님께 꼭 물어볼 생각이다. 왜 나를 공저자로 점찍으셨냐고. 나한테서 무엇을 보셨던 거냐고. 막상 원고를 쓰겠다고 생각하자 글이 줄줄 나왔던 것도 참 신기하다. 그러고 보면, 브런치는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키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쭉 훑어보며 어떤 글이 제일 많은지 따져보았다. 예상대로 1위가 독후감이었고 2위가 일기였다. 아무래도 책이나 영화, 드라마, 음악처럼 내 하릴없는 생각의 방향을 잡아줄 매개가 있으면 글쓰기가 훨씬 쉬워지는 것 같다.
한편 일기의 주제는 내 삶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별 볼 일 없지만 누구보다 일을 사랑하는 11년 차 번역가, 평범한 회사원의 아내이자 열혈 사춘기 아들의 엄마, 세상 모든 일의 이치를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이상주의자 INFJ.
방금 신청서를 접수하고 오는 길이다.
종종 느끼지만 참 신기한 일이다.
신청서란에 글을 쓰기 전에는 잘 모른다. 내가 왜 작가 신청을 해서 글을 쓰려는지.
고민을 누군가에게 다 털어놓기 전에는 잘 모른다. 내가 고민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정해진 독자와 편집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기 전에는 잘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어쩌면 내 안에 할 이야기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그런 의미에서 작가에게는 남의 타율성 도움과 평가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플랫폼의 '입회 신청서', 책 출판이라는 일정한 목표, 어느 정도 정리된 방향성, 두서없는 이야기를 끈기 있게 들어줄 친구, 평가하고 공감해 줄 독자.
얼마 전에 "돌아올 곳이 있으면 여행이고 돌아올 곳이 없으면 방랑이다."라는 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