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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e Feb 12. 2024

아버지의 십자가

아버지를 닮은

   

“딸, 아버지 십자가 찾았어.”

“진짜? 아.. 너무 잘 됐다!! 어디서 찾았어?”

“안방 장롱 서랍 안에 잘 두었더라고.”

“근데 그걸 왜 몰랐지?”

“같이 있던 달력에 돌돌 말아둬서 안 보였어. 오늘 서랍 정리하다 보니 나와서 한테 제일 먼저 전화하는 거야.”

“아.. 너무 잘 됐다! 사실 엄마가 하도 걱정해서 나도 말 안 했는데 너무 찜찜했거든. 엄마 이제 맘 편히 자겠네.”  

   

설 명절을 앞두고 전화한 엄마가 대뜸 아버지 십자가를 찾았다고 한다. 엄마만큼은 아니겠지만 마음 한구석 막혔던 뭔가가 쑥 내려가고 있었다. 아버지도 알면 좋아하시겠지. 기억도 못하시겠지만..   

  





집수리   

  

지난여름 친정에 갔는데 엄마가 부채(글자가 빼곡히 적힌) 하나를 내밀었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나는 습관적인 부채질을 시작했다.  

     

“무슨 부채야? 엄마, 전기세 신경 쓰지 말고 더울 땐 에어컨 틀어”     

“응, 놀이터에 앉아있는데 누가 와서 하나씩 주고 가더라고. 집수리를 해준다나. 전화번호 있으니 신청하라고.”     


부채질을 멈추고 자세히 보니 혼자 사는 노인들이나 형편이 어려운 수급자들에게 겨울철 난방을 위한 창문 등을 교체해 주는 집수리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홀로 지내는 엄마 집에 들어설 때마다 마주 보이는 거실(이랄 수도 없이 작은 공간의) 창문 모서리에 피기 시작한 곰팡이(누런 벽지 위로)가 신경 쓰이는 중이라 연락을 했다. 전화를 받은 이는 엄마의 신상을 묻고는 접수는 되었고 지원대상이 되면 연락을 해주겠노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 일을 잊을 즈음 조만간 설치 일정을 위한 연락이 갈 거라고 전화가 왔다. 거실과 안방 창문 두 개를 이중창으로 교체하고 그 면의 도배를 새로 해주는 것인데 천장도 해주실 수 있나 부탁을 드리니 지원예산을 참고해 가능하면 천장까지 해 주시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정이 잡혔다.  

   

엄마 집은 방 두 개와 거실 겸 주방이 하나로 붙어있는 작은 빌라다. 안쪽 방은 장롱과 병원용(요양원에 들어가시기 전까지 아버지가 사용한) 침대, 벽으로 마주한 작은방은 냉장고와 작은 책장 등이 있다. 수리 일정은 두 팀의 작업으로 아침에 1팀이 와서 창틀을 교체하고 오후에 2팀이 와서 도배를 한다고 했다.

    

아침 일찍 1팀이 도착했다. 막상 눈앞에서 보니 창문을 교체하는 건 생각 보다 큰일이었다. 좁은 집안에서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하는 작업이니 먼지도 많았다. 결국 오며 가며 작업에 방해만 되어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음료와 간식을 넣어 드리고 엄마와 우리 집으로 왔다.  

    

엄마의 재촉에도 버티다 늦은 오후(대강 끝나지 않았을까 싶어) 엄마 집으로 왔을 때 거실 창문은 바뀌고 안방 창문은 새것으로 바꾸는 중이었다. 2팀(도배하는)은 밖에서 창문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예상 보다 늘어진 작업속도에 지쳐가는 표정이 역력했다) 었다. 창문 교체를 위해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고 도배를 위한 1차 작업(기존 도배지를 뜯은)까지 군데군데 해 놓아 집안은 벌집을 쑤신 듯 엉망진창(제 자리에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이었다. 밤이 되어도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앉을 곳 없는 먼지 속에 엄마를 둘 수 없어 집 앞 놀이터로 나왔다. 정자에 앉은 엄마는 춥다며 몸을 움츠렸다. 좁은 공간 여기저기 교체한 창문에 도배용품에 뜯어낸 도배지까지, 도저히 집에 가 옷을 챙길 상황이 아니었다. 근처 사는 동생에게 연락을 하니 제부가 엄마를 모시러 왔다. 작업 중인 분들에게 다시 간식을 챙겨드리고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마친 후 문단속까지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간 엄마 집은 새 창문과 하얀 도배지로 바뀌고 잔손은 많이 가나 비교적 원래의 모습을 갖춘 상태로 정리되어 있었다. 무엇 보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보이던 곰팡이 핀 모서리가 보이지 않아 좋았다. 문제는 사소한 잡기들을 제 자리로 정리하다 일어났다.   


 십자가가 보이지 않아      

     

“근데.. 아버지 십자가가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네.”   

  

대충 걸린 액자를 이리저리 옮기던 엄마가 불안한 눈빛으로 아버지 십자가가 안 보인다고 말했다. 거실 벽에 늘 걸려있던 녹색의 싸구려 플라스틱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가 어딘가(요즘 생각하니 동묘가 아니었을까 싶다)에서 사 왔다는 두 개의 십자가(전에 엄마에게 그 얘기를 듣고 그중 하나를 내가 가져와 우리 집 거실에 걸어두었다).     

 

“에이, 어디 있겠지. 너무 잘 둬서 못 찾는 걸 거야.”

“그런가? 아니 이렇게 깊숙이 있을 리가 없는데..”     


그날 우리는 십자가를 찾지 못했다. 작업을 한 두 팀에게 전화를 해도 1팀은 벽에 걸린 것들은 도배 팀에서 치웠다 하고 도배 팀은 십자가가 걸린 것은 기억하나 이후 둔 곳은 액자와 같이 두었을 거라면서 뜯어낸 도배지에 들어갔는지 확인해 준다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원목으로 된 더 좋은 것을 사서 걸어드렸지만 엄마의 근심은 줄지 않았다. 십자가가 집에서 사라졌다는 걸 내내 불안해했다. 누군가 사용하면 몰라도 행여 밟아 깨지기라도 했으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거라면서 힘들어한 것이다. 나는 엄마와 다른 마음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아버지가 길에 주저앉아 십자가를 골랐을 모습이 환영처럼 한동안 따라다녔다. 아버지의 십자가가 사라진 것이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의 삶에 영향이라도 미칠 것 같아 불안했다.      


아버지를 닮은 십자가를 찾았다   

       

그런 아버지의 십자가를 찾은 것이다. 잘 쓰지 않는 안방 장롱 서랍을 정리하려고 열었는데 달력에 돌돌 만 십자가가 있었다고 엄마는 말했다. 전화기 너머 엄마의 안도한 얼굴이 보였다. 도배를 하던 분도 십자가를 귀히 여겨 잘 둔다고 하곤 기억을 못 한 것이다. 나는 그분의 신앙이 기독교일 거라고 감히 확신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칠도 다 벗겨진 플라스틱 십자가를 그리 아껴 두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설 명절에 만난 엄마가 십자가 둘 중 하나를 내게 가져가라고 했다. 일초의 고민 없이 아버지의 십자가를 골랐다. 높이 걸려있을 땐 몰랐는데 속이 빈 플라스틱에 정면엔 십자가 형태를 따라 금박 띠를 붙인, 오랜 시간 칠도 벗겨지고 테두리는 거무스름하게 변색된, 고달픈 아버지의 삶을 닮은 십자가였다.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거뭇한 십자가를 정성껏 닦아 거실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었다. 마음이 놓인다. 왠지 안심이 된다. 아무도 눈독 들이지 않을 낡고 닳은 아버지의 십자가가 눈부신 빛이 되어 내게 속삭였다.


“다 잘 될 거야, 걱정 말고 행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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