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최고 유소년 육상 캠프, 세인패트릭스 고등학교, 그리고 브라더 콤
지금 머무는 곳은 수많은 세계적 선수들을 배출한 St. Patrick’s Highschool 입니다. 30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유소년 육상 캠프’에 유일하게 한국인(+외국인)으로서 참가하고 있죠. 캠프는 1976년에 이텐에 선생님으로 왔던 ‘케냐 육상의 대부’라고 불리는 브라더 콤이 시작했습니다. 그의 밑에서, 그리고 이 캠프에서 훈련하고 성장하여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선수들은 수십명에 달합니다.
캠프는 매년 4월, 그리고 12월에 진행됩니다. 케냐 공교육 학교의 방학, 그리고 케냐 내부, 아프리카 크로스 컨츄리, 육상 대회 시즌에 맞춰져 있죠. 4월 캠프는 4월 방학에 맞춰서 4월 8일 월요일에 시작했었습니다. 시작하기 전 주말에 각지에서 케냐에서 내로라 하는 유소년 선수들이 도착했죠. 5km 을 14분 00초, 13분 49초 뛰는 남자 선수들부터, 15분 40초 뛰는 여자 선수들까지. 입이 떡 벌어지는 기량을 가진, 쟁쟁한 10대 선수들입니다.
유소년 선수들의 가정 형편은 러닝화를 살 수 있을 만큼 좋지 않다고 합니다. 하루 3끼를 챙겨 먹기도 쉽지 않다고 하네요. 다행히 캠프에 필요한 숙박, 음식등에 관해서는 아디다스에서의 금전적 지원과, 캠프에서 훈련하고 나서 나중에 성공을 거둔 선수들의 개인 지원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옷들과 신발들은 아디다스에서 지원하는 것들, 그리고 이텐 마을에 훈련하러 혹은 휴양을 하러 온 외국인들이 기부하고 간 것들을 유소년 선수들에게 전달합니다.
유소년 선수들은 기숙사에서 지냅니다. 2층 침대 여러 개가 일렬로 늘어져 있는 공간입니다. 기숙사 건물 바깥에 공용 화장실이 있습니다. 많지 않은 옷들은 스스로 손빨래를 합니다. 쉽지 않은 생활입니다. 이곳의 삶은 문명의 손길이 많이 거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렇기 때문에 부족하고 힘든 생활이 섞여져 있습니다.
저는 이 유소년 선수들 중에서도 ‘느린’ 편에 속한 여자 선수들 그룹에 껴서 훈련을 하고 코칭을 배우고 있습니다. 뉴스레터 #2 에서 소개해드린 것 처럼, 매일 새벽, 아침, 오후 훈련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훈련 사이 사이, 그리고 차와 밥을 먹을 때 선수들과 대화를 하곤 합니다. 미국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는 선수들, 아이폰 하나 갖다 줄 수 없냐는 남자 아이, 그리고 긴 제 머리카락이 마냥 신기한 아이들까지, 다양한 대화를 합니다. 미국 대학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도울 수 없을까, 대화를 했는데. 이메일이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하고, 학교에 컴퓨터가 없어서 컴퓨터로 인터넷을 접해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멘붕이 왔습니다. 슬프지만, 저의 영향력의 밖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유소년 선수들에게 달리기는 삶을 바꿀 기회입니다. 1960년 대만 해도, 케냐는 이제 막 독립한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앞서있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케냐는 여러 면에서 매우 뒤처져 있습니다. 이곳 캠프와 학교를 관리하는 경비원의 월급은 약 15만원인데, 이 정도의 월급도 ‘훌륭한’ 월급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달리기 선수로써 성공하면 수천만 원, 많으면 억에 달하는 상금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케냐 경찰, 육군, 공군, 해군 등에 속해서 월급 30~40만원을 받으면서 훈련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달리기는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기회인 거죠. 갑자기 늘어난 운동량과 고지대에 적응 때문인지, 잠으로 휴식을 취하다 항상 훈련에 5분, 10분 늦는 저에 비해, 선수들은 항상 20분 전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라도 더 배우고, 조금이라도 더 기량을 높이고, 코치들의 눈에 띄고 싶어 합니다.
벌써 캠프의 마지막 주입니다. 캠프는 내일, 26일에 끝납니다. 선수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하루에 1, 2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집안일과 농작 일을 도와야 해서, 제대로 훈련을 할 수 없기도 합니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훈련을 이어가고, 집중을 잃지 않는 선수들은 기량을 유지하고 더욱 발전 시킬 겁니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프로 선수들을 양성하는 여러 캠프 중 한 곳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캠프 안에서도 수많은 노력 끝에, 세계적 대회에서 우승 할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은 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길, 세계 최고가 되는 길은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열정, 집중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유소년 캠프가 끝난 후에 이곳에는 프로 선수로 활동하는 선수들과 저만 남게 됩니다. 브로콤은 10명 이하의 프로 선수들을 코칭합니다. 그 이상은 선수들의 성장에 필요한 관리와 관계 쌓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더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프로 선수로 활동하는 선수들의 이력과 실력은 세계 최고급입니다. 로드 10km를 30분 30초에 뛰는 여자 선수부터, 26분 46초를 뛴 남자 선수(Ronex Kipruto)까지. 옆에서 이 선수들이 정말 ‘천천히’ 뛸 때 같이 뛰고, 빨리 달릴 때는 저의 페이스에 맞는 훈련을 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Ronex는 다음 주에 프랑스에서 15km 대회에 나갑니다. 그래서 오늘 Robert와 12km 마지막 고강도 훈련을 했는데, 35분 30초로 끊었다고 합니다. 2,400m의 고지대에서…
이번 주 일요일은 런던 마라톤이 있습니다. 대중메체들은 모파라와 킵쵸게의 대결로 몰아가는데, 솔직히 모파라는 아직 마라톤에서는 킵쵸게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킵쵸게는 지금까지 11번의 마라톤을 뛰었고, 10번 우승했습니다. 5km 와 10km 육상에서 모파라는 진정한 제왕이였지만, 마라톤에서는 아직 숙성기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너무 쉬운 예측이지만… 킵쵸게의 완승을 예상해봅니다 (별개로 한가지 놀라운 점은, 킵쵸게가 모파라보다 1살 어리다는겁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는 체린 선생님과 진서 님이 엘도렛에 도착하십니다. 오랜만에 익숙한 얼굴들을 볼 생각에 들뜹니다. 같이 사파리를 가고, 마블: 엔드게임도 보고, 엘도렛 시내에 나가서 시내는 어떤지 구경도 하려 합니다. 어느새 케냐에서의 시간도 9주 만이 남았습니다. 가끔 한국 음식, 달콤한 쿠키,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이 너무도 먹고 싶은 것 빼고는, 이곳의 생활에 완전 적응한 것 같습니다. 좋은 날씨에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김성우 드림
*인스타 비디오: '이지'런을 하는 과정을 고프로로 찍어 봤어요. 이텐의 경치를 만끽 하실 수 있습니다
브로콤(케냐 달리기의 대부)의 철학과 케냐 선수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어요브로콤의 코칭 철학, 케냐 선수들 캠프, 성장 과정 등을 엿볼 수 있는 최고의 다큐멘터리에요. (영상보기)
막상 케냐에 오니 �맨발달리기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케냐의 도로에는 돌들이 많아서, 비브람과 이곳에서 싸게 구입한 중고 나이키 러닝화를 섞어 신고 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로마 올림픽과 도쿄 올림픽에서 맨발로 마라톤 우승을 차지했던 비킬라 선수의 영상을 소개합니다. (영상보기)
저번 뉴스레터에서 간략히 소개한 내용을 영상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영어로 만들었지만, 쉬운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재밌게 봐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9가지 이유들 하나 하나씩 파고드는 글과 영상도 준비해보려합니다. (영상보기)
*본 글은 2019년 4월 부터 6월까지 약 3개월 동안 이텐 케냐에서 달리기를 배우며 생활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적은 글입니다. 이텐에서 생활하면서 한 주에 글 하나를 썼으며, 제 개인 뉴스레터에 담아 구독자분들께 발송하였습니다. 브런치에는 처음으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은 책 <마인드풀러닝:케냐 이텐에서 찾은 나를 위한 달리기>에 편집되어 에필로그로 들어가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