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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용 Dec 13. 2018

지용시선 첫 번째

문학동네 시인선 001. 최승호 시집 <아메바>

                                                

우락부락한 우럭 두 마리가 수족관 안에서 격렬하게 치고받고 싸우고 있다
 곧 죽을 텐데 죽도록 싸우다니!
하긴 멍하게 있다가
멍하니 죽는 꼴도 우습다 
                
p. 36 '횟집' 中


 문학동네시인선 001. 최승호 <아메바>


한줄평
새로운 시도와 극적 흐름의 구성, 불친절함과 친절함의 적절한 균형을 갖춘 시집.  



시인 최승호


54년생, 비극적 현실인식으로 환경문제를 주로 다루어 생태시인이라고 불린다. 시집 <대설주의보>에 실린 ‘북어’가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2009년 수능 국어영역에 자신의 시가 실린 문제를 원작자인 자신이 다 틀렸다며 한국 교육과 수능제도에 대해 비판해 더욱 화제가 된 시인.


그런 점에서 시집 표지가 검은색인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주관적인 시집 소개


문학동네 시인선의 첫 번째 시집인 최승호의 <아메바>는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시인이 그동안 발표한 시집에서 발췌한 문장과, 그 문장에서 새롭게 파생된 4개의 이야기를 한 페이지에 모아놓았다. 그래서 왼쪽에는 발췌된 문장이 있고, 오른쪽에는 그 문장에서 파생된 새로운 이야기가 적혀있다. 시인은 새롭게 파생된 이야기를 ‘아메바’라고 칭한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아메바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최승호의 시를 보면 소재에 대한 면밀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그 점은 이 시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과일바구니’,‘달빛’,‘쥐’,‘배꼽’,‘횟집’ 등 특정 소재를 시의 제목으로 사용하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제목을 염두해두고 시를 읽어나가면 보다 쉽게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다.      


최승호의 문체는 현실적인 주제를 다루는 많은 시인들이 그러하듯 직설적이다. 하지만 직설적이라고 해서 쉽게 이해된다는 것은 아니다.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글이 반,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맥락의 글이 반 정도로 구성되어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이 시집에 있는 표현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 시인이 젊은 시절 썼던 글에 비하면 정교함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사회적인 이슈를 주제로 쓰는 직설적인 시는 명쾌하거나 통쾌한 맛이 있어야하는데 이도저도 아닌 미적지근한 글들이 꽤 자리하고 있으며, 뜻을 알기 어려운 난해한 내용의 글들이 개연성 없이 엮여있는 느낌이다. 의미라는 것이 ‘독자가 느끼는 그대로의 것’이라고는 하나, 적어도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접점은 제공해야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의 많은 글들은 ‘불친절’하다.     



반면 보다 ‘친절’한 글들 중 다소 유치하게 느껴지는 글도 상당수다. 지구온난화를 다루는 글(p,67 ‘나는 간빙기의 인간’)에서 냉장고와 북극곰, 펭귄을 직접적으로 엮은 표현은 사실 다소 충격적이었다. 너무 불친절한 글도 문제지만 반대로 너무 친절한 글은 ‘시’가 갖는 새로운 표현의 맛을 반감시키는 것 같다.     


물론 최승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표현들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p.36의 ‘횟집’에서 고기와 사람의 대결, 고기와 고기의 대결을 그린 글은 주목할 만하다. 어짜피 끝간에는 죽을 공통 운명을 지닌 존재들끼리 치열하게 다투는 모습이 웃긴 동시에, 그렇다고 멍하게 있다가 멍하니 죽는 꼴도 우습다는 표현이 꽤 인상적이다. 


p.53 ‘우리는’에서 ‘우리가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난다면 서로를 더 잘 바라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라거나, p.80 ‘언젠가 낙타가’에서 ‘언젠가 내가 죽으면 죽었다고 말하지 말고 태어나기 전의 달빛 속으로 산보를 나갔다고 말해주기 바란다’와 같은 낭만적인 표현도 눈에 띈다. 


시집에서 간간이 비교적 낭만적이고 따뜻한 표현들이 눈에 띄는데 그 이유는 시집의 구성에 있다.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흐름의 주를 이루고, 그 사이 사이 이따금 낭만적인 글이 구성되어 있어 시의 표현이 보다 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시인 혹은 편집인이 시집을 구성할 때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대목이다.      


기존에 쓰인 문장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파생시키는 구성이나 시인 특유의 직설적이고 명쾌한 사회 비판이 눈에 띄는 시집이다.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싶거나, 점점 만연체가 되고 있는 요즘 젊은 시인들의 문체에 지친 분들에게 추천한다. 비교적 속 시원하게 읽을 수 있는 시집이다.  

    


+ 시인은 북어를 정말이지 좋아하는 듯하다. 이 시집에 ‘북어’가 몇 번 나오는지 세어보는 것도 시집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시집 하이라이트


그동안 시는 나의 돛이자 덫이었다. 시가 부풀어 나를 설레게 했고 사해를 항해하게 했으며 닻 내릴 곳은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일깨워주었다.

(p.48 ‘그동안’ 中)               







한줄평


새로운 시도와 극적 흐름의 구성, 불친절함과 친절함의 적절한 균형을 갖춘 시집      


평점 이유


소재에 대한 면밀한 관찰력이 돋보이나 글의 소재에 비해 표현력의 날카로움이 부족하다. 표현의 정교함이 떨어지다보니 사회적인 이슈를 주제로 다루는 시가 주는 통쾌함이 덜하다. 미적지근하거나, 뜻을 알기 어려운 난해한 내용의 글이 개연성 없이 엮여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과 곳곳에 최승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직설적인 표현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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