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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ug 15. 2022

어떤 연대의 현장

에콰도르 이야기 (1)

키토(Quito)에 처음 도착한 날, 속이 울렁거렸다. 머리도 약간 어지러운 것 같았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휴고와 첫인사를 나누고 그의 차로 이동하던 도중 갑자기 그랬다. 휴고 입에서 쏟아지는 스페인어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메슥거릴 것까지야. 나는 죄 없는 몸을 책망하며 조수석 등받이를 뒤로 젖혔다.


몸이 힘들어서 잠시만 누워 있겠다고 휴고한테 말했다. 물론 그때 내가 한 말은 말도 안 되는 스페인어였거나, 영어를 잔뜩 섞어놓고는 스페인어라고 우기는 ‘스팽글리쉬’였을 것이다. 아무튼 휴고는 초면에 등받이부터 젖히고 보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고 다정히, 그러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내가 겪은 건 고산병. 키토의 고도가 해발 2,850미터란 것도 모르고 무작정 에콰도르에 오고 본 대가를 싸게 치른 셈이었다.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다. 배우긴 배웠지만 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력서에는 할 줄 안다고 적었다. 스페인어로 쓴 자기소개서까지 번듯이 제출했다. 내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마침내 키토에 나타난 날, 휴고는 그 자기소개서가 내 실력으로 완성된 글이 아니었음을 단박에 알아차렸을 다. 사실은 파라과이에서 자란 학교 선배가 성심성의껏 첨삭해준 글이었음을 구태여 밝힐 필요도 없었을 만큼.


첫날은 키토의 사보이 호텔에서 묵었다. 휴고가 예약해 준 숙소였다. 방에선 시내 야경이 내려다 보였다. 깜깜한 도시를 수놓은 촘촘한 불빛들이 반짝였다. 잉카의 후예가 살아 숨 쉬는 고결한 땅임을 스스로 증언하듯 명멸하던 개별의 불빛들. 나는 그 불빛들을 세어 보았다. 그리고 되뇌었다. 남미, 남미, 남미. 내가 언어까지 배워가며 오매불망 그려왔던 대륙. 바로 그 땅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밤이 꿈만 같았다. 키토 야경과 호텔 방 전경을 사진에 담아 아빠한테 이메일로 보냈다. 아빠 나 무사히 도착했어. ^^


다음날 휴고는 나를 리오밤바(Riobamba)로 데려갔다. 리오밤바는 키토에서 남쪽으로 이백 킬로미터쯤 떨어진 도시였다. 적도를 지나는 에콰도르를 가리켜 지구의 심장이라 일컫는다면, 에콰도르의 심장은 리오밤바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도를 펼쳐보면 언제나 리오밤바가 에콰도르 영토의 정중앙에서 제 이름을 위엄스럽게 뽐내고 있어서였다.


리오밤바에서 제일 먼저 들른 곳은 휴고가 운영하는 재단의 사무소. 이곳은 내가 1년 간 인턴으로 일하게 될 베이스캠프였다.


직원 세 명이 나를 반겼다. 모두 삼십 대 즘 돼 보이는 여성들이었다. 얼굴에 표정이 많지 않아 언뜻 무섭게도 보이던 루쓰. 아낌없이 활짝 펼친 미소 너머로 치아 교정기가 깜찍하게 보이던 파니. 왠지 모르게 오래된 친구 같은 편안함이 느껴지던 마르타. 나는 내 스페인어 실력이 훌륭하지 않아 미안하다고 인사했다. 그들은 그런 것에 마음 쓸 필요 없다고, 여기서 함께 부대끼다 보면 언어야 저절로 늘 거라고 말해줬다. 그 말에 마음이 썩 놓였다.


그다음 들른 곳은 조금 특별했다. 마르타가 모는 버건디색 SUV를 타고 안데스 산맥 골짜기를 굽이굽이 돌아 도착한 곳. 재단이 지원하는 마을들의 마을 대표 대회가 열리는 현장이었다.


학교 강당에는 벌써 마을 대표들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내가 재단 홈페이지에서 봤던 사진 속 모습 그대로였다. 어두운 색상의 중절모 또는 흰색 중산모를 쓰고, 무릎보다 긴 검정 치마를 입은 여인들. 피부색은 루쓰, 파니, 마르타의 피부색보다 짙었고, 상체엔 강렬한 유채색의 숄을 야무지게 두르고 있었다. 이들은 리오밤바 인근의 안데스 산지 마을에 사는 원주민 여성들이었다. 휴고가 경영하는 재단은 바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 단체였다.


‘마이크로크레디트’란 소규모 창업 자금을 무담보로 대출해주는 자활 지원 사업이다. 고리대금업에 삶을 저당 잡힌 극빈층에 안정적인 수익 창출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가난의 고리를 끊어내게 한다는 게 사업 내용의 골자.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가 1976년 '그라민 은행'을 설립함으로써 구현사업 모델은 2000년대에 전 세계보급돼 있었다. 2005년 유엔이 지정한 ‘세계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해', 2006년 무하마드 유누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해였. 그리고 2010년은 이런 범지구적 흐름에 힘입어 내가 에콰도르의 마이크로크레디트 단체에 몸을 던진 해였다.


회의가 시작됐다. 마을을 대표해서 현장에 참석한 여인들이 차례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발표했다. 자기 마을의 창업 현황, 사업 유지 현황 같은 것들을 보고하는 거였다. 조금은 긴장된 목소리로 제 몫의 발표를 책임감 있게 끝마치는 여인들. 그 모습에서 엿보이는 정결한 의지가 어떤 화려한 프레젠테이션보다 설득적이었다.


물론 스페인어를 글로만 배워 온 나는 강당 공기 중에 범람하듯 쏟아지는 말들의 5할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재단 사업이 비단 여인들의 가계를 넉넉히 할 뿐 아니라, 이들 한 명 한 명을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시키는 역할도 한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해볼 수 있었다. 실제로 전 세계의 많은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사업 이익이 가계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여성을 지원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이로써 양성 평등의 가치가 사각지대로 밀려난 문화권에서 여성 지위 향상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회의가 끝나갈 즘 강당 안에 고기 냄새가 풍겨 왔다. 냄새를 좇아 강당 밖으로 나갔다. 운동장 한편에서 여인들이 요릴 하고 있었다. 마을 대표단과 재단 직원들이 먹을 식사라고 했다. 나는 입 안 가득 고인 침을 꼴깍 삼켰다. 말도 못 알아듣는 불량 인턴 주제에 시장기는 꼬박꼬박 돌았다.


그런데 바비큐 그릴 위에 있는 고기의 생김새가 영 생소했다. 성인 팔뚝 크기는 되는 동물의 몸이 쇠꼬챙이에 꽂힌 채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동물 얼굴에 온전히 남아있는 눈, 코, 입의 형상 어쩐지 거북스러워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나는 고기를 굽던 여인한테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여인은 “꾸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못 알아들었다는 제스처를 취해 보이자 주변에 있던 여인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더더욱 영문을 몰라하며 서있는 내게 마르타가 다가와 말했다. “디쓰 이즈 기니피그!” 나는 하마터면 뒤로 까무러칠 뻔했다. 여인들이 폭소했다.


알고 보니 에콰도르에선 기니피그가 식용 가축의 일종이었다. 역사적으로 이곳 원주민들에게는 기니피그, 즉 '꾸이'가 긴요하고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어 왔던 것. 마르타는 얼이 빠져 있는 나를 절반은 달래고 절반은 놀리며, 이곳에서 꾸이를 대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의미인지를 거듭 설명했다. 마르타 설명대로라면 나는 출근 첫날부터 원주민식 정찬을 제대로 대접받은 초유의 신입 사원이 되는 셈이었다. 그 정찬의 비주얼이 얼마나 해괴했는지와는 별개로.


사무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마르타는 내게 말했다. 우리 재단의 사업은 원주민 여성들의 경제 활동을 원조할 뿐 아니라, 그들의 교육, 건강, 인권, 복지를 종합적으로 지원한다고. 나아가서는 그들 가정과 지역 사회와 원주민 사회의 단계적 발전을 지향한다고. 나는 학급 회의에 참석한 듯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마을 현황을 발표하던 사랑스러운 여인들을 떠올렸다. 접시에 담긴 꾸이에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울상인 날 보며 박장대소하던 귀여운 여인들을 떠올렸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이들과 순조롭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이들이 걷는 길 위에 꽃잎 한 장이라도 더 얹기 위해서는, 스페인어 실력을 적극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마르타가 이런 내 다짐을 읽었는지 웃으며 나를 다독였다. 남은 시간은 많다고, 몇 달 뒤의 나는 지금과 많이 달라져있을 거라고.


애당초 라과이 출신 선배가 첨삭해준 양질의 자기소개서를 휴고에게 발송에 앞서, 나는 책장에 꽂혀 있던 스페인어 사전을 펼쳐 보았었다. 그리고 휴고가 운영하는 재단의 이름이 가진 의미를 더듬더듬 찾아보았었다. 마르타가 몬 차가 사무소에 도착하자 문득 그때 기억이 강렬하게 떠올랐다. 재단 이름은 'Fundación GSD', 즉 'GSD 재단'. GSD는 ‘Género, Solidaridad y Desarrollo’의 약칭이었다. 스페인어 초보에게는 너무 고급인 어휘들로만 이루어진 이름. 사전이 알려준 그 뜻은 다음과 같았다.


‘젠더, 연대, 그리고 발전.’


나는 사무소에 걸린 간판을 바라보며 그 이름을 찬찬히 되짚어 보았다. 이름 속에선 어휘들이 제법 순차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쉼표 대신 화살표를 붙여도 뜻이 통할 법한 단정한 선형 구조를 이루어.


간판에 새겨진 정직한 알파벳들 위로 오늘 만나고 온 여인들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나는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세어보았다. 그리고 되뇌었다. 젠더, 연대, 발전. 내가 언어까지 배워가며 오매불망 그려왔던 대륙의 작은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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