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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Jay Jun 20. 2020

영어 원서를 통해 얻은 삶의 지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나는 어릴 적부터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란 항상 착하고 바르며, 순응해야 한다는 틀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는 내게 “네가 언니니까”라는 말을 늘 전제조건으로 깔아놓으시곤 했다. 

 초등학생 때였다. 명절을 맞아 엄마는 멀리 사는 친척에게 전화를 돌리고 계셨다. 나는 그 옆에서 불안함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쭈뼛쭈뼛 서 있었다. 엄마가 내게 전화기를 바꾸어 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명절 인사 담당은 바로 나였다. 부모님께서는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라며 늘 내게 수화기를 넘기셨다. 이런 건 첫째가 하는 거라고.



 


“그래, 정아니? 갓난아기였을 때 봤었는데. 많이 컸겠구나.”

 “네,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렸던 내게는 이 간단한 인사를 하는 것도 마음의 짐이었다.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들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거니와 일단 수화기 넘어 들리는 목소리 자체가 낯설고 불편했다. 그런 나는 늘 동생이 부러웠다. 두 살 터울의 동생은 단 한 번도 수화기를 건네받은 적이 없다. 그저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나를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은 내 몫이었다. 한 번은 부모님께 “하기 싫어요. 진아한테 시키세요.”라고 말했다가 정말 호되게 혼난 적이 있었다. 해야 할 도리는 하라는 엄마의 불호령에 나는 결국 참고 있던 울음이 터져버렸다. 

 '내 속마음을 표현하는 건 잘못된 거구나.'

 나는 점점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꾹꾹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 하나만 참으면 모든 사람이 편하고 모든 일이 잘 해결된다는 생각 속에 갇혀 지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좋은 평을 가질 수 있도록 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괴로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착각 속에 내 감정을 묻고 살다 보니 어느새 ‘나’라는 사람이 소모되고 있던 것이다. 사람들의 의견에 끌려다니기 바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진짜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아는 나’보다도 ‘남들이 바라보는 나’에 더 신경을 곤두세웠다. 남들이 보는 관점에 따라 이런 사람도 되었다가 저런 사람도 되었다가 했다. 어느샌가 ‘나’라는 사람은 고유한 색이 없는 무색 인간이 되어있었다. 점점 내 자존감은 바닥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 두려웠다. 나에게 들이대는 잣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곤 했다. ‘사람들이 평가하는 나’가 ‘진정한 나’라고 여겼다. 특히 나에 대해 안 좋은 평가를 하면 나는 정말로 형편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가정을 꾸리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작년 가을, 첫 번째 책 <영알못, 외항사 승무원 & 1등 영어 강사 된 공부법>을 막 출간했을 때였다. 그토록 마음속으로 염원하던 꿈인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순간이었다. 기쁘고 행복하기만 해도 모자란 순간인데 사실 나는 그 반대의 감정만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내 머릿속과 가슴을 꽉 채운 건 두려움과 불안함이었다. 


 블로그와 SNS를 통해 간간이 글을 쓰다가 책이라는 형태로 내 생각과 글이 사람들에게 내던져지는 게 무서웠다. ‘혹시라도 내 글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만으로도 손발이 차가워지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서평 이벤트를 진행할 때도 설레는 마음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서평을 확인하는 그 순간까지도 괴로웠다. 

 다행히도 날 세운 비판을 한 독자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남들에게 평가받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사람들과 글로써 꾸준히 소통하고 싶은 나는 그 두려움을 깨지 않으면 절대로 꾸준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Dying  to be me 필사 노트와 원서>


 Trying to be anything or anyone else didn’t make me better- it just deprived me of my true self. It kept others from experiencing me for who I am, and it deprived me of interacting authentically with them. 다른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되려는 노력은 나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진정한 나 자신을 앗아가기만 했다. 그럴수록 다른 이들이 내 진정한 모습을 경험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을 뿐이었고, 내가 그들과 진정으로 만나지 못하게 만들 뿐이었다.

 얼마 전 읽은 <Dying to be me> 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멋진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크게 공감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왜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며, 싫은 소리 듣는 것은 더욱 힘들어하는지. 아마도 좋은 사람, 피해 주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행복하게 육아할 수 없다. 가끔 못난 엄마가 되어도 그게 나 자신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또한, 좋은 작가가 되려고만 하기보다는 나만의 색깔을 지닌 작가가 훨씬 매력적일 것이다. 좀 실수할 수도 있고 사람들의 질타를 받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게 기쁨을 주는 일을 찾고 하는 것이다. 남들이 수군대는 이야기보다 내 마음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고,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게 진정한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다. 쉽지는 않지만, 나는 오늘도 묵묵히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내 갈 길을 가야겠다. 이런 깨달음을 얻게 해준 <Dying to be me>를 쓴 저자에게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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