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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Jay Jun 05. 2020

엄마표 영어 말고 엄마를 위한 영어

나를 위한 영어공부를 했을 뿐인데


영어 교육 뭐 시키는 거 있어? 아니면 영어 유치원에 보낼 생각이야?

 주변에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엄마들을 만나면 종종 아이의 영어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나는 매번 딱히 그럴싸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아이에게 영어 동요나 CD를 틀어주는 것이 전부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다수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내게 훈수 아닌 훈수를 둔다. 0세부터 3세 사이에 영어를 접해야 모국어처럼 받아들인다나 어쩐다나. 그 이론을 모르는 엄마가 어디 있으랴. 그저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을 뿐이었다.






 요즘 ‘엄마표 영어’ 콘텐츠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 그만큼 영어 조기교육을 시키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사실 나도 조기교육에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러나 엄마표 영어를 당장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모국어 수준을 완벽히 갖춘 뒤에 영어를 접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자꾸 결정을 미루다 보니 아이는 어느새 3살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의 영어 교육보다 나의 앞날이 더 걱정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표 영어 말고 나를 위해서 영어 공부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철저히 나 자신에게 초점을 둔 영어공부 말이다. 내가 읽고 싶은 책으로 공부하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영어로 접하며, 내가 하고 싶은 방식대로 영어를 공부하다 보면 내가 꿈꾸는 미래에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저 엄마로만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아이의 영어보다 내 영어가 우선이었던 거다. 이기적인 엄마라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쯤이야 아무런 상관없다. 가족이 1순위라면 나는 0순위니까.



영어 원서 <Option B> 와 <Charlotte's Web>

 

내 차의 라디오 주파수는 언제나 102.7 MHz이다. AFKN eagle FM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이다. 아이와 함께 차로 이동할 때도 자동차의 주파수는 변함없다. 운전하는 동안에는 아이는 바깥 구경하느라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또한, 내 다리를 잡고 졸졸 쫓아다니지도 않는다. 그 황금 같은 시간을 어떻게든 영어에 투자하고 싶었다. 물론, 운전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영어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아기 상어’ 노래를 틀어줄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단 몇 초도 안 돼서 그 생각은 사라진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에. 육아 맘에게는 시간이 귀하니까.     


 집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엔 주로 영어책을 읽는다. 이전 글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때는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방식으로 독서를 하지 않는다. 소리를 크게 내어 책을 읽는다. 바로 영어 낭독 훈련이다. 이 방법을 통해 발음 교정이 가능하고 영어문장을 내 목소리로 들으며 빨리 익힐 수 있다. 영어 원서나 신문, 영화 스크립트 등 다양한 자료를 이용한다. 종종 어린이 영어 그림책을 읽기도 하는데, 이 역시 아이의 영어 교육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온전히 나의 낭독 훈련을 위해서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날도 있다. 얼른 읽고 싶고 표지만 봐도 마음이 설레던 영어 원서가 꼴도 보기 싫을 때. 내 앞날이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 싶을 때.

 한 번은 나와의 다짐을 지키고자 원서를 펼쳤는데 집중이 전혀 되지 않았다. 눈으로 간신히 글자만 좇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형광펜으로 표시하며 필사하고 문장 구조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열정적인 나의 모습은 없었다. 대신 그 자리엔 무기력한 정신상태와 유체 이탈한 것만 같은 내 몸뚱이만 있었을 뿐이다.


 이런 순간에 꼭 필요한 건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이다. 억지로 영어 원서나 신문 읽기를 이어가지 않는다. 많이 지쳐있거나 무기력할 때는 영어공부의 패턴에 변화를 준다. 꾸준히 해오던 방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영어를 접하는 편이다. 읽고 있던 원서를 영화로 본다던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엔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calliou’ 영어 DVD를 시청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위해 만든 영상물이지만, 성인들이 봐도 재미가 있고 배울만한 표현과 단어들이 꽤 등장한다.


 One! Two! Five!

 몇 달 전 내 귀를 의심할 만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들이 하루아침에 영어로 숫자를 세고 있던 것이다. 내가 가르쳐 준 건 아니었다. 엄마표 영어고 뭐고 나 자신만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내가 무얼 가르쳤겠는가. 그래서 더욱 신기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했다.


 며칠 뒤, 이런 적도 있었다. 아이가 얌전히 잘 놀길래 이때다 싶어 영어공부를 하려고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리고 나는 영어 신문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세 문장쯤 읽어 내려갔을 때, 갑자기 아이가 내 쪽을 쳐다보더니 “One! Two! Four! Five! Mommy! Great!”이라며 자신이 발음하기 쉬운 영어단어는 죄다 내뱉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한국어로 말을 했을 텐데 갑자기 영어라니!! 꺅!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몇 번이고 숫자 세기를 시켜보기도 했다.


  나는 잠시 후 상황판단을 할 수 있었다. 아이는 어느 순간 한국어와 영어의 소리를 구분하고 있었다. 내가 영어 공부한답시고 노력했던 행동들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준 것이다. 아이에게 영어로 혼잣말로 떠들고, 영어로 책을 읽고, 영어 동요를 불러주고, 영어 라디오를 들으면서 나뿐만 아니라 아이 역시 영어에 많이 노출된 것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엄마표 영어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탈것 관련 책을 좋아한다. 원서든 한국어 책이든 탈것들만 나오면 만사 OK.






 A CRAB said to her son, “Why do you walk so one-sided, my child? It is far ore becoming to go straight forward.” The young Crab replied : “Quit true, dear Mother; and if you will show me the straight way, I will promise to walk in it.” The Mother tried in vain, and submitted without remonstrance to the reproof of her child. Example is more powerful than precept.      



  “엄마, 나를 가르치려거든 먼저 엄마부터 똑바로 걸어보세요. 내가 보고 따라 하게요!” 

 <이솝우화>에 나오는 ‘게와 어미 게’ 이야기다.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의 영어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는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늘 하던 방식대로 꾸준히 영어 공부하면 아이도 언젠간 영어에 익숙해질 거라는 것을. 아이는 엄마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하지 않았던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부모 먼저 독서를 해야 한다는 묵자의 말처럼 엄마인 내가 먼저 영어를 좋아하고 공부하면 아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나를 위한 영어공부가 엄마표 영어의 첫걸음을 떼게 해 주었으니 이젠 꾸준히 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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