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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Nov 06. 2023

13 '워치'가 중요한 게 아니다(2)


시계와 스마트워치


 시계, 그러니까 손목시계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여러분은 손목시계를 왜 착용하시는가? 시간을 확인하려고? 정말 그러한가? 손목시계를 착용하는 사람들도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곤 한다. 또, 만약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만으로 손목시계를 착용한다면 초고가 시계들의 존재이유를 설명하기 부족하다. 잠실이나 명동의 시계 매장에 줄을 서보라. 몇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수천 만원의 롤렉스는 없어서 못 산다. 정말 단지 시간 확인을 목적으로 손목시계를 차는가?


hoo 반 1억짜리 시계를 차고 현재 시각을 폰으로 확인해 내 시간은 진짜 금

(수퍼비 'Rap Legend' 가사 중)


 처음 스마트워치가 대중 앞에 등장했을 때, 제조사들은 '시계'에 주목했다. 기존의 손목시계들이 끽해야 시간 확인에 날짜 확인 정도였으니 '스마트워치'는 그보다 똑똑해야 한다는 점 말이다. '스마트'라는 단어가 붙었기 때문에 이미 대중화된 스마트폰과 유사한 기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애플워치 시리즈9는 '터블탭'이라는 기능을 강조한다.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워치는 10년 동안 시장을 누비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여러 세부적인 기능들이 추가되어 왔다. 삼성의 경우 '기어'에서 '갤럭시 워치'로 브랜드 재편을 했고, 삼성페이와 같은 기능을 탑재했다. 애플워치는 최근 광고에서 보여주듯 손동작을 감지하여 기능을 수행하는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이렇듯 초창기에 비해 더 많은 기능을 탑재하게 되고, 더 세련되어지는 스마트워치가 독자 여러분의 손목에도 이미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1편에서처럼 한 가지 더 물어보겠다. 이 기능들을 전부 다 사용하시는가? 




글쓴이의 TMI


 나의 경우, 항상 스마트워치를 착용한다. 모델은 갤럭시워치 액티브2. 가장 큰 용도는 걸음 수 측정이다. 전화는 진동 알림만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용한다. 가장 처음 써본 스마트워치인 갤럭시기어2네오 때는 스마트워치로 카카오톡을 확인했었다. 지금은 스마트워치의 카카오톡은 알림을 꺼두었다. 집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있지 않을 때 시계를 보거나 날짜를 확인한다. 이외에는 스마트워치의 어떤 기능도 쓰지 않는다.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으면, 종종 스마트폰을 두고 움직여야 할 때도 걸음 수가 누락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운동량 측정이 가능하다. 일반 손목시계보다 훨씬 가볍고 착용감이 좋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다. 


글쓴이가 처음 착용한 스마트워치인 '갤럭시기어2네오'(좌), 현재 주로 착용하는 스마트워치인 '갤럭시워치 액티브2'


 만약 스마트워치가 '시간을 확인하는 것'에 덧붙여 '스마트한 기능'을 누리기 위한 목적이라면 나에게 손목시계의 다른 소비 수요는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겠지만, 여전히 나는 여러 브랜드 시계를 관심 갖고 본다. 게다가 관심 갖고 구경하는 이 브랜드 시계들은 걸음 수를 측정하거나 전화를 받거나 하는 기능은커녕 정확도 면에서도 스마트워치보다 뒤처진다. 


 이제 손목시계라는 소비재로 돌아와 보자.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손목시계가 가져야 할 중요 덕목이다. 스마트워치도 마찬가지다. 스마트워치는 그 이름 때문에 시간을 확인하는 것 이외의 스마트한 기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어쩌면 작은 부분이다. 




뭘 보여줄 것인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착용하는 파텍 필립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착용하는 스와치는 시차만 다를 뿐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로는 동일하다. 그러나 이 두 시계가 보여주는 그 외의 것들은 천지차이다. 이 두 시계는 '스마트'워치가 아니기 때문에 기능의 차이를 나눌 것도 없다.(기술의 차이를 세세하게 늘어놓을 순 있겠지만.) 


토트넘 홋스퍼의 주장이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인 손흥민 선수가 착용한 파텍 필립의 시계.(좌) 파텍 필립을 가사에서도 언급한 래퍼 사이먼 도미닉.(우)


 부자의 대명사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파텍 필립이라는 시계는 그의 부를 증명하는 좋은 수단이다. 파텍 필립은 '그냥 부자'들도 구매하기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짜 부자'들이 대기를 걸어야 살 수 있고, 신분까지 증명되어야 한다. 빈 살만도 파텍 필립을 착용한다. 화려한 장신구로 스스로를 치장하는 래퍼들에게 '롤렉스'는 성공의 상징과도 같다. 그러나 '그냥 래퍼'가 아닌 사이먼 도미닉은 이런 가사도 썼다. "롤렉스 아니라고 이건 파텍."('GOTT' 가사 중)


교황 프란치스코. 손목의 시계는 스와치의 모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박하고 검소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교황으로도 평가받는다. 스와치는 이런 프란치스코 교황의 여러 특별한 상징 중 하나다. 


 자, 길게 돌아왔다. 이 정도 얘기했으면 독자들은 이제 알 수 있다. 

 손목시계의 범주에 스마트워치도 속해있다. 스마트워치가 '뭘 할 수 있는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스마트워치도 '뭘 보여줄지'의 범주에서 힘을 발휘한다. 




설명이 사라진다


스마트폰의 이야기에서 '애플은 설명하지 않는다'는 골자를 얘기했다. 스마트워치도 마찬가지다. 애플워치는 사실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애플워치를 착용했다는 자체가 '나는 애플 브랜드를 사용하는 사람입니다.'를 보여준다. 소비자들은 그 자체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명품들이 소비자에게 권하는 길과 같은 코스인데, 판매자도 소비자도 윈-윈 하는 셈이다. 명품시계를 구매하지 않고도 착용자가 그에 준하는 브랜드 만족도를 느끼기 때문이다.


2021년의 스마트워치 기사들. 삼성에게 호의적인 기사들은 '설명'하지만 애플워치에 대한 기사들은 '결과'를 드러낸다.(출처 : 네이버뉴스 검색)


 브랜드 아이덴티티 측면에서, 점유율과는 별개로 삼성은 여전히 애플의 패스트 팔로워이다. 소비자들의 1차 제품군인 스마트폰에서, 2차 제품군인 스마트워치로 넘어가면 이 두께감은 더욱 옅어진다. 


 기능이 중요한지 아닌지는 이렇게 가정만 해볼 수 있지만, 애플이 마음먹으면 증명은 할 수 있다. 

 간단하다. 현재의 애플워치와 동일한 모양의 시계를 출시하는 것이다. 단, 모든 '스마트' 기능을 빼고. 시계와 날짜 정도만 되게 한다. 가격대는 생산 단가를 고려하여 5만 원 내외로 출시한다.(삼성의 스마트밴드가 이 가격대이다. '스마트'인데도.) 

 꽤 팔릴 것 같지 않은가? 

 갤럭시워치는 어떨까. 동일한 방법으로 출시했을 때, 잘 팔릴 것 같은가?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는 아이폰과 애플워치가 이야기의 굉장히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한다. 박찬욱 감독이 아이폰 유저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갤럭시와 갤럭시워치로는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요소를 완전히 구현해 내지 못할 것 같다. 

 애플은 이렇게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버렸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는 '아이폰', '애플워치', '에어팟'이 거의 조연급으로 등장한다.(출처 : 영화 <헤어질 결심> 이미지)


 고객들이 제품 자체나 기능보다, 막연하고 추상적이지만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와 힘. 

 그것이 소프트 파워이다. 

 스마트폰에서 그렇듯, 애플은 스마트워치 시장에서의 소프트 파워를 견고하게 구축했다. 아이폰을 오랫동안 사용해 온 유저들이 다른 브랜드로 넘어갈 확률만큼이나, 애플워치를 사용하는 유저들이 다른 브랜드의 스마트워치를 구매할 확률은 지극히 낮아 보인다. 


('워치가 중요한 게 아니다'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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