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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인석 Nov 20. 2023

15 스타벅스는 아침 일곱 시에 문을 연다(2)


익숙함 편향


 비교정치학 이론 중 '유권자는 익숙한 사람을 뽑는다'는 이론이 있다. 당연해 보이는 말처럼 보이지만 이 말을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무서운 말이다. 다음 논리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초선보다 재선이 쉽다." 


 선거에서 '험지'라고 불리는 곳에, 각 당들은 유명세가 뚜렷한 정치인을 출마시키려고 한다. 같은 이치다. 유권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익숙한 사람을 선택지로 주어야 유리하다. 물론 여기서의 유명세가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부분에서' 발생한 것이면 논외다. 예를 들어 탈세나 범법으로 유명한 정치인을 험지에 출마시키는 건 '그 지역에서는 패배하겠다'는 뜻처럼 보이는 것.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스타벅스의 로고(왼쪽)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괴물에 모티브를 두고 있다.(오른쪽) 팔이라고 알고 있던 부분이 '두 개의 꼬리'임을 알 수 있다.

 스타벅스는 익숙함의 편향이라는 배를 잘 타고 있다. 스타벅스의 CI부터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이 익숙함이 어느 정도냐면, 시골 카페들 중 초록색 원형의 세이렌 비스무리한 간판을 달고 있는 곳들이 있는데 이들 가게를 보면 초행자들도 '카페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다. 


 내부 구조나 메뉴 구성도 마찬가지. 크고 단단한 나무테이블이 스타벅스 중앙에는 꼭 존재하며, 디저트 냉장고의 커튼도 동일하다. 카페에서 바나 클럽 같은 화려함이나 새로움을 느끼려는 고객은 많지 않다. 스타벅스는 편안함, 익숙함을 지속적으로 투여한다. 




이번에도 선점 효과


 사실 스타벅스가 익숙함 편향을 누리게 된 데는 이 시리즈에서 계속 등장하는 '선점 효과'를 또 설명할 수밖에 없다. 아메리카노가 메인 메뉴인 미국 느낌의 첫 세대 프랜차이즈를 스타벅스가 열었다는 점. 초선에 성공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제 이십 년을 넘긴 한국 프랜차이즈 카페의 역사에서 스타벅스는 계속 재선을 성공하고 있다. 



미국 시애틀의 스타벅스 1호점(왼쪽)과 한국 이대역의 스타벅스 한국 1호점(오른쪽)

 

익숙함과 선점의 힘을 스타벅스 측은 매우 잘 인지하고 있다. 메뉴도, 시스템도, 운영도 계속 천천히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지만, 갑작스러운 혁신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잘하고 있는 부분을 계속 잘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 또한 당연한 말처럼 들릴지 모른다. 

 '잘하는 거 계속하는 게 당연한 거지!'


 그러나 스타벅스는 운영 주체와 지분 구조가 초창기와는 크게 바뀌었다. 스타벅스에서 결제 후 결제내역을 확인해 보면 다소 생소한 '에스시케이컴퍼니(SCK COMPANY)'가 보인다. 스타벅스의 운영 주체인데, 한국에서 스타벅스를 운영하는 법인명이다. 스타벅스 본사가 지분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법인명으로 기존 '스타벅스커피코리아'라는 명칭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 스타벅스 지분 변화.(출처 : 시사저널)

 한국 스타벅스, 그러니까 에스시케이컴퍼니의 지분 구조는 이마트와 싱가포르 투자청이 각각 67.5%와 32.5%로 나눠갖고 있으며 미국 스타벅스의 지분은 없다. 스타벅스의 라이선스는 가지고 있지만 법인 간의 관계는 없는, 다른 회사인 것. 


 내가 카페 사장이라고 가정해 보자. 큰 고심 끝에 동네에서 제법 인기가 있는 카페를 인수했다. 동네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지금까지 이 카페 꽤 괜찮았는데, 사장이 달라졌다는데?" 카페 사장은 뭔가 달라진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까? 앞 사장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 내가 사장이 되고 나서는 이런 것이 바뀐다, 같은 것들 말이다. 

 한국 스타벅스는 무리해서 이런 자신감을 과시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왜 에스시케이컴퍼니는 자주적인 운영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존 스타벅스의 운영방침을 고수하는 것일까. 




스타벅스는 스타벅스다


 스타벅스의 이미지는 '미국의 커피'에서 하나둘씩 점점 확산된다. '한 손에는 전공서적을 들고 반대편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잔을 들고 있는 뉴욕의 대학생',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고 전화를 하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직장인의 반대편 손에 들려있는 커피' 같은 형태로 구체화된다. 


 스타벅스는 이렇게 형성된 이미지를 잘 알고 있다.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브랜드를 파는 걸 잘 알고 있으며, 지향한다. 그래서 스타벅스는 바꾸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시스템이나 플랫폼이 바뀔 수는 있지만 주요한 철학은 바꾸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1. 진동벨이 없다. 

 유독 스타벅스는 진동벨이 없다. 2층, 3층짜리 스타벅스에서는 눈치껏 내려와야 한다. 스타벅스 측은 이렇게 설명한다. 

 "파트너(스타벅스 직원)가 완성된 제품을 직접 전달하며 눈을 맞추는 게 스타벅스의 전통이다." 


2. 큰 나무테이블이 있다.

 카공족들에게 카페의 테이블은 신경 쓰이는 요소다. 그런 카공족들에게 스타벅스의 큰 나무테이블은 인기 자리이다. 흔들리지 않을뿐더러 아래쪽에는 콘센트까지 있다. 스타벅스의 문을 열면, 넓은 나무색 테이블에서 각자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3. 일찍 연다.

 동네 개인 카페들을 보자. 일찍 여는 곳은 아홉 시 정도에 연다.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일찍 여는 곳들이 여덟 시 정도에 연다. 스타벅스는 유독 일찍 연다. 보통 일곱 시에 오픈하고, 그보다 일찍 여는 지점들도 종종 보인다. 

 

 1, 2, 3번 이외에도 스타벅스의 여러 특징들이 있지만, 이 세 가지를 조합하면 다음과 같은 스타벅스의 이미지를 도출할 수 있다. 

 : 친절한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카페로서, 고객들의 편안한 공용공간과 근면한 삶을 돕는다.




 영화 <인턴>의 '벤'은 매일 아침 7시 15분마다 스타벅스에 간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그 시간의 스타벅스는 붐빈다. 이른 시간인데도 말이다. 미국의 바쁜 직장인들을 보여준다. 은퇴한 주인공은 그 공간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사회의 일원이 됨을 느낀다. 

영화 <인턴> 중.


 이번 편의 제목처럼 '스타벅스는 매일 아침 일곱 시에 연다'. '스타벅스는 어떠어떠한 곳입니다'라고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미 사람들은 스타벅스에 무언의 감정을 갖고 있다. 스타벅스는 이것을 깨려 하지 않는다. 반전 가득한 혁신만이 브랜드와 기업에 능사는 아니다. 잘 갖춰져 있는 긍정적인 소프트 파워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안정적으로 경영하는 것, 그것이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잘 해내고 있는 부분이다. 


('스타벅스는 아침 일곱 시에 문을 연다'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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