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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광용 Mar 14. 2024

만화도서관에서 떠올린 옛 기억

개학을 앞둔 지난 2월의 어느 날, 매일 도서관을 전전하던 앤과 나는 만화도서관엘 갔다.


주변에 큰 아파트라곤 없는 외진 동네에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웬만한 만화책은 다 있었고, 거의 다 새책 수준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창밖으론 아스라이 동천강이 보였다.



이곳에서 5분 거리쯤에 있는 집에서 6학년부터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이 동네는 우리 집의 흥망을 떠올리게 하는 동네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면서 우린 작은 아파트에서, 이곳에 2층 단독 주택을 매입해 이사 왔다. 그렇게 원하던 강아지도 마음껏 키우고, 여름엔 돗자리를 들고 동천강으로 나가 멱도 감았다.


고교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었고 결국 부도를 맞게 되었다.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내 컴퓨터, TV, 선풍기에도 빨간딱지가 붙었다. 빚쟁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고, 난 내 다락방에서 책을 보거나 일기를 썼다.


우리 집의 미래에 대해선 별 고민하진 않았던 거 같다. 그 고민은 부모님의 몫이었고, 난 회피든 생각이 없는 거든, 뭐라 이름 붙여도 좋을 무심한 태도로 고교시절을 보냈다.


고2쯤 집을 내주고, 우린 언덕 높은 곳의 작고 좁은 빌라로 이사를 갔다. 옥상에 오르면 하늘이 가까웠다. 나쁘지 않은 기억이 남았다.


나의 동네였던 산전. 그 동네에 생긴 만화도서관을, 남의 동네처럼 다녀왔던 날이었다. 도서관엘 갔다가 교육청 연수를 마친 아내와 합류하여 그 유명한 병영의 막창 골목에 가서 막창을 먹었다. 날이 흐리고, 마음은 아득했지만, 행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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