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이란 무엇인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고
아내가 주로 보는 '티빙'에 <패스트 라이브즈>가 올라와 있길래 봤다. 이 영화를 선택한 계기를 좀 설명해야 할 거 같다.
요즘 육아휴직 중이다. 휴직 첫 주엔 도서관 주변에서 점심을 사 먹었다. 월급의 반토막인 휴직수당을 받으면서 매번 사 먹는 건 무리라는 생각에, 집에 와서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는 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놓는데 이번엔 한국어로 된 콘텐츠를 보고 싶었다. 점심으로 구운 삼겹살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패스트 라이브즈>다.
이 영화가 셀린 송 감독의 화려한 데뷔작이란 걸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도 올랐다는 것도.
동양적 개념인 '인연'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어서 서양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는데, 한국의 로맨스 영화와 뭐가 다를지가 궁금했다.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어릴 적에 서로 좋아했던 남녀가 커서 다시 만나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해성과 나영은 어릴 적에 매일 붙어 다닐 정도로 친했고 이성적으로도 좋아했다. 나영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둘의 교제는 끊어진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페북을 통해 다시 연락이 닿게 되고, 한동안 연락하다가 다시 연락이 끊긴다. 30대 중반이 된 나이에 둘은 뉴욕에서 재회하게 된다. 나영의 옆엔 나영처럼 글을 쓰는 백인 남편이 있다. 그들은 잘 맞고 서로 다정하다. 그러나 해성을 만난 나영은 묘한 감정이 되살아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간이 약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맛이라고 할까. 코믹이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서사 같은 조미료를 싹 뺀 로맨스 영화. 건강식으론 훌륭하지만, 맛을 기대하는 이에겐 실망을 줄 수 있다. 취향에 따라 꽤 호불호가 있을 작품이라는 생각. 난 그런대로 재미나게 봤다.
영화를 보고서 가장 크게 생각이 든 건, 사랑의 '층위'에 대한 것이다. 나영은 현재 백인 남편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운명 같던 어릴 적 사랑 해성에게 강한 감정을 느끼고, 해성이 떠나자 남편 앞에서 눈물까지 흘린다. 나영의 행동은 현재 남편을 덜 사랑하기 때문에 나온 걸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 '층위'가 필요하다.
우리는 삶의 시기마다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고, 그건 각각의 층위에 각인된다. 그 층위 속의 사랑은, 현재의 사랑과 경쟁할 수 없다. 누가 더 좋은 거야?라고 물을 수 없다. 각각의 사랑은 해당 층위에서 가장 강렬하다. 나영이 만약 예전 층위의 강렬함을 따라, 현재 남편을 버리고 해성을 따라갔다면 어땠을까. 나영은 이내 자신의 감정이 식는 경험을 할 것이다. 현재의 층위로 옮겨온 과거의 사랑은 이식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층위의 사랑은, 그때의 토대와 배경, 환경 속에서 제일 풍성한 잎사귀를 달고 멀리 가지를 뻗기 때문이다.
난 가끔 과거의 인연을 그리워한다. 지금 만나도 애틋할 것이다. 그렇지만 만나지 않으면 더 애틋할 거라 생각한다. 내 삶의 층위마다 새겨진 강렬한 감정들은 서로에게 지지도 않고, 이기지도 못할 것이다. 그것들은 다만 그 시절의 산물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강렬한 빛을 발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지금의 내게 아무 의미 없는 건 아니다. 가끔씩 내 앞에 나타나서, 웃음이나 울음 같은, 환희나 서글픔 같은 감정을 일깨워준다.
운명적 사랑은, 시공을 초월한 단 하나의 것이라고 믿는 건 자유지만, 그런 믿음은 당신을 혼란에 빠뜨리고 헷갈리게 만들 것이다. 우린 단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은 그 시절의 나에게 최고였고, 여전히 내겐 그렇게 기억되고 있어요."라고. 모든 층위에서 동일하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영에겐 해성도, 현재의 남편도 다른 층위에서 운명적인 짝이었고, 어쩌면, 그다음 층위가 있다면, 그 안에서도 강렬하게 누군가를 사랑할 것이다. 이전 층위에서 얻은 모든 자산을 총동원해서. 순정이란 무엇인가. 그건 모든 층위를 초월한다는 뜻일까. 아니다. 해당 층위에서 순전하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사랑의 혼돈을 피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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