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The 8 show>
에잇! 소리 나게 만드는 쑈
넷플릭스 드라마 <더 에이트 쇼>를 봤다.
이 드라마는 류준열, 천우희, 박정민 등 요즘 대세 배우들이 다 나오고, <오징어 게임>과도 비견될 정도의 기대작이다. 감독은 누구인가. 바로 한재림이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여럿 찍었다. <우아한 세계>, <연애의 온도>, <관상>, <더킹> 등 재미있는 한국 영화 리스트에서 뺄 수 없는 작품들.
<더 에이트 쇼>의 내용은 이렇다. 어떤 쇼에 초대받은 8명의 사람들. 그들은 거기서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시간에 비례해서 돈을 받을 수 있다. 함께 힘을 합치면 공동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공동의 장소에 점점 줄어드는 타이머가 있는데, 시간이 다 지나면 늘어나던 돈도 거기서 멈출 것이다. 참가자들은 그 타이머의 시간을 늘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시간을 늘리려고 분투한다. 참가자들은, 위층일수록 받는 액수가 크고, 거주 공간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혜택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가장 위층 사람은 다른 참가자와 비교할 수 없는 특권을 갖고 있다. 점점 참가자 사이엔 사회처럼 계급이 생기고 갈등도 생기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재미있느냐? 대답은, 꽤 몰입감이 있었다. <오징어 게임>을 넘어섰느냐? 대답은, 많이 못 미친다. 인상적인 장면이나 여운을 던져주진 못했다는 게 총평이다.
예전에 들은 '비유'에 대한 말이 생각난다. 하나의 이야기가 메타포로만 작용한다면 그건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좋은 이야기는 1대 1의 알레고리를 넘어서 여러 해석의 여지를 준다고. 아마도 문지혁 소설가가 한 얘기였을 것이다.
<더 에이트 쇼>가 의미의 한계선을 넘지 못하고 범작에 머문 이유는, 이 이야기가,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 돈이 곧 계급이 되는 현상, 비인간화를 양산하는 구조적 모순 따위를 드러낼 목적으로만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 기발한 쇼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익히 아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떠오른다. 다른 의미도, 해석의 여지도 없다. 그 쇼 자체가 주는 다른 감흥이 없다. 그저 하나의 알레고리일 뿐이다. 이야기 전체가 분명한 목적을 향해 달음박질하므로, 이야기 속의 장면들은 독자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알레고리에만 복무한다. 여러 계급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을 갖고 분투할 뿐이다.
<오징어 게임>은 달랐나. 그 드라마도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하나의 알레고리였다는 건 비슷하다. 그렇지만 그 드라마에서는 세부적인 장면들 자체가 주는 감동과 독자성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이정재와 오영수 배우가 합을 맞췄던 '깐부 이야기'는 그 이야기 자체로도 꽤 훌륭한 정서적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야기 전체가 달려가는 방향과 별개로 개별적인 에피소드가 독자적인 정서를 가졌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더 에이트 쇼>는 그렇지 못하다. 결정적인 차이다.
천우희의 연기가 기존의 배역과는 차별성이 있어 신선하고, 류준열은 류준열스러운 배역이라 자연스럽다. 8부작을 지루하지 않고 속도감 있게 달려갈 수 있다. 재미는 있다. 그렇지만 결국, "에잇!"이라는 반응을 향해 달려가는 쑈일 뿐이다. 그래서 '더 에잇 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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