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캘리포니아산 김치찌개와 AI 글쓰기

저작권 단상

by 송광용

얼마 전, 마트에서 사 온 파를 자르다가, 난 문득 내 글이 도마 위에 올려진 장면을 상상했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내가 신중하게 선택해 다듬은 문장과, 밤을 새워가며 빚은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알고리즘에 흡수되어 어디선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 그건 마치 내가 정성껏 끓인 김치찌개가 이름만 바꿔 ‘캘리포니아산 뉴에이지 김치 스튜’로 팔리는 것을 보는 기분일 것이다. 국물 맛은 비슷한데, 간이 어딘지 낯선 음식을 맛보는 느낌.

며칠 전, 미국 저작권청은 OpenAI의 GPT와 협업해 집필한 책에 대해 “인공지능이 만든 부분은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없다”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 말인즉, AI가 만든 창작물은 주인이 없다는 뜻이다. 아무나 갖다 써도 항의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지난해에는 한 만화가가 미드저니를 활용해 만든 그래픽노블이 저작권 등록이 거부당하면서 논란이 된 적도 있었다. AI 저작물을 저작권의 울타리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만이 저작권 논란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일까. 궁극적인 질문은 이것인지 모른다. "그럼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서부터가 기계인가요?"

과연 어떤 요소를 저작권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더 인간적인 것?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가 떠오른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질문을 던진다. 모방하지 않고 독창적인 것? 요즘 그런 질문을 종종 하게 된다. 예컨대, 내가 쓴 문장이 내가 정말 생각해서 쓴 걸까? 아님 어디선가 본 걸 내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게 정말 내 고유의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건지, 무의식의 도둑질인지 판단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AI가 내 글을 가져다가 학습하고 새로운 창작물을 내놓은들, 그걸 온전한 내 것을 훔쳐갔다고 말할 수 있냐 말이다. 생각할수록 더 복잡해진다.

나도 종종 AI를 활용한다. 글의 제목을 정하거나, 글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릴 때 꽤 유용하다. 글을 쓰고 나서 맞춤법 검사를 하거나, 문장을 다듬는 일에 활용한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기도 한다. 그들은 AI가 사람 편집자만큼 글을 다듬는 수준이 좋다는 평가를 내린다. 점점 더 창작에 AI를 활용하는 사례는 늘어날 것이다. 언젠가 브런치에 이런 댓글이 달릴지도 모르겠다.

“이 글, 너무 좋아서 AI인 줄 알았어요!”

아직 그런 댓글은 모욕에 가까운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칭찬으로 받아들여질 날이 온다면, 그땐, AI 창작의 정의가 지금과는 달라졌다는 뜻이겠지. 확실한 건, AI의 존재는 이미 우리의 창작에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AI 저작물과 인간 저작물의 인식 경계를 또렷이 하려는 시도는, 기술의 문제보다, 아직은 윤리의 문제라는 얇은 빙판 위에 존재한다. 누가 얼마만큼 창작에 AI의 힘을 빌렸는지 판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저작권 윤리에만 기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표절의 기준처럼, AI 창작에도 객관적인 기준점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은 시점에, 윤리보다, 단단한 기술에 기반한 판별 기준이 나온다면 AI 저작권에 관한 많은 논란은 정리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썼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설사 그 글이 형편없더라도. 마치 직접 썬 파에 집에서 묵힌 김치, 딱 며칠 묵힌 돼지고기를 넣어 끓인 김치찌개처럼, 비록 투박하더라도 내 손의 흔적이 있는 그런 글 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캘리포니아산 뉴에이지 김치 스튜' 맛을 보고는, 내 김치찌개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도 도마 앞에 서서, 두부를 썰며 생각한다. 혹시 내 글도, 내 아이디어도, 어딘가에서 이렇게 잘게 잘리고 있지는 않을까. 누군가의 알고리즘 속에, 익명의 창고 속에 말이다. 그럴수록 더 간절해진다. ‘이건 분명히 내가 만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3회 한솔수북 선생님 동화 공모전 수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