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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dy An Mar 28. 2024

Time Travel to the Castles.

여행에 낭만을 허하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한 도시 속 시간 여행은 언제나 가능하다. 오스트리아 빈 중심가에서 D번 트램을 타면 링 슈트라세를 따라 빈의 남쪽으로 향한다. 과거 도시를 보호하던 성곽을 허물고 만든 넓은 도로가 빈의 링 슈트라세다. 의미와 가치를 가득 담고 있는 변화의 상징이자 도시 스스로 만들어낸 축복이랄까. 도심을 원형으로 감싸는 도로 위를 트램을 타고 누비노라니 사랑하는 도시 빈을 4D로 감상하는 것 같더라. 시선이 어느 곳을 향해도 아름답고 우아한 빈과 트램의 조합은 완전무결한 하모니와 다름없다. 고전식 트램을 타는 행운을 만나는 날이면 그날의 여행은 이미 완성형. 올라타자마자 순식간에 낭만에 젖어들기 때문이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 닳고 바랜 빛깔의 원목 의자, 창으로 새어든 햇빛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21세기의 어느 날, 20세기에 만들어진 고전식 트램을 타고, 18세기 벨베데레 궁으로 향하던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벨베데레 상궁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중앙 정원에, 정확히는 정원의 전망에 매료되고 말았다. 벨베데레의 원뜻인 ‘좋은 전망’의 가치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권력과 재력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전망과 경치인 것인가. 남쪽에서 바라본 빈은 놀랍게도 꽤 모던한 느낌이었다. 시간 여행의 묘미가 제대로 드러났다고나 할까. 시선을 다시 궁으로 돌렸다. 하늘을 가득 메운 하얀 구름 아래 에메랄드 빛을 띤 궁 지붕에서 내 마음을 송두리째 뺏아간 빈의 매력을 찾았다. 말과 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천한 언어로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을 빈의 매력, 즉 궁극의 고상함을 지붕에서 보았다니 이보다 더 엉뚱할 수 있는가. 그런데 여전히 빈을 추억할 때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 바로 벨베데레 궁의 지붕이라는 것.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내밀한 욕망이 형태와 색으로 표현된 것만 같더라. 내적 친밀감과 애착이 폭발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건축물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때가 종종 있는데, 그 묘한 순간을 감각할 때의 느낌을 사랑한다. 


신의 창조물이 인간이거늘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을 볼 때마다 감탄 너머 경이감이 든다. 그것도 3세기 전의 인간들이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이 만들어낸 궁 내부 건축미를 만끽하고 나니 기시감 마저 감돌았다. 거대한 층고 아래 계단을 오르며 궁의 심장부로 다가갈수록, 바로크 양식의 흔적을 음미하며 발걸음을 옮길수록 취기가 오르듯 얼떨떨했다. ‘무도회에 초대받은 여인의 긴장과 흥분 서린 마음이 딱 이렇지 않을까’라며 소리 없는 외침을 허공에 날렸다. 부끄러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이게 다 어릴 적 심취해 있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 탓 아니겠나. 유년 시절 무도회와 드레스를 꿈꿔보지 않은 자 누가 있겠냐며 긁적긁적. 1775년부터 벨베데레 궁은 황실 회화 전시장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합스부르크 왕가의 예술을 향한 열의와 품격을 엿볼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만난 작품이 무려 클림트의 <키스(The Kiss)>. 마치 황금비가 흩날리는 봄날 천국의 꽃밭에서 사랑의 맹세를 건네고 있는 듯한 연인의 키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화려한 작품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예상과는 달리 진실함과 고결함이었다. 숨죽인 채 클림트의 역작을 바라보며 연약한 존재인 우리 인간에게 사랑은 신이 내린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곁에서 내 손을 꽉 잡은 채 한마디 말없이 눈 맞춤을 건넨 연인에게서 진한 사랑의 기운이 전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클림트는 천상의 사랑을 경험했던 걸까. 그에게 사랑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례적인 태풍을 만나 잿빛을 띠던 10월의 어느 가을날 베를린. 비밀스러운 어두움과 시크한 회색 빛이 매력이란 걸 힘겹게 알아차릴 때 즈음 날씨 요정이 나타났다. 어둠과 비바람에 익숙해져 쨍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낯설기도 했지만, 궁전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을 마지막 날로 계획한 건 여행자의 혜안이었던 것인가. 베를린의 서쪽 샤를로텐부르크 지역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30여분 이동하면 동명의 궁전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꽤 로맨틱했다. 물론 사전에 미리 계산한 동선이었지만. 궁전의 이름도, 지역의 이름도 프로이센의 초대 국왕 프리드리히 1세의 아내 조피 샤를로테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왕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선물한 여름 별장이라니. 사랑의 향기가 짙을 것만 같은 베를린의 여름이 궁금해진다. 1600년경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18세기의 독일 궁전에서 21세기의 여행자인 내게 필요한 게 과연 ‘낭만’ 말고 또 뭐가 있을까? 


비교적 단조로운 겉모습과는 달리 궁전의 내부에선 대반전의 미학이 펼쳐졌다. 화려한 장식과 가구와 오브제들로 가득 차 있는 공간에선 예술을 향한 찬미와 동시에 극도의 사치스러움이 묻어났다. 반짝이는 대리석, 오색창연한 색이 입혀진 호화로운 벽지와 태피스트리는 물론 온통 금장식이 드리워진 문과 거울, 벽난로와 가구는 아름다움을 넘어 정신의 혼미를 일으켰다. 게다가 동양풍의 캐비닛과 조각상 그리고 모든 방에 압도적인 수로 채워져 있는 각양각색의 도자기는 샤를로테 왕비의 취향을 말해주고 있었다. 17세기 이후로 중국 및 일본 도자기를 향한 유럽 왕가의 애착과 수집이 굉장했다던 역사적 사실의 현장을 목도하니 감회가 이상했다. 화려함에 반해 의식이 흐릿해지기도 했지만 세기를 거슬러 권력자의 수집욕과 과시욕을 느끼고 나니 현기증이 났다. 감상과 감탄만 하고 있기엔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달까.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단면을 보는 듯했다. 샤를로테 왕비의 호화로운 취향의 흔적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거북하기도 한 양가감정을 직면하고 있던 걸까? 18세기로 껑충 떠난 시간 여행에서 조우한 뜻밖의 생각과 질문이었다. 미감을 넘치도록 느낀 덕에 감성은 가득 충전했지만 많은 물음표를 얻은 시간 여행이었다. 느낌표만 있는 건 재미없고말고. 물음표는 언제나 대환영이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비밀스럽게 존재하는 제3의 계절을 지나던 어느 해 9월의 코펜하겐. 여름의 싱그러움과 가을의 포근함이 한데 어우러진 코펜하겐의 공기와 분위기는 단정하고 다정했다. 빨리 걷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툭하면 만나는 공원과 정원에 발걸음도 마음도 속절없이 뺏기고 말았으니. 푸르고 높은 하늘 아래 햇살을 벗 삼아 20분 남짓 걸었을 뿐인데 만난 왕의 정원(Kongens Have). 이름이 갖는 힘은 역시 남다르지. 정원으로 몇 발걸음 옮긴 순간 특별한 곳으로 들어섰다는 느낌에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제대로 보고 느끼고 만끽하겠노라는 즐거운 결의와 함께. 왜인즉슨, 입구 안내문을 보니 로센보르 성이 채 완공되기도 전인 1606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만든 정원이라는 거 아니겠나. 머나먼 17세기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다. 우선 왕의 정원을 한참 동안 거닐어보아야겠다는 묘한 의무감이 피어올랐다. 하늘도 호수도 극강의 잔잔함을 자랑했고, 아름다운 정원의 조경은 심미안을 마구 자극했다. 진심으로 길을 잃고 싶었지만 어느새 맞은편에서 고아한 정취와 기품이 가득한 로센보르 성이 나를 맞이해 주는 거 아닌가. 이토록 편리하고 황홀한 시간 여행이라니, 거부할 방도가 있을까? 


로센보르 성의 첫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단아함이다. 왕의 궁전에 비할 만한 표현은 아니겠으나 기품도 화려함도 그리고 감도는 기운마저도 분명 단아한 거다. 마치 궁극의 적당함을 추구한 모습이랄까.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아름다움과 휘황찬란한 화려함도 분명 있었지만, 안팎의 건축 양식과 인테리어, 장식과 가구 등 모든 게 각각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듯 보였고 편안함 마저 자아냈다. 절묘한 조화인지 절제된 욕심인 건진 알 수 없었지만. 아니면 고전주의적 경향을 띠는 르네상스 건축 양식에서 내 취향이 평안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내밀한 나만의 취향 탐지기가 딱 맞는 주파수를 찾았던 것. 여행 내내 더듬이를 치켜세우며 깨어 있곤 했던 내 영혼과 감각이 잠시 닻을 내리고 쉼을 가지는 기분이었다. 17세기 코펜하겐의 정서와 영합하는 순간이었는지도. 


도시는 단연코 역사를 닮을 터인데 오늘날의 코펜하겐이 디자인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던 그 토대와 근원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느낀 대로의 해석과 유추지만 코펜하겐이 분명 로센보르 성 안에 있었다. 오랜 역사 속 디자인과 현재의 코펜하겐 디자인에서 이질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게 어쩌면 이 도시의 저력 아닐까. 성 안에는 복도가 참 많았는데 구석구석 걷다 보니 동선을 위한 복도 설계에 힘을 기울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 엿들으면 큰일 날 은밀한 일들이 참 많지 않았을까. 방마다 장식과 색이 다른 문도 참 매력적이었다. 마치 문을 열면 펼쳐질 세상의 예고편 같기도 하고. 문에 차이가 없었다면 몰래 드나들기 정말 힘들지 않았을까? 사랑에 빠진 이들이 분명 있었을 테지. 궁정 생활을 계속 상상하게 만드는 재미로 가득한 성의 구조가 흥미로웠다. 크고 넓기만 한 건 매력 없다. 뜻밖의 공간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타나는 게 진짜 매력이지.


유럽에서 여름이라는 계절이 갖는 위상은 남다르다. 자연도 사람도 다시 태어나는 듯한 계절. 싱그럽고 짙은 녹음, 뜨거운 태양, 따스하고 포근한 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오는 평화는 모두 여름의 다른 이름이다. 떠나보내기 아쉬워 붙잡고 싶던 여름의 끝자락 여전히 여름의 빛깔을 지니고 있던 빈으로 향했다. 17세기에 착공해 18세기 완공을 지나 19세기에 수정과 복원에 이르기까지의 장대한 건축 역사를 가진,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궁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기엔 여름이 제격 아니겠나. 빈의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살짝 벗어나면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여름 별장 쇤부른 궁을 만날 수 있다. 아무리 걸어가도 입구에 닿을 수 없을 듯한 광대한 대지와 궁의 규모에 먼저 압도당했다. 상상과는 달리 궁의 외관은 레몬빛을 띠는 노란색이었는데 마리아 테레지아 옐로로 불린다고 한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이자 유일한 여성 통치자였던 그녀가 택한 색이었다니 노란색이 자못 달리 보였다. 기존 관념과 편견이 깨지는 이런 순간이야말로 시간 여행의 짜릿함이자 희열이다.


궁을 마주하자마자 수많은 창문이 유독 눈에 띄었는데 방의 개수가 무려 1,441개라고 한다. 주로 높이 솟아 있는 여타의 궁들과는 다르게 낮고 길게 뻗어있는 궁의 자태에서 기세와 위엄이 느껴졌다. 높은 것만이 멋은 아니라는 것. 성의 내부에선 사진 촬영이 전면 금지돼 있었는데 되려 반가웠다. 강제로라도 스마트폰을 넣어두고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건 여행 중 최고의 특혜였다. 제일 기억나는 건 비현실적으로 크고 눈이 부시게 화려한 여제와 황제의 침대뿐이지만 어쩌랴. 기억의 저장소에서 다른 기억들이 숙성되고 있길 바라는 수밖에. 여름의 마지막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니 정원의 푸르름이 더욱 빛나고 있었다. 성의 후원으로 나가보니 미로 정원이 펼쳐져 있는 거 아닌가. 키를 훨씬 웃도는 넝쿨이 감겨 있는 파빌리온과 조경으로 어여쁘게 다듬어진 길을 지나며 숨을 고르고 여유를 누렸다. 이런 정원에서 매일 산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여, 여제도 공주도 아니지만 꿈과 희망은 버리지 않기로 하자. 


신비감을 머금고 있는 미로를 빠져나가니 오렌지나무와 야자수가 있는 거 아닌가. 연극의 새로운 막이 열리듯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바로 그 뒤로 쇤부른 오랑주리가 보였다. 온실로 사용됐다던 그곳에 호기심이 발동해 바로 안으로 향했고, 마침 ‘음악과 여성’이라는 주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다시 2세기를 껑충 뛰어넘어 현대미술로 건너온 셈. 예상도 못한 이 만남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음악회 무대 장식이 설치 미술로 구현돼 있었고, 역사 속 여성 음악인들의 계보가 악보 위 음표처럼 표현돼 있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수천 장의 악보가 바닥에 전시돼 있었는데, 밟고 지나려니 음악이라는 대지를 지르밟고 우뚝 선 이 시대의 멋진 여성이 된 것 같았다. 끝없이 펼쳐진 전시를 따라가다가 장관을 만났다.  햇살이 스며드는 창가 곁에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는 거 아닌가. 그것도 레드 카펫 위에! 누구든 연주할 수 있단 말에 짤막하게 음을 내보았다. 다른 곳도 아닌 쇤부른 궁의 뒤뜰 오랑주리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한갓진 오후라니 낭만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이었다. 궁으로 들어서는 길에 마음에 몰래 장착한 건 시대와 예술을 향한 성숙한 경의와 진중함이었다. 그런데 궁을 떠날 때즈음엔 신이 잔뜩 난 어린아이의 마음을 갖게 됐다. 기쁘지 아니할 수 없지. 이보다 더 완벽한 피날레가 있을까? 



도시를 찾을 때마다 궁으로 향하는 건 문화유산을 보려는 작정이라기보다는 시간 여행을 탐하는 속셈이다. 몇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깊이 들여다보면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변하지 않은 것과 변한 것을, 이어져 내려오는 것과 사라진 것을, 진화한 것과 퇴화한 것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는 흥미로운 여행이다. 도시의 가장 귀하고 반짝이는 것을 들여다 보고픈 욕망도 채울 수 있다. 온 감각과 정서를 자극하는 궁과 정원의 아름다움에 도취 돼보는 건 필시 해볼 만한 일이다. 어릴 적 흠모하며 간직하던 무도회를 향한 판타지를 다시 꺼내보는 재미는 덤이다. 궁전의 연회장 한가운데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선 채 공상에 빠져본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부끄러움과 어색함이 밀려들지만 개의치 않기로 선택한다. 삶에는 낭만이 필요하니까. 일상에서도 여행에서도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스스로의 삶에 낭만을 기꺼이 허하자. 낭만이 충전된 내가 갈 수 있는 길, 할 수 있는 일을 과소평가하지 않기로 다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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