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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dy An Sep 08. 2024

수퍼센스 수퍼워크샵 in 양평 2

Design Yoru Career Universe

(워크숍 스토리 1편에 이은 2편)


1박 2일 워크숍의 마지막 날 기다리고 있는 일정이 또 설렘 폭발이었습니다. 하루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드는 숙소를 뒤로하고, 또 다른 설렘과 기대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바로 두양문화재단 오황택 이사장님이 2022년 사재 600억을 들여 건립한 ‘이함 캠퍼스’로 말이죠. 전시 <사물의 시차>를 관람하기 위해 약 한 달 전 블림프(blimp) 스토어에서 미리 티켓팅을 해두었지요. 숙소에서 30분 정도 이동하고 나서 가뿐히 도착했습니다.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남한강 절경 덕에 정말 즐거운 드라이브를 즐겼습니다. 이함 캠퍼스에 도착한 순간 전날 숙소에서 터져 나왔던 탄성 그 이상의 감탄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세 사람 모두에게서요. 하늘과 땅과 물 그리고 푸르른 나무들의 컬래버레이션이 유독 고마운 날이었지요.


넓디넓은 만평의 부지에 노출 콘크리트의 매무새를 한 건축물 여럿이 여유로운 비정형의 간격으로 자리하고 있더군요. 여름의 끝자락에서 있는 힘껏 빛을 발하는 초록의 무성함이 함께 있으니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물론 탁 트인 풍경에 마음도 한껏 열렸지요. 어쩔 수 없는 더위와 뜨거운 태양을 피해 카페에서 커피 타임을 가졌습니다. 높디높은 층고와 크디큰 통유리창 덕분에 그림 같은 조경과 건축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미감이 뜨겁게 예열되었지요. 캠퍼스에 입성한 것만으로도 이미 서로 나눌 게 많아 즐거웠습니다. 전시가 더욱 기대가 되었고요. 부푼 마음을 가다듬고 전시로 향했습니다.


<사물의 시차>는 1관에서 6관으로 이동하며 관람하는 전시였어요. 공간을 네 차례 옮기며 관람하는 건 흥미롭기도 했고, 사이사이의 틈새에 생각과 질문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 기회가 있는 게 꽤 좋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어 단어 중 하나가 'between'인데요. 전시를 보는 내내 마음속으로 읊조렸습니다. 훌륭한 컬렉션과 오브제로 가득 찬 전시였지만, 실은 1관에서 두양문화재단 오황택 이사장님의 인터뷰 영상을 본 게 최고 중의 최고였습니다. 왜인지 자리를 바로 뜰 수 없어 앉은 채로 두 번이나 보았습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서야 왜 1관에서 그 영상을 봤어야만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어요. 나름 깨달은 이유를 밝히고 싶지만 전시를 앞두고 계실 수도 있어 스포는 삼가도록 하겠습니다. 꼭 직접 느껴보셨으면 해서요.


오황택 이사장님의 군더더기 없는 모든 말에 울림과 진정성 그리고 철학과 신념이 있었는데요. 정말 모든 말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중 잊고 싶지 않아 뇌리에 각인한 몇 마디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1
돈이라는 것이 무생물이죠. 근데 그게 만약에 의지가 있다면 어디에 쓰였을 때 기뻐할까 생각했을 때 이함캠퍼스를 만드는 것을 기뻐할 거라 생각하고 택한 거죠. 문화사업을 생각한 거죠. 문화가 결국은 중요한 자산이 되지 않겠는가.

2
(...) 아름답고 애착이 가기 때문에 수집한 겁니다. 10유로짜리 사나 만불짜리 사나 똑같은 기쁨으로 산 거예요. 하나하나가 다 기쁨 속에서 모은 거죠. 

3
(...) 내 눈으로, 그 당시에 내가 봤던 순간에 내 눈으로 미감이 느껴지면 샀고, 내가 이것을 한국에 가져가서 전시했을 때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 하면 기꺼이 샀죠. 


워크숍 이후로 저는 오황택 이사장님을 향한 덕질을 하고 있습니다. 워낙 노출이 적은 분이라 덕질할 콘텐츠가 거의 없지만요. 모든 기사를 찾아 읽다가 청년 인문 학교 건명원을 설립하신 분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흠모하는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의 첫 장에 등장하시는 분이었던 거죠. 건명원 교수이자 이 책의 저자인 철학자 최진석 선생의 헌사를 본 기억에 왜 존함이 낯설지 않았는지를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었어요. '점을 연결해 선이 되는(connecting the dots)' 순간을 피부로 체감한 경험이었습니다. 철학과 문화와 예술은 분명 연결되는 것 같아요. 2관에서 6관으로 천천히 몸과 마음을 움직이며 전시를 누리고 즐겼습니다. 함께한 후배들도 충만히 만끽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마지막 날 하이라이트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덩달아 행복했습니다. 


모든 관마다 이렇게 무심하게 놓여있어도 되나 싶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의자와 가구가 전시돼 있어 전율이 일었습니다. 핀율의 의자를 보자마자 아주 오래전 대림미술관에서 봤던 <핀율(FINN JUHL) 탄생 100주년 전>도 떠올랐어요. 제 삶의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죠. 세계적인 디자이너,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의 의자를 조우하고 나니 지난 여행이 소환됐습니다. 몇 년 전 타이베이 여행에서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호텔 'S Hotel by Philippe Starck'에 머물며 미술관에서 지내는 기분이었던, 정말 특별했던 경험으로 생각의 고리가 이어졌습니다. 필립 스탁이 (인테리어) 디자인한 호텔은 전 세계에 포진돼 있습니다. 언젠가 또 감행할 파리행에서 꼭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호텔에 머물러 보는 걸 다시 꿈으로 삼았습니다. '연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몇 년 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지만 아껴 읽고 싶어 애지중지했던 이지은 작가님의 책 <오늘의 의자>와 <기억의 의자>가 떠올랐습니다. 두 권의 책을 연달아 읽고 나면 중세시대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의자 디자인 변천사와 철학을 맛볼 수 있는데요. 세상엔 우연이 없고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제게 모든 게 연결되는 것만 같은 아주 근사한 시간이자 경험이었습니다. 삶의 여정에서 탐닉했던 문화와 예술이 언젠가는 이렇게 한데 모여지듯 내게 선물을 선사해 주는구나 싶었고요. 그런 순간을 또 만나길 바라는, '기대의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머무를 순 없으니 아쉬움을 또 한 움큼 남겨둔 채 늦은 점심을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이함 캠퍼스를 떠나며 양평과도 이별을 했습니다. 15분 남짓 달려 향한 곳은 바로 경기도 광주 퇴촌의 '퇴촌막국수'였지요. 전날 점심은 냉면이었으니 마지막날 점심은 막국수로 선택했습니다. 들기름막국수와 물막국수 그리고 메밀만두까지 야무지게 해치웠습니다. 재밌고도 슬픈 이야기 하나는, 퇴촌막국수는 수육도 훌륭하다는 정평이 나있어 야심 차게 주문했지만 바로 앞 순서에 수육이 솔드아웃 됐다고 하는 거죠. 심지어 우리 테이블에 잘못 서빙됐다가 본래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당장 결제하겠다며 셋 모두 굳은 의지를 밝혔지만 말입니다(ㅎㅎ). 전시와 공간도 물론이지만 오황택 이사장님 인터뷰 영상 여운이 무척 길었던 터라 계속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는 쉬이 멈출 수가 없을만치 특별했지요.


하늘이 맑다 못해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날씨였는데 식사를 마치고 떠나려니 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는 운전 속도는 늦추었지만 낭만 한 방울도 안겨주었습니다. 무섭게 내리던 비는 어느새 거짓말처럼 개이더니 더 맑아진 하늘을 선물해 주었고요. 모든 게 감사할 일, 기쁜 일, 흥미진진한 일이 되니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셋 모두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기 위해 애초에 각자 만들어온 마음가짐이었을 수도 있지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박 2일의 여정이 명쾌한 역할 분담과 다정함, 배려와 도움으로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시 30여분을 달려 마지막 일정인 하남에 있는 갤러리 카페 '미사장'에 다다랐습니다. 워크숍의 소감과 요즈음의 생각들 등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기도 했고, 장소를 소개하고픈 마음도 있었습니다. 좋은 공간에서 맛있는 차와 커피를 마시며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지요. 자연스레 첫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복기하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워크숍 내 커리어 유니버스 디자인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Wendy의 취향 지도를 함께 그려본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건네주었어요. 커리어 프로그램만 있었다면 유익하긴 했겠지만 이토록 새롭고 즐거웠을까 싶었다고 하면서요. 함께 힘을 모아 요리하고, 와인과 함께 깊은 대화의 시간도 갖고, 미감과 사고를 증폭시키는 전시와 대화의 시간까지 갖게 되니 입체적으로 사고의 재료와 영감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기대감이 충전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은 내 커리어를 '커리어 유니버스'라는 관점으로 바라본 것도 새로웠고, 유니버스의 세계관을 생각해 보면서 하나하나 짚어 보고, 고민해 보고,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 좋았다는 의견을 건네주었습니다. 내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옆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는 기회인 게 훨씬 더 유익했다는 피드백도 있었고요. 커리어의 과거-현재를 돌아보며, 오늘의 나는 어디에 있고, 내일의 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실질적으로 가늠해 보는 작업이 유의미했다는 게 제 해석이기도 합니다. 무튼, 결론은 새롭고 즐거웠습니다! 




앞으로 Supersense가 펼쳐내어 선사해 드리고픈 프로그램과 콘텐츠가 많습니다. 워낙 거북이과인지라 속도전에 느리지만 분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행연습 격의 1박 2일 워크숍에서 많은 사고의 실험을 해보았고,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도 돌려보았습니다. 깊이 연구하고, 연결하고, 정리해서 잘 녹여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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