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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dy An Oct 03. 2024

어른들을 위한 ‘슈필라움(Spielraum)’, S호텔

타이베이(Taipei), 대만(Taiwan)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날마다 새로운 곳이다. 매일 향하지만 단 한순간도 같은 놀이를 한 적은 없을 것이다. 모래놀이도, 미끄럼틀과 그네 타기도, 그리고 친구들과 한껏 뛰어다니며 즐거움의 땀을 흘리는 그 모든 순간은 매번 다를 것이고 말이다. 조카 부자 고모로서 영아기에서부터 유아기를 지나 아동기까지 다양한 계절 놀이터를 경험했다. 조카 셋 중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놀이터를 향해 차분히 걸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놀이터가 보일락 말락 할 때부터 전력 질주를 하거나 설렘 가득한 발걸음을 장착했다. ‘어디에나 있고, 매번 가는 곳일진대 대체 왜 저토록 즐거워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놀이터는 그대로인데 아이들에게는 왜 매일의 놀이가 새롭고 다른 걸까’라는 생각도 함께. 그렇다면 흥미와 호기심에 금세 사로잡혀 순수히 몰입하는 어린 시절의 초능력을 잃어버린 우리 성인들에게 과연 놀이터는 어디인가?


여행을 다니며 발견했다. 아니, 깨달았다는 게 더 정확하다. 어른들에게 ‘놀이터’는 각양각색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내게는 ‘호텔이 놀이터’라는 것을. 놀이터는 일상에서는 물론 여행 중에도 필요하다. 놀이터라는 곳은 놀이와 쉼을 오가며 몸과 마음을 느슨히 늘어뜨리고 재미와 사색에 잠잠히 빠져드는 곳 아니겠나. 그러니 충만한 여행을 위해, 에너지와 호기심 그리고 열정을 지속시키기 위해 여행 속 놀이터야말로 필수다. 마침 호텔을 놀이터 삼고 나니 여행에 입체적 층위가 생겨났다. 호텔에서의 머무름과 쉼, 탐색과 미식, 영감을 주는 모든 것들에 반응하는 행위와 심미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여행 속 또 다른 여행이다. 도시와 호텔 사이를 넘나들며 주고받는 상호작용과 다이내믹은 즐거움을 더 고양시킨다. 즐거움은 갖가지 질문으로 치환되어 나를 자극한다. ‘왜 즐거운지, 그 즐거움의 모양새는 어떠한지, 어떤 즐거움을 추구하는지’에 대해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리고 물음에 답하려는 본능에 따라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나와의 내밀한 대화가 시작된다.

지난 2018년, 겨울이 유독 지루했던 2월의 어느 날 갑작스럽게 향했던 타이베이에서 S호텔을 만났다. 그곳에서 내 몸과 영혼은 한껏 신나게 놀았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 꽉 찬 느낌이었다. 처음 만난 도시 타이베이에 반할 수 있었던 것도 S호텔의 공이 8할이다. 즉흥적인 여행이었지만 다행히 호텔을 열심히 찾아볼 수 있는 며칠 간의 시간이 있었다. 늘 그렇듯 ‘그 도시에만 존재하는 호텔 찾기’에 여지없이 돌입했고, ‘S호텔 디자인드 바이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을 발견했다. 20세기 전방위 세계 최고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란 이름만으로 이미 엄청난 호기심을 발동됐다. 과연 타이베이의 호텔에 녹아든 그의 디자인과 철학은 어떤 모습일지를 목격하고 감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3일의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있었다. 내 마음과 감각을 터치하는, 나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을 S호텔에서 발견하고 싶은 열망과 기대를 가지고 그곳으로 향했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고 나니 안도감이 깃든 부드러운 한숨이 훅 새어 나왔다. 건물의 외관은 회색빛으로 으리으리한 빌딩인데 안으로 몇 걸음 들어서니 따스한 할머니 품에 안기는 것만 같은 포근함이 나를 감싸 안았다. 그런데 그 할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풍성한 백발에 진주 목걸이를 겹으로 감싸 걸고는 화려한 패턴의 드레스를 우아하게 입고 있을 것만 같고. 반짝이는 반지를 가득 낀 한 손으로는 손키스를 건네주시고, 다른 한 손엔 샴페인 잔을 들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워너비 할머니. 상상만으로라도 내 미래의 모습이길 간절히 바래본다. 이런 할머니가 환대해 주실 것만 같은 그런 상상이 감도는 곳이었다. 선이 굵고 색이 짙은 원목의 가구와 다양한 모양새의 소파와 의자, 높은 층고와 아늑한 조명빛 그리고 하나의 작품을 지르밟고 있는 듯한 색과 텍스처를 가진 푹신한 카펫이 불러일으킨 재미난 환상 아니었을지. 다리가 긴 스툴에 걸터앉아 고개를 45도 들어 올리니 갤러리가 나타났다. 크고 작은 추상화와 풍경화가 펼쳐져있는 거 아닌가.

잠시라도 미감과 영감을 잃어버리면 큰일 날 것처럼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시선을 훔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이 무수한 시선들을 무수히 상상하고 설계하지 않았을까. 문득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의 끝에 아름다운 무언가를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누군가의 다정함을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널찍하고, 우아하고, 웅장하기까지 한 호텔 로비인데도 ‘놀이터’라는 생각과 느낌이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보고 느끼고, 생각할 것들과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것들이 도처에 구석구석 있기 때문이었다. 내 영혼의 더듬이는 물론 눈과 귀, 손과 발이 바삐 움직였다. 기억 속에 각인하고 싶고, 감각으로 빨아들이고 싶은 미감과 조화의 바닷속에서 유유히 유영하고 싶었다. 아직 타이베이 거리로 나가보지도 않았는데 S호텔의 공간만 느릿느릿 거닐고 싶었다. 언뜻 바라만 봐도 가슴이 콩닥거리는데 자세히 들여다볼 때 뿜어져 나올 아름다움은 과연 얼마나 빛날지 설레었다.


필립 스탁은 이곳 S호텔과 연이 닿는 이들에게 ‘놀이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건네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지 상상해 본다. 놀이터에 놀러 온 기분 만끽하고 공간의 이곳저곳을 적극적으로 거닐며 마음껏 즐거워하라는 신호를 여기저기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 신호는 공기 속에, 그림 속에, 가구와 오브제 속에, 계단과 조명 속에, 그리고 여백에 존재했다. 그가 빚어낸 느낌과 그가 심어둔 그 단순한 느낌, 즉 ‘노는 즐거움을 선명하게 느끼는 순간’이야말로 필립 스탁과 S호텔에 내게 원하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림 앞에서 숨을 고르며 영혼이 미소 짓기를, 다채로운 색감을 지닌 그림 같은 카펫 위를 걸으며 생각이 다시 말랑말랑해지길, 왕의 기운을 뿜어내는 화려한 의자를 온몸으로 감각하며 잠시 앉아 더 큰 생각을 해보길 기대하는 것만 같았다. 은은히 흐르는 재즈와 감미로운 향기가 몸을 관통하면서 생각과 마음의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쉴 새 없이 공간의 미학과 멋진 오브제와 예술적 분위기에 매료되어 집중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던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드디어) 입성했다.

방은 호텔 속 또 다른 세계였다. 호텔 로비와 라운지, 라이브러리와 다이닝 공간이 19세기 빈티지 느낌이었다면 방은 21세기 모던풍이었다. 예상을 뒤엎는 반전 매력은 의도가 다분히 심긴, ‘놀이’의 즐거움을 위한 촘촘한 설계였는지도 모르겠다. 크나큰 은빛 프레임 속 작품이 마치 거울에 비친 나인 듯 연출된 복도의 벽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을 때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었다. 방으로 들어서기 다섯 걸음 전 금빛으로 반짝 거리는 필립 스탁의 브론즈 스툴을 마주한 순간 갖고 싶다는 욕망과 앉아볼 수 있다는 반가움에 사로잡혀 정신이 없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앉기만 해도 왕의 기운을 받을 것만 같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아름다운 의자를 촉각으로 만끽하고 있을 때에도 물론이었다. 블랙의 샹들리에가 지닌 아름다움이 과연 무엇인지 뚫어져라 바라보며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즐거움에 빠져 있을 때에도 방은 안중에도 없었다.


문을 연 순간 하얗고 세련된 공간이 직사각형으로 쭉 뻗어 있는 장면이 펼쳐졌다. 정면에 나있는 큰 창과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은 공간의 여백과 여유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군더더기 없는 말끔한 구성과 궁극의 단순함에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낯설고 오묘한 감정이었다. 공간 속 여유가 마음의 공간과 공명된 것이었을까? 큰 창과 큰 거울, 욕실의 대리석과 조명의 수와 위치에서는 여행자의 욕망과 니즈를 정확하게 읽어낸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천재 디자이너의 감각이 돋보이는, 선이 아름다운 가구와 오브제를 바라보려니 방이라기보다 차라리 갤러리가 아닌가 싶더라. 입체적인 작품 속에서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작품의 완성도를 더하는 주인공이 된 기분도 들었다. 극강으로 추구한 듯한 심플함에서 생각지 못한 최상의 충족감을 느낀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있어야 할 것만 있는 공간의 힘을 느꼈다. 디터람스의 ‘Less is More(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호텔과 만난 일 년 후 즈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선생의 책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슈필라움의 심리학>을 탐독하는 내내 S호텔이 떠올랐다. ‘주체적 공간’이라는 의미의 독일어 ‘슈필라움’은 ‘놀이(Speil)’와 ‘공간(Raum)’이라는 두 의미의 합성어다. 그는 슈필라움을 ‘내가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공간’으로 정의했다. 주기적으로 혹은 어느 때든 원할 때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전제로 하기에 주로 서재나 작업실, 키친이나 게임룸 등으로 비유되곤 하지만, 내게는 호텔이야말로 슈필라움이다. 주로 여행 중으로 한정되고, 일상에서는 자주 찾을 수도 없는 곳이지만 슈필라움의 기능과 역할을 충분히 한다. 때로는 도피처를 찾아 일상으로부터 도망가듯 향해 숨기도 하고, 여행에서는 온갖 구경거리와 거리의 낭만을 포기하고 종일 머물며 쉼을 누리고 영감을 얻는 곳이기 때문이다.


환경과 공간을 바꿔야만 찾아오는 생각이 있다. 의도적으로 애를 써야 내 것이 되는 것들이 있다. 적극적으로 열린 생각을 하기 위해, 몸과 영혼에 쉼을 주기 위해, 전에는 해본 적 없던 생각과 행동의 세계로 들어가 보기 위해 나는 여행을 하고 호텔로 향한다. 더 잘 놀기 위해, 자극과 영감을 즐기기 위해, 사고와 아이디어가 치우치거나 고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와 색깔이 맞는 호텔을 열심히 찾고 탐닉한다. 단 하루일지라도, 혹은 한주 동안 머물며 결국은 떠날 공간일지라도 ‘호텔’이라는 놀이터와 주고받는 다이내믹과 상호작용은 정말 해볼 만한 일이다. S호텔에서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로비 라운지에서 차와 스낵을 즐기며 인테리어와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의 호젓한 즐거움은 여전히 생생하다. 로비에서 아래층으로 연결된 긴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길목에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순간은 가장 즐거이 추억하는 순간이다.

2개의 층의 높이에 달하는 책장이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관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S호텔의 하이라이트라 생각하는 지점이다. 당시엔 책장 속 중앙에 위치한 스크린 속 미디어아트가 무척 새로웠고, 아름답고 클래식한 유리잔과 오브제들이 아트북과 어우러진 모습에선 가슴 가득 채워지는 충만함과 울림을 느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심미안과 예술적 감각이 가득 충전되니 아래층 세상에서 하는 모든 게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조식을 먹을 때에도, 하루의 여정을 마치며 칵테일과 위스키를 한 잔 할 때에도 공간의 매력 덕분에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기분 좋은 착각 속에서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가죽과 패브릭, 원목과 철제, 클래식한 디자인과 팝아트의 색을 띤 오브제의 향연 속에서 창조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창조적인 생각이란 다름 아닌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이었다. “어떤 생각에서, 어디로부터 기인한 결과물일까?”, “전혀 다른 성질의 두 요소가 이토록 매력적으로 조화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이브러리와 다이닝이 결합된 공간에서 가장 신나게 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테이블과 의자와 벽에 걸린 작품과 조명 사이 어떤 연결성이 있는 걸까?”, “이 공간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길 기대했을까?”, “우리의 사고는 ‘왜’ 공간의 힘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일까?”, “대리석과 책과 유리의 조합에서 우리는 왜 ‘미감’을 느끼는 걸까?”… S호텔에서는 ‘쉬는데 노는 것 같고, 노는데 탐구하는 듯한 무경계의 넘나듦’이 가득했고, 그것은 곧 ‘놀이’였다. 놀이터에선 침착할 수도 인내할 수도 없다. 그저 몸과 영혼을 마음껏 풀어헤치고 리듬을 타며 놀아보는 수밖에. S호텔이 내 마음 한구석을 간지럽힌 이래로 나만의 ‘슈필라움’을 또 발견하기 위한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다. 멈출 수 없다면 미쳐보는 건 어떨까?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호텔을 따라다녀보는 건? 그렇다면 다음은 파리?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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