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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Dec 24. 2023

이 정도 눈치라면


 유동 인구가 많은 역 앞 8차선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차량의 통행량이 많아 짤막짤막한 신호에 차들은 속도를 내지 못해 기어갔고, 인도를 가득 메운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 머리 위론 그늘 한 점 없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신호가 빨리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여 손안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주변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 횡단보도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뒤따라 갔다. 나도 사람들 뒤를 따라 한 발짝 떼면서 무심결에 신호등을 바라보았는데, 선명한 붉은색이었다. 멈칫한 나는 앞으로 내디뎠던 발을 뒤로 물렸고, 나를 지나쳐 우르르 이동하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행히 차량 신호는 노란색이라 움직이는 차량은 없었지만, 보행 신호는 분명 빨간색이었다. ‘어어~ 이봐요들. 앞도 안 보고 그냥 따라가면 어떡해요.’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는 사이, 누군가 “지금 건너면 안 되는 거 아니야?”라고 작게 중얼거렸고 이내 신호등 불빛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조금 전 빨간불의 신호등을 향해 무심히 걸어가던 등들이 떠올라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등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과 닮았다. 아무 생각 없이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타인의 삶이 내 것인 양 따라갔다. 남들 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살면 되는구나. 이렇게 살아야 정상이구나. 하지만 삶에 정상 비정상이 어디 있을까. 어쩌면 안정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던 나의 인생은, 타인의 그려진 삶을 따라 하는 비정상적인 행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내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일하는 회사의 유니폼을 평생 입고 사는 느낌. 회사 유니폼은 내 옷이 아니니, 개인의 취향이 들어가 있을 리 만무하고 때문에 아끼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 유니폼을 기꺼이 입는다. 그리고 그 안에 안주한다.     


 무언가 잘못된 거 같은 생각이 드는 순간. 잘못된 게 맞다. 어, 이거 망한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망한 게 맞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될 때, 늦은 게 맞다. 그러니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데 생각하지 않는다. 간혹 생각대로 살아도 망할 때가 있고, 남들 따라가다 얻어걸리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니까. 그러니 자력으로 해내든 우연히 얻어걸리든 타이밍을 잡아내는 눈치가 발달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원래의 눈치를 밥 말아 먹은 나는 그 눈치를 또 어떻게 키워야 하나 싶지만. 핸드폰에 정신이 팔려 신호가 바뀌는지 모르고 있다가, 누군가 미리 움직여 곧 신호가 바뀔 거라는 걸 알아채 신호가 바뀌는 순간 슈퍼맨처럼 바로 튀어 나갈 수 있는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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