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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 Dec 24. 2023

청소기 사용법


 집에 청소기가 없었다. 결혼 전 친정집에 있던 오래된 유선 청소기를 돌릴 때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먼지 냄새와 그로 인한 잔기침으로 청소기를 구매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매일 오전 청소용 물티슈를 밀대에 꽂아 바닥을 닦았다. 집이 작고 물건도 적고, 아이 하나에 장난감도 많지 않아 매일 바닥을 닦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집이 조금 더 넓어지고, 아이가 둘이 되고, 장난감과 육아용품이 많아지자 매일 바닥을 닦는 게 힘에 부쳤다. 결국 청소기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왜 진작 사지 않았을까 싶었다. 덕분에 밀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청소기가 매일 바닥의 먼지를 제거해 주었다. 하지만 청소기는 먼지만 제거할 뿐 바닥에 널브러진 장난감을 함께 치워주지는 않는다. 어지럽게 흩어진 블록 조각과 그 곁에 쓰러진 공룡과 자동차들을 주워 장난감 통에 정리하다 보면, 기력이 딸려 청소기를 돌릴 수가 없다. 본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체력 방전을 몇 번 겪고는 그 후부터 바닥을 치우지 않게 되었다. 치우지 않고 그냥 그 사이사이에 청소기를 가져다 대어 먼지와 머리카락을 쏙쏙 빨아들인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남편은 ‘청소기를 괜히 사줬다. 집이 더 지저분한 거 같다.’라고 말하지만, 그게 맞다. 물걸레로 바닥을 닦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물걸레였다면 바닥에 있는 것들을 정리하지 않고는 청소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만족한다. 편하니까.  

   

 청소기 사용법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있다. 바닥에 어질러진 물건은 언젠가는 치워야 한다는 걸 알지만, 치우기 싫어서 하지 않는다. 이처럼 살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보다는 일단 회피한다. 정면돌파보다는 뒤돌아 있는다. 그리고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마음이 조금은 평안해 졌을 때, 대충 사이사이의 걸림돌을 해결함으로써 또다시 버틸 시간을 번다. 그 시간 동안 버티고 살아갈 힘을 충전한다. 타인이 볼 때 무기력하고 게을러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 나름의 생존방식이다.     


 우리는 살면서 ‘버티는 힘’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간다. 버티다 보면 조금씩 해결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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