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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유연 Sep 03. 2021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부모의 인생 3막을 응원하는 법

"더할 나위 없었다."


부모님 두 분과 프로필 촬영을 마치고 훅 들어온 감정이었다. 형용할 수 없이 행복했고, 애틋하다 못해 아렸다.


부모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이상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한텐 변함없는 존재인데, 카메라에 비친 얼굴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달랐다. 어느새 커버린 내가, 나이 들어버린 그대들이 앞에 있었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참 기구하다. 이 만큼 왔다 싶으면 저들은 저만치 가 있다.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이 열띤 티키타카가 얼마나 남았을까.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이 날 시간 어때? 시간 좀 비워놔 봐."

라고 말했다가 반복된 캐물음에 결국 고했다.


"사진관 예약했어. 분명 좋아할 거야. 나 믿어봐."


엄마는 '시현하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우리 가족만의 문화가 있다면, 각자 읽었던 책을 공유하고 추천하는 것이다. 대표 작가 시현님 에세이가 출간되었을 때 나의 추천으로 함께 읽고 엄마와 대화를 나눴다. 그게 벌써 2년 전 일이다.


'갑자기 무슨 사진관이야'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가기 전부터 무척 설레어했다. 쇼핑하며 나한테 코디를 봐달라는 카톡이 오고, 당일 아침에는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만지고 왔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시현하다’라는 브랜드와 공간의 오랜 팬이었지만 나조차 첫 방문이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장 상태였다.


섬세한 손길이 닿은 감각적인 공간, 나와 이름이 같은 에너지가 넘치던 문하생 경민님, 능숙하고 능구렁이같던 담당 작가 선기님, 넓고 쾌적한 촬영실, 흥미로운 촬영과 보정 과정, 만족스러운 사진, 부모님의 사랑스럽고 행복한 표정까지.


이 모든 것들이 모여 내 괜한 걱정을 다 가져가고,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다 마치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아빠가 ‘차 키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무언가 놓치고 잃어버릴 사람이 아니었다.



같이 사진관 온 사방을 찾으러 다녔고, 한참이 지나서야 엄마가 찾아냈다. 혹시나 해서 가방을 털어봤더니 키는 가방 깊숙한 곳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렇게 그날의 한줄평은 ‘차 키가 없어졌어’가 되었다. 그 침착한 사람의 이성이 혼미해질 만큼 짙은 기억을 남긴 채.



 젊음이 아니라 너의  감각과 개성이 부러워

우리는 다른 시간 속에서 자랐다. 386세대와 Z세대. 저 세대는 근면성실이 미덕이고, 효율과 규율이 중심인 사회를 건너왔다.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저항했고, 생산적인 인간을 키워내는 교육을 지향했기에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낯설어하면서도 한껏 즐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못하는 게 아니라 해본 적이 없는 거야. 첫 순간이 낯설 뿐이라고. 나를 표현하는 데 세대를 구분할 게 뭐람.’


부모님 촬영 다음날 같은 공간에서 찍은  프로필을 보더니, 다음엔 당신도   과감한 컨셉으로 다시 찍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드디어 시작됐구나. 그래,  뭐든 환영이야.



엄마가 블로그에 남긴 글.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아빠로부터 하늘을 보며 꿈꾸고 질문하는 법을, 엄마로부터 땅을 딛으며 걷고 경청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이 동행해준 시간이 켜켜이 쌓여 내가 되었다.


혈연이 아니라 어떤 사회에서 이어졌더라도, 두 사람을 멋진 어른이라 기억했을 것이다.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선하고 성숙하며 호기심 많은 어른으로 살고 싶은 이유이다.



*p.s

20여 년 간 내 로드 매니저가 되어줘서 고마웠어.

나는 누구보다 두 사람의 인생 3막을 응원해. 그 마음을 사진으로 표현한 것뿐이고. 당신의 이름 세 글자로 더 빛날 기회가 많이 오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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