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 헌책방 공씨책방 유영하기
현 시각 변화의 속도가 아주 빠른 성수에서, 기꺼이 느리게 흘러가는 공간을 찾아 나선다. 일종의 도피다.
화장은커녕 세수도 안 했고 옷도 아무거나 걸쳤다. 꾸미지 않은 상태가 주는 해방감을 함께 입었다.
헌책과 바이닐을 취급하는 책방, 공씨책방. 뚝섬역에서 성동교 방향으로 난 곡선 길을 10분쯤 걷다 보면 초록색 간판이 눈에 띈다.
손님을 반기는 둥 마는 둥 시니컬한 주인장, 책장 가득 빼곡히 채워진 책과 CD와 바이닐. 알고 보니 바이닐은 한쪽 서가는 불친절한 버전, 반대쪽은 친절한 버전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전자에서 헤매고 있으니 사장님이 한마디 건넨다.
“찾는 거 있어요?”
“아뇨, 그냥 보려고요.”
“여기 이쪽에서 찾아요. 가요는 ㄱ에서 ㅎ, 팝송은 A부터 Z로 정리돼있어.”
휴. 안도의 한숨을 쉰다.
뒤적뒤적이다가 ㅎ에서 한영애 2집(1988)을 찾고는 승자의 미소를 띤다. 거기다 10000원이라니? 오예. (오늘 할 일 다 했다)
몇 달 전부터 중고로 찾고 있던 바이닐이었다. 3-4만 원부터 10만 원이 훌쩍 넘는 시세로 올라와있는 걸 봤다.
계산 직전 주인장 왈,
“이게 만 원짜리는 아닌데…”
(네, 저도 알아요.)
지나간 표현에 피식 웃다가, 오래됐지만 지금 다시 나와도 괜찮을 법한 큐레이션에 감탄하다가, 기록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다가.
한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서 레코드 버튼을 눌렀다. 몇 가지 고른 것들을 찬찬히 살핀다. 그러다 앉은 눈높이에서 좋아할 만한 철학책이 들어왔다.
제목은 ‘독백의 철학에서 대화의 철학으로’
“시간이 꽤 지나지 않았나?”
어떤 눈치도 주지 않던 그가 잠시 바깥을 나가면서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응시한다. 웬 젊은 처자가 와서 찬 바닥에 쭈그려 앉아 2시간도 넘게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럴 만도.
지나온 것 속에서 마구 헤엄치다 보면, 그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와 작품들에 치이다 보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각자의 고민이 낳은 결과물이 한 데 모여 나를 감싸 안는다.
너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공씨책방
서울 성동구 광나루로 130 (뚝섬역 도보 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