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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유연 Sep 11. 2021

오래된 기록이 파도에 용기를 낸다.

성수 헌책방 공씨책방 유영하기

현 시각 변화의 속도가 아주 빠른 성수에서, 기꺼이 느리게 흘러가는 공간을 찾아 나선다. 일종의 도피다.


화장은커녕 세수도 안 했고 옷도 아무거나 걸쳤다. 꾸미지 않은 상태가 주는 해방감을 함께 입었다.


헌책과 바이닐을 취급하는 책방, 공씨책방. 뚝섬역에서 성동교 방향으로 난 곡선 길을 10분쯤 걷다 보면 초록색 간판이 눈에 띈다.


손님을 반기는 둥 마는 둥 시니컬한 주인장, 책장 가득 빼곡히 채워진 책과 CD와 바이닐. 알고 보니 바이닐은 한쪽 서가는 불친절한 버전, 반대쪽은 친절한 버전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전자에서 헤매고 있으니 사장님이 한마디 건넨다.


“찾는 거 있어요?”

“아뇨, 그냥 보려고요.”

“여기 이쪽에서 찾아요. 가요는 ㄱ에서 ㅎ, 팝송은 A부터 Z로 정리돼있어.”


휴. 안도의 한숨을 쉰다.


뒤적뒤적이다가 ㅎ에서 한영애 2집(1988)을 찾고는 승자의 미소를 띤다. 거기다 10000원이라니? 오예. (오늘 할 일 다 했다)


몇 달 전부터 중고로 찾고 있던 바이닐이었다. 3-4만 원부터 10만 원이 훌쩍 넘는 시세로 올라와있는 걸 봤다.



계산 직전 주인장 왈,

“이게 만 원짜리는 아닌데…”


(네, 저도 알아요.)



지나간 표현에 피식 웃다가, 오래됐지만 지금 다시 나와도 괜찮을 법한 큐레이션에 감탄하다가, 기록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다가.

사랑은 JAZZ처럼 추억은 R&B처럼
계절별, 상황별 큐레이션 음악 CD


한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서 레코드 버튼을 눌렀다. 몇 가지 고른 것들을 찬찬히 살핀다. 그러다 앉은 눈높이에서 좋아할 만한 철학책이 들어왔다.


제목은 ‘독백의 철학에서 대화의 철학으로’



“시간이 꽤 지나지 않았나?”

어떤 눈치도 주지 않던 그가 잠시 바깥을 나가면서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응시한다. 웬 젊은 처자가 와서 찬 바닥에 쭈그려 앉아 2시간도 넘게 들여다보고 있으니 그럴 만도.


지나온 것 속에서 마구 헤엄치다 보면, 그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와 작품들에 치이다 보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각자의 고민이 낳은 결과물이 한 데 모여 나를 감싸 안는다.


너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공씨책방
서울 성동구 광나루로 130 (뚝섬역 도보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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