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씨앗을 찾아서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하리라 결심했을 때, 글 쓰는 마음을 톺아보기로 했다.
어떤 토양이었고, 어떤 뿌리였고, 어떤 비료가 쓰였고 어떤 잡초가 방해했었는지. 낱낱이 뜯어보기로 했다. 뿌리만 파헤치다가 한 편이 끝나버릴지도 모르겠다.
때는 18년 전 외할아버지 칠순 잔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텔 입구에 들어서자 외삼촌이 초록색 표지의 책 한 권씩을 나눠주신다. 오늘 행사 안내서인가 하고 펼쳐보니 의외의 내용이 들어 있다.
당신 인생의 회고와 부모를 향한 헌사였다. 젊은 시절 큰 수술 후 극복했던 시간과 자신의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부모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었다.
축사 시간이 되었고, 그는 글의 한 대목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멈추어 눈물을 훔쳤다. 이는 오열에 가까웠고 문장 사이사이 눈물이 삽입되었다.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
좋아서, 가족이라서 눈물이 난다는 그때는 흩어져버린 명제가 다시 내려앉는다.
그날 그 순간을 떠올리면 온몸이 저릿하다. 누군가의 글이 나에게 침투해 감정의 파도가 일렁이던 때.
글은 내 인생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이에게 진심을 전할 때 쓰이는구나.
7살 아이는 느꼈다. 모으고 또 모아서 건네는 마음이 얼마나 진하고 깊은 세계인지. 일찍이 알아버렸다. 글로 마음을 움직이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소녀는 자라,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꼬장꼬장한 사람이 되었다. 일기를 쓰며 성찰하고, 편지를 주면서 마음을 표현하고 있고, 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에도 책을 내고 싶은 꿈이 있다.
돌이켜보면 당시 출판계에 있었던 삼촌은 오래전 독립출판을 시도한 셈이다.
오래전 나도 결심했다. 언젠가 이 작은 형태를, 아니 책을 손에 쥐고 싶다고. 그리고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서 울고 웃고 떠들면 좋겠다고.
그 결심이 18년 후에도 유효한 걸 보면, 수많은 변화의 흐름 속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 듯하다. 마음을 쓰고 싶은 마음, 마음을 읽고 싶은 마음, 마음을 엮어 나누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
글 쓰기
1.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내는 행위.
2. 미래에 감정이 성숙되는 과정을 바라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과거에 빚지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