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여성기구 발표용 원고
하루 종일 유엔여성기구 원고를 다듬었다.
지난 밤과 새벽, 두 명의 <돌봄 네트워크> 연구자들과 한 분의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이 원고에 도움을 줄 자료를 보내주셨다. K돌봄이 반짝반짝 빛나는 건 돌봄 노동자(가족 포함)와 이런 열정적인 연구자가 있기 때문이다. 두 분들의 열정에 힘입어 고치고 또 고쳐서 완성했다. 하루 묵혔다가 내일 담당자에게 보낼 예정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원고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유엔여성기구 발표용 원고_2.
돌봄의 온도, 지속적인 돌봄을 위한 회복력
날짜 : 2025년 8월 10일
작성자 : 이은주
안녕하세요. 저는 낮에는 엄마의 요양보호사로서 돌봄 일을 하고 밤이면 번역이나 글을 쓰는 이은주입니다. 번역가가 되기 위해 20대부터 꿈을 키웠고, 문학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보냈던 저는 병원에 입원한 남동생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직업 선택의 기준이 되어서 꿈같은 건 잊어버리고 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알콜리즘으로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한 남동생이 있습니다. 그가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 조카 둘을 돌보는 것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엄마와 저는 조카들을 열심히 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카딸이 열아홉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남자친구 엄마는 자기 아들 앞길을 망쳤다며 양육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같은 여성이, 그것도 딸을 가진 엄마의 삶의 태도라고는 믿겨지지 않았으며 바로 다음 날 저희 집 성을 따서 새로 태어난 아기의 출생신고부터 했습니다.
조카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함께 사랑해서 낳았는데 왜 제가 다 해야해요? 저도 제 인생을 살아야지요."
저는 조카딸에게 설득당했습니다. 저 또한 사랑은 함께 했는데 왜 여자만 책임져야하지 라고 생각했기에 조카딸의 아이를 제가 키우게 되었습니다.
<노인 돌봄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를 하는 권소영 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혼모와 미혼부는 2015년 이후 지속적 감소 추세이지만, 미혼모 인구(2만132명)가 미혼부 인구(5889명) 대비 약 3.4배 많”고 합니다. 이 자료만 보더라도 청소년 시기에 미혼모가 되는 경우, 남성은 책임지지 않고 여성 혼자 출산과 양육을 책임지는 경우가 많고, 가족이나 사회적 지원이 없다면 청소년 미혼모는 학업과 생계, 돌봄의 삼중 부담이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카들을 키우며 정신없이 살아오는 동안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났고, 일하는 엄마대신 저를 키워준 외할머니를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많은 곳을 찾아서 데이케어센터에서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욕 봉사였는데 가장 어렵다는 탈의(옷을 벗기는) 임무가 주어졌는데 제가 그 일에 굉장히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웃음)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 후 외할머니를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며 요양원에서 일을 하며 쓰게 된 책이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였습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자 많은 여성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환영했습니다.
현재 일본 웹 미디어에 연재 중인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日本のタイトルは『私はミューズとゼウスのケアラーです』)』는 요양원, 데이케어센터 재가요양 현장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만난 분들을 뮤즈와 제우스라고 부르며 케어 하는 내용입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바쁜 일상 속에서 놓치고 지나갔던 많은 애정과 미움, 슬픔, 감동 등 돌봄 현장의 실제 경험과 무수한 감정들을 복원해, 많은 요양보호사와 가족 돌봄자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평이 있습니다. 돌봄을 하는 분들은 요양보호사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다는 감상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책 일부를 소개할까 합니다.
요양보호사의 아침은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면서 어르신들의 밤사이 안부를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하루 종일 누워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장기보험 1급 환자와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에 없는 치매 어르신을 나는 뮤즈와 제우스라 부른다. 한평생을 치열하게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 단계인 요양원을 신화적 세계로 이끌어 오고 싶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판타지. 아픈 몸으로 살 때 구차하고 누추한 감정이 아니라, 좀 더 아름다운 세계에 살고 있으면 좋겠고, 그곳에서 일하는 나 또한 그런 신화적인 세계에서 삶과 죽음을 돌보고 있다는 자각을 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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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98은 혼자 방에 있을 때가 많다. 성경책을 한 줄씩 손으로 짚어 가면서 소리 내어 읽는다. 아버지가 아프셔서 간병을 하다 혼기를 놓친 뮤즈98, 그녀에게 간식을 들고 가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뮤즈98은 아직 이가 튼튼해서 모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나는 그녀처럼 늙고 싶다. 그녀처럼 소변을 가리고 그녀처럼 책을 읽고 그녀처럼 밥을 먹고 싶다. 뮤즈98의 룸메이트는 지금은 하늘나라에 간 줄리에트비노슈 뮤즈. 그녀가 소파에서 낮잠을 자면 나는 무릎담요를 덮어드린다. 그녀의 잠든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가 모두 잠든 밤에 스케치를 하기도 했다. 굽실굽실한 반백의 머리카락, 넓은 이마, 창백한 뺨, 얇은 입술, 단정한 턱. 그녀의 일생이 어땠는지 나는 모른다. 단지 밤이면 배회하는 치매를 앓고,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는 식탐이 많은 현재의 뮤즈만 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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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사고무친인 뮤즈의 짐을 정리한 적도 있었다. 박스에 그녀의 옷가지며 소지품을 정리하고 목록을 작성하면서 나는 그녀의 사진 석 장을 챙겼다. 그녀의 사진이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이 아쉬워 집으로 가져와서 헌 프라이팬 위에서 태워 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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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먹여주지 않으면 물조차 마실 수 없어 입이 소보로빵처럼 터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입술에 바셀린을 매일 발라주는 것도 내 업무의 일부분이다. 그들은 하루 종일 좁은 침대에 누워 있다. 거실에서 들리는 텔레비전 소리, 사람들 대화와 웃음소리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제우스의 고독한 하루는 침상을 벗어날 수 없기에 얼마나 고독할까. 단지 젖은 기저귀를 가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건네며 어디 아픈 곳이 없는지 두루두루 살펴야 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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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소박한 소망을 여덟 시간 안에 요양보호사 혼자 해내야 한다는―물론 오전에 교대자가 오지만 동료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세 시간에 불과하다―사실. 그렇기 때문에 불만이 있고, 이 일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설사를 하고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에 허둥대다가 침대 시트와 벽에 오물을 묻히고 심지어 자신의 손톱 끝까지 더러워져서 의기소침한 분에게 핀잔을 주기보다 ‘괜찮다’고, ‘바로 이런 것을 도와주기 위해 제가 있는 것’이라고 안심 시켜 주고 싶다.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 중에서>
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조카딸의 갓난아이를 혼자 키웠습니다. 아이는 화장실에 있으면 화장실까지 따라와 안아달라고 했고, 화장실 변기에 앉은 채도 육아는 계속되었습니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 선생님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예시를 들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엄마의 이야기인데 엄마는 3시간 이상 밀실에서 아이와 단둘이 있으면 아이에게 흉기가 된다.」 고립된 돌봄이 결국 양쪽 모두를 해칠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인데 코로나 시기에 손자를 양육하면서 가끔 아파트 베란다를 내려다 보고는 했습니다.
이제 손자가 학교에 다닐 정도로 성장하자 이번에는 엄마가 치매에 걸려 와상으로 누워계십니다. 지금은 치매에 걸린 엄마와 초등학교 6학년인 손자를 돌봐야 하는 이중돌봄을 하고 있습니다. 이 경험 또한 『돌봄의 온도』라는 책이 되어 나왔습니다.
엄마는 자발적으로 섭식을 줄였고, 줄이자마자 점점 식욕을 잃고 누워만 있었고, 마침내 걷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자발적인 죽음을 기도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3주 동안 세 번 간호사님을 집으로 모셔 와 영양제를 맞혀드렸는데 첫날엔 눈을 하얗게 흘기며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생의 마지막을 방해하는 적군인 딸에게 비수와 같은 폭언을 쏟아냈습니다. 저는 '나는 상처받지 않아, 나는 상처받지 않아, 엄마는 질병에 걸린거야'라고 주문을 걸며 매일 매일 엄마를 돌보았습니다. 엄마는 신기하게도 영양제를 맞은 다음날이면 식욕이 돌아오는지 죽을 드셨고, 과일을 조금 드셨고, 다시 일어나 걸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을 생각하는데 혼자 생활할 수 없다면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지 하고 생각이 미치는 건 똑같을 것 같습니다.
노인의 우울증과 치매는 구별하기가 까다롭고, 가족인 경우 더욱 초기 대응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돌봄의 온도를 써내려가면서 집에 불을 내거나 8시간 행방불명이 된 엄마를 이제 혼자 둘 수 없으니 엄마 댁으로 와달라고 남동생에게 부탁하자 '누나는 왜 엄마를 치매로 모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치매에 대한 편견과 이해 부족으로 혼란을 겪는 동안 엄마는 점점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망상도 심해져만 갔습니다. 어르신 돌봄에도 골든타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부모 돌봄을 하기 전에는 모두 두렵고, 피하고 싶지만, 일단 부모 돌봄에 들어가면 묘한 중독성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뽀송뽀송하게 기저귀를 갈고 깨끗해졌다고 손뼉을 짝짝짝 세 번 치는 딸에게 엄마는 이렇게 묻습니다. "흐뭇하니?" 적당한 표현으로 질문하는 엄마의 말에 웃는 일상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돌봄에 있어서 웃음은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지치지 않는 자기 회복력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돌봄을 하면서 기록을 하는 것입니다.
『돌봄의 온도』 책 일부를 소개할까 합니다.
『돌봄의 온도』는 치매 단계에 들어선 엄마를 돌보며 점점 고립되어 가는 나와 엄마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되었다. 치매에 걸린 엄마에 대해서 쓰는 것은 나에게는 물론 엄마에게도 숨기고 싶은 아주 사적인 부분이어서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 책을 내게 된 것은 더 나은 돌봄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이며, 독자들과 돌봄 경험을 공유하면서 아직 돌봄에 개입하지 않은 세대에게 돌봄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더불어 이 기록은 부모돌봄이 갖는 문제점과 연대의식의 중요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고, 가족돌봄에 대해 많은 문제의식을 직면하는 기회였다. 직접 당면한 일이 아니기에 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들이 사실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과제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정책과 제도, 사회적 인식의 문제도 그렇고, 개개인이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들도 많았다. 우리 사회는 부모돌봄의 어려움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며, 부모돌봄을 사적 영역으로만 인식하고 방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돌봄으로 인해 경력단절이 생기거나 독신인 자식이 부모돌봄을 홀로 떠안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우리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 부모돌봄을 더 이상 개인의 노력이나 헌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돌봄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또한 부모돌봄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사회적 분위기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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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 과정에서의 불안으로 정서적 지지가 가장 필요한 노인이 적절한 대처방법을 알지 못해 오히려 가족과 불화하는 경우도 많다. 직장으로 자주 전화해서 같은 말을 반복할 때, 이를 부모의 이상신호로 여기기는 쉽지 않다. 아니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지 일손을 놓고 바로 대응할 수도 없다. 지나고 보면 그때가 부모돌봄의 골든타임이었을 수도 있다. 평생 책임감으로 가정을 돌보았던 부모와 돌봄을 받았던 자식의 역할이 바뀌는 시점.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그 순간은 그 방향과 크기를 알지도 못한 채 순식간에 일상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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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돌봄이라는 것은 당사자 한 명에게뿐만 아니라,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보는 사람 주변의 가족들에게도 책임과 의무가 공존하는 것이다. 힘들면 요양원에 모시자는 제안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으나 그래도 부모를 돌보는 형제에게는 그런 말보다는 “뭐가 먹고 싶어? 내가 하루 모실 테니 어디 가서 쉬었다 와. 내가 모시고 가서 하루 자고 올게.”, “이번 달 돈이 부족하지는 않니?”, “주말 이틀은 우리 가족이 함께할게”, “정기검진은 내가 모시고 갈게” 하고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것이 좋다. 막연한 말보다는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제안해야 하며, 그 의무와 부담을 나누는 일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매달 일정 비용을 분담하고 있으니까 나는 의무를 다했어라고 생각하며 무심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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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도 중독성이 있다. 그러기에 지금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면 오늘 자신을 꼭 안아주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지나치게 애쓰고 있다고도 스스로를 다독여 보자. 돌봄을 지옥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몸도 마음도 모두 쉬어가야 한다. 나 아니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나 아니어도 될 때를 만들어 쉬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돌봄을 이어가며 돌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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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엄마와 나는 치열했다. 때때로 엄마와 나의 위치가 바뀌었다. 엄마는 소녀가 되어 졸랐고, 나는 엄마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는 걷지 못하다가, 기력을 되찾았다가, 더 나빠졌다가, 훌륭하게 극복했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어떤 규칙이 있는지 밝히고자 했던 노력을 멈추었다.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끌어내 쓰기로 했다.
저는 사람들에게 지치지 않는 돌봄을 위해서는 자기 회복력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뜨겁거나 차가운 돌봄을 해서는 안 됩니다. 차가우면 방임이 되고, 뜨거우면 일찍 지치기 때문입니다.
2023년 말 기준으로 한국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는 252만명이고, 장기요양기관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는 50만 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간병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왜 요양보호사라는 자격증을 가지고도 현장 업무를 실행하지 않을까요? 돌봄은 가치 있고 보람된 일입니다만, 요양보호사의 돌봄 대상자에 대한 책임과 의무만 강조되었지 사실상 경제적인 정당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더불어 요양보호사를 단순한 보조 인력이 아니라 전문직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 변화도 시급합니다. 요양보호사를 가사도우미를 쓰듯 십여 개의 화분에 물을 주고 옮겨달라거나 동거 가족들의 반찬을 만들라는 것과 같은 요구가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AI의 시대에 우리의 돌봄은 어디까지 진보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가능하면 많은 사회적 자원을 사용하여 엄마를 돌보고 싶습니다. 일본에서 새롭게 개발된 자동배설처리 장치인 마인렛 (Minelet) 사와야카와 유니참(Unicharm)에서 나오는 기저귀 케어 용품을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살던 곳에서 자연사할 때까지 현재 마포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방문 간호를 적극적으로 받고 싶습니다. 안과, 치과, 한의원 등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필요로 합니다. 장시간 간병을 하는 가족들에게 정서적인 지원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저는 낮에는 집으로 방문하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밤에는 번역을 하거나 글을 쓰며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픈 남동생 대신 뛰어든 돌봄이 끊이지 않고 돌봄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들었고, 엄마와 단둘이 갇혀있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나 저희 엄마를 위해 전문적인 기술을 쓰게 된 줄은 몰랐습니다. 치매인 어르신에게는 화내서는 안 됩니다. 화를 내면 더 자극하기만 할 뿐입니다. 천천히 단계별 안내를 해야 따라할 수 있습니다. 치매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엄마의 질병을 이해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엄마의 다양한 사례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 사례를 데이터화 하면 부모님의 이상 행동에 대한 대처 방법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이 생길 것입니다.
제가 발표를 하는데 도움을 준 노인 돌봄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자 권소영 씨는 말합니다. 가족 돌봄 제공자에 대한 체계적인 데이터가 구축되어야 가족 돌봄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가족 돌봄이 ‘무상’으로 가족 구성원에게 전가되고 있음에도, 이를 실증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데이터가 부재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돌봄을, 얼마나 오래, 어떤 환경에서 제공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실태조차 확인하기 어렵다는 고충을 털어놓습니다. 가족 돌봄 제공자의 현황과 부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돌봄 제공 시간, 돌봄 유형, 제공 환경, 휴식 여부, 건강 상태 등에 관한 정기적 실태조사부터 해야 합니다.
저에게 그동안의 돌봄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가족이 나누어 지는 돌봄이란 어쩌면 사람답게 사는 힘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치지 않고 좋은 돌봄을 하려면 적극적인 사회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지치지 않는 돌봄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썼으나 '간병 살인'으로까지 가는 고립된 돌봄으로 가는 사각지대를 막아주십시오. 경력단절이 된 채 끝도 없는 간병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안에도 데이케어센터가 있어서 함께 출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지역 중심의 통합 돌봄 지원이 가장 절실하다고 하겠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원고 발표에 도움을 준 분들
요양보호사 김은숙 선생님
연세대학교 돌봄 네트워크 연구자 권소영님, 정인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