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위 Apr 26. 2024

용머리 해변을 지나며

87과 01


홍해삼이라고 적힌 문구를 보고 주저함 없이 들어와 앉았다.

5시!

아직 저녁 손님이 오기 전이다.


홍해삼 한 접시 주세요.

내장은 따로 담아서~

서울 말씨를 쓰는 사장님으로 보이는 홀 서빙은 눈치가 빠르다.

나무젓가락 드릴까요?

왼오른팔 도화지 마냥 잔뜩 그림을 그려 놓은 친구가 선선한 미소를 보낸다.

기억은 87년 겨울과 01년 봄을 오간다.

화순해변을 지나 올레 코스를 무시하고 해변을 따라갔다. 족히 삼백미터는 넘어 보이는 용암 롹베드를 건너니 80년대를 관통했던 친구와 처음 부산에서 배 타고 들어 왔던 용머리 해변가 바위가 나타났다.

01년도는 월급을 받으며 정신의 사회화가 아닌 리얼 경제적 사회화가 진행하던 시절 동료가 제주대 교수로 갔던 시절 이야기다.

우리 팀원들은 독수공방 하던 옛 동료를 위로한다는 핑계로 제주행을 결행하였다. 눈치 빠른 현지인 공무원 제자가 서울서 지도교수의 절친들이 제주로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모든 스케줄을 짰다.

그날 이후 육지것들과 도민의 차이를 분명하게 아니 몸으로 알게 되었다. 홍해삼은 해삼과 다르다. 홍해삼 내장은 바다의 심포니다. 사이드 메뉴로 상어 간 정도는 나와야 섬사람 대접을 받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아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결코 결단코 그런 대접은 안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오늘 걷다 홍해삼과 한라산을 마시며 87과 01을 떠올리다 그 사이 테이블을 가득 메운 친구들과 동료들과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 틈에 홀로 론리 한 울프처럼 파란 뚜껑 한라산을 마신다.

87년 친구는 진료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고 01년 동료들은 소식이 끊긴 지 한참이다.

마시고 형제해안로를 하염없이 걸었다.

작가의 이전글 RE100, 몰라도 된다고! 정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