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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이 Nov 16. 2020

취향을 담는 공간, 삶의 전시

나만을 위한 공간이 대표적 문화 공간이 되기까지

내가 선택해 취하는 행위. 소유에 선행하는 이 선택의 기준은 취향이다. 이 취향이라는 단어를 여러 언어에서 살펴보면 재미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먼저 한자어의 취향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으로 영어 Taste의 뜻과도 매우 유사하게 경향, 방향성을 담고 있다. 결국 매우 이성적인 기준을 통해 선별되기보다는 어떠한 경향, 즉 끌림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단어를 독일어로 만나면 또 다른 시각이 주어진다.


독일에서는 '맛있다'를 표현할 때 '(Es) Schmeckt gut(영어 It tastes good)'라고 말한다. '맛이 나다'라는 동사 원형은 Schmecken(to taste), 과거 분사형이 geschmeckt로 보통 독일어에서 대부분의 규칙 동사와 같이 접두사 ge-를 붙여 과거의 의미를 담는다. 독일어의 취향에 해당하는 단어 Geschmack은 영어의 Taste(취향)와 같은 뜻의 단어에 어원을 둔다. 그런데 그 안엔 과거라는 시간이 담겨있다. 먹어본 것, 즉 나의 경험을 통해 내가 끌리는 그 방향이 형성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내가 무언가를 갖고자 할 때 나의 경험을 통한 만들어진 취향이 기준이 된다. 결국 가져서 모으는 행위, 수집은 인간이 경험한 바에서 나오는 건강한 탐구욕, 혹은 반대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갖고자 하는 소유욕을 기반으로 한다. 수집의 역사는 곧 개인의 취향이 어떻게 표현되어 왔는지를 읽을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특히 서양에서는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국한되었던 수집이 점점 보편화되는 과정 안에서 수집 공간의 역사가 시작되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 종교에 국한된 모든 권력이 종교개혁으로 무너지며 신기하고 값진 물건들이 교회 밖으로 나와 세상의 빛을 보았다. 인간에 대한 관심,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 르네상스 시대부터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들은 자유롭게 신기한 물건을 모으는 행위를 시작했다. 수집 역사의 꽃을 피운 시기인 셈이었다.


나만의 공간으로 확대된 오늘날의 취향처럼 그 시대 사람들에게도 취향을 담는 공간이 탄생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러한 공간을 Studiolo(스투디올로), Stanzino(스탄찌노)라고 불렀는데, 이는 방을 뜻하는 Studio, Stanza에 작은 규모를 뜻하는 접미사 _olo, -ino가 붙어서 만들어진 명사였다. 즉 작은 방, 작은 서재를 의미했다. 그런 수집의 규모가 점점 커져 수집품이 방 하나를 모두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작은 방이라 불렀던 이탈리아와 달리 독일어권에서는 이러한 공간을 Wunderkammer(분더캄머)라 불렀다. 경이로운 것Wunder의 방Kammer. 내가 알지 못하는 것, 그러나 놀랍고 흥미로운 것들을 위한 공간은 그것들의 집합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장소였다.


전시를 구성하는 '수집'이라는 중요한 요소는 이 분더캄머로 역사 속에 하나의 공간이자 실체로서 등장했다. 이후 분더캄머가 영어권으로 옮겨지며 비로소 호기심(Curiosity)이라는 영어단어가 활발하게 쓰이기 시작한다. 세상을 흥미롭게 바라보고자 했던 '호기심의 방'은 취향과 수집의 장소로서 모든 문화권에서 중요한 현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우리집 안에 이러한 호기심의 방, 수집의 장소가 어딘지 생각해보자.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 앞에 작은 오브제가 올라가 있을 수도 있고, 콘솔 위에 장식되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여행을 기억하는 기념품 장식장 안 한가득 차 있을 수도 있다. 장식장 한 켠, 서재 한 켠이 그대로 명사화되어 전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과 같이 우리 삶 속의 공간이 하나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취향을 담은 전시 공간은 우리 집 작은 한 켠에서부터 시작한다.


* 인천일보 「문화산책」 칼럼 기고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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