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이 가져온 또 다른 도시의 조각들
2018년에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오아시스라는 가상현실 게임이 지배하는 2045년의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증강 현실 기기 뿐만 아니라 가상현실에서의 감각을 실제로 느낄 수 있는 전신 촉각 슈트를 통해 게임에 몰입감을 형성한다.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올 법한 기술들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실제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 기술들은 세상을 인지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한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등 기존 정보통신 기술(ICT)을 뛰어넘는 신기술이 등장해 도시에 빠른 변화가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 추진 중인 스마트 시티 시범지역 두 곳에는 기존의 도시와는 다른 시스템이 삶의 터전을 이끌어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두 시범지역의 총괄기획자가 뇌공학과 전자공학 전문가라는 점에서 도시 공간에 대한 시각이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스마트한 도시를 만드는 요인은 매우 광범위하다. 보편적인 정의가 있기보다는 더 나은 삶을 위한 공간을 추구한다는 목적과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을 수단으로 한다는 특징을 들 수 있다. 수단만 다를 뿐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이상적이 도시안이라는 점에서 19세기의 전원도시론과 유사점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스마트 시티는 주로 6가지 목표로 삼는다. 서비스의 효율성, 지속가능성, 이동성(모빌리티), 안전 및 보안, 경제 성장, 도시 평판 등 물리적, 비물리적 요소들이 스마트 도시의 형성을 좌우한다.
기본적으로 스마트 시티는 사물인터넷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결성을 토대로 한다.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4차 산업 혁명 기술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마누엘 카스텔이 이야기한 네트워크 사회의 확장된 버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공간을 연구하는 독일 사회학자 마르티나 뢰브 또한 현대 사회의 재편과 함께 바라보아야 하는 새로운 공간성을 언급하며 영역(boundary)을 넘어선 순환의 공간(flow)과 함께 사이의 관련성을 중요시하는 네트워크 스페이스의 개념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도시 공간을 이야기하는 데에 물리적 용기로서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을 넘어서 비물리적, 즉 인터넷을 비롯한 도시 네트워크라는 가상의 공간을 포함하는 도시를 이야기한다. 이는 단순히 인터넷상에만 존재하는 별도의 공간이 아닌 실제 공간의 사물과 가상의 데이터, 다시 데이터와 현실 속 사물이 상호 연결되는 구조이다.
1차 산업혁명 시대, 철도가 도시 공간을 살해했다는 이야기는 당시 공간감의 대변혁을 짐작케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등장한 새로운 기술이 일상을 변화하고 있을 때 우리가 서있는 도시 시공간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 기술에 의해 점점 가까워지고 동시화되기도 하며 기다림의 시간은 정보 처리 속도 만큼이나 우리 삶 속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단위가 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실제 세계의 공간감이 몇 차례의 산업혁명과 함께 파괴되어 온 것 같지만 또 다른 공간들 또한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철로와 도로는 경관으로서의 도시 공간을 재편하고 길 위의 공간에 대한 사유를 가능케 했다. 인터넷의 등장은 보이지 않는 가상 세계를 만들어 오히려 공간의 확장을 가져왔다. 유동하는 도시 안에서 일상의 변화는 관찰할 수 있는 하나의 형상보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흐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길 위에 삶은 우리의 길, 그리고 삶을 새롭게 직조하는 모습으로 지금 이 순간도 도시 공간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
* 인천일보 「문화산책」 칼럼 기고 (2020.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