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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이 Dec 15. 2020

코로나가 가져온 새로운 과제 : 지속가능성

문화의 넷플릭스와 슬로우 투어리즘(Slow Tourism)

고요한 도시희망을 위한 음악     

 “음악으로 우리는 상처받은 지구의 심장을 어루만집니다... 밀라노와 이탈리아는 다시 그리고 곧, 르네상스(재탄생)의 엔진처럼 우리가 소망하는 승리(극복)의 모델이 될 것입니다. ” 

 2020년 4월 12일, 세계적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는 밀라노 대성당과 광장에서 관중 없이 온라인 공연을 진행했다. 따뜻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야 할 부활절 주일에 텅 빈 도시를 어루만지는 것은 오직 그의 목소리와 대성당의 오르간 소리뿐이었다. 심금을 울리는 보첼리의 목소리와 함께 롬바르디아주 도시 곳곳의 모습이 등장했다. 공부하고 일하며 온갖 정이 가득한 나의 도시 밀라노, 룸메이트 집에 초대되어 첫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베르가모, 친구들과 기차여행을 나섰던 브레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강타한 이탈리아 북부의 모습이 그대로 비치는 영상에 내 마음이 텅 빈 광장이 된 듯 눈물이 흘러나왔다. 고요한 도시 위에 울려 퍼진 희망을 위한 음악(Music for Hope)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상처받은 우리 모두를 향해 있었다.

 여행하기 좋은 부활절 연휴에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무데도 갈 수 없었다. 3월 8일 이탈리아 정부의 특별 행정령으로 시작된 약 3개월간 이동 제한 조치에 한순간에 모든 것이 멈춰야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필품을 사는 경우에만 집밖을 나갈 수 있었고 졸지에 생이별을 맞이하게 된 수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우울증을 호소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대화를 즐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각자 집에서 갇혀 있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동 제한 기간 중 연락한 이탈리아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며 매우 다양한 심리적 상황을 묘사했다. 요리하고 먹고 청소하는 나날을 즐기고 같은 책을 몇 번씩 읽으며 시간을 보내지만 이상하게 시계가 멈춰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느 날 한 친구는 자신의 상황을 쓰레기장에서 자각했다. “사람이 너무 보고 싶어서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쓰레기를 버리러 어떤 할머니가 나오신 거야. 뒤돌아보고 나한테 인사해주길 바랬는데 그냥 가버려서 너무 슬펐어.‘ 사람이 그리워서 미쳐간다는 그녀의 우스갯소리는 전혀 우습지 않았다. 심지어 한 친구는 슈퍼마켓이 같은 건물 1층인지라 3개월 동안 건물 밖을 나가지 못했다. ’1층에 슈퍼가 있어서 편할 줄만 알았지 내가 이렇게 건물에 갇힐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내가 왜 그랬을까. 다음 집은 꼭 슈퍼랑 조금은 떨어져 있는 곳으로 구하고 싶어.‘ 무료함, 그리움, 답답함, 우울함, 원망 그리고 자책, 수많은 부정적 감정들이 친구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없이 긍정적이고 밝은 이탈리아 친구들이 인간의 나약함을 호소하며 코로나 판데믹에 하나둘 무너지고 있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보다 무력해지는 정신을 붙잡는 일이 더욱 시급해 보였다. 


생존을 위한 축제발코니 콘서트     

 이탈리아는 이동 제한 조치와 함께 대대적인 해시태그 캠페인을 시행했다. 나는 집에 머문다는 뜻의 #iorestoacasa는 강제적 외출 금지를 외부 활동 자제로 순화시키며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 예방을 위하 조치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나갔다. 그러나 바깥세상에 대한 공포와 내면에서 엄습해오는 무력감에 각 개인들은 오갈데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코로나 판데믹의 공포는 달랐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친구들과의 단체 대화방에 동영상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옥상에서 디제이를 하는 젊은이, 발코니에서 냄비를 가져와 박자를 맞추는 노부부, 그 모습을 웃으며 촬영하는 이들. ’집에 머물러 있어도 발코니에서 노래 부를 수는 있잖아요. 함께라면 해낼 수 있습니다. Tutto andra` bene(다 잘될거예요)‘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햇빛을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기는 발코니가 이제는 바깥세상과의 연대를 위한 공간으로 거듭났다. 판데믹의 공포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우리 함께 나아질 것이라 소망하는 순간을 만들자는 연대의 힘이 음악을 함께 연주하고 즐기는 가운데 피어올랐다. 냄비 뚜껑을 꺼내어 심벌즈처럼 연주하는 친구의 사진이 도착했다. 살아야만 하는 이유,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는 그들에게 음악은 어두웠던 내면에 한줄기 희망처럼 도달했다. 각자 다른 공간에 있지만 음악은 분명 이동 제한되지 않은 유일한 요소로서 위로와 자유를 선물해주고 있었다.         

  

코로나가 가져온 새로운 과제 지속가능한 플랫폼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iorestoacasa 캠페인이 활발히 전개되며 이탈리아 문화유산활동관광부(이하 문화부, Mibact: Ministro per I beni e le attivita` culturali e per il turismo) 또한 적극적으로 대안을 강구하고 나섰다. 특히 이탈리아 문화부는 이동 제한 상황에서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대안적 예술을 제안하며 온라인에 집중한다. 아카이브, 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극장 등 문화 기관의 소셜미디어 통합 계정 CulturaItaliaOnline을 운영하여 온라인에서 주요 문화 콘텐츠에 접근가능성을 높였다. 스트리밍을 통한 실시간 공연 이외에 방문하지 못하는 다양한 문화 인프라를 영상을 통해 소개함으로써 그간 직접 방문하거나 사진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이탈리아의 문화예술 콘텐츠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보다 적극적으로 이탈리아의 문화 산업의 대안을 강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이탈리아 문화유산활동관광부 장관 다리오 프란체스키니(Dario Franceschini)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화의 거대한 넷플릭스를 구축하는 것이 코로나 판데믹으로 위축된 이탈리아 문화산업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는 이탈리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유료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 구축에 대한 언급으로 이탈리아 내수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문화 관련 국제적인 프로모션의 기회로도 활용 가능성이 기대된다. 관광 및 문화예술 관련 산업 비중이 높은 이탈리아는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문화예술산업 분야에 지원금과 세금 감면 등의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탈리아 문화부는 장기화가 예상되는 코로나 판데믹을 극복할 수 있는 중장기적 대안으로서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다. 세계적 문화예술의 보고로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 온 이탈리아의 문화자산을 위드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활용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모든 것이 멈췄다      

 이동 제한 기간에 움직이지 못한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연일 관광객으로 대기열이 가득했던 바티칸 박물관에는 적막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은 역사상 4번째 장기 휴관을 맞이했다. 코로나 판데믹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1966년 피렌체 대홍수, 그리고 1993년 마피아 폭탄테러에 버금가는 초유의 사태를 가져온 셈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주요 문화 행사들이 연기와 취소를 결정하며 이를 달력 삼아 움직이던 모든 산업에 혼란이 야기되었다. 전세계의 디자이너가 한자리에 모이는 4월의 축제 밀라노가구박람회(Salone del Mobile)와 베니스의 건축비엔날레가 잇따라 연기를 발표했다.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베로나 오페라 축제, 볼로냐 어린이책박람회, 피렌체의 패션 박람회 피티 우오모(Pitti Uomo)도 2020년 잠정 취소를 알렸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멈췄다. 주기적으로 전세계의 디자이너, 건축가, 예술가, 출판인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던 이탈리아의 힘이 사라졌다.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되며 외국인 관광객 없는 이탈리아의 도시는 익숙하지 않은 고요함을 마주하고 있다.

 2020년 6월, 정부의 이동 제한 명령이 해제된 후 이탈리아 친구들은 자유를 찾았다. 물론 마스크를 쓰고 손소독제를 사용하며 낯선 이들을 이전보다 경계하게 된 새로운 보통의(New Normal) 세상은 이전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불행 중 다행히도 이탈리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상쾌한 공기와 따스한 햇볕만큼은 여전했다. 그러나 점차 먹고사는 현실에 세계에서 코로나 판데믹의 여파가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각종 언론으로 접할 수 있는 소식뿐만 아니라 전시, 공연, 건축, 디자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이탈리아 친구들의 현실이 문화예술 분야의 어려움을 그대로 알려왔다. 축소된 예산과 조정된 일정 하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안까지 강구하고 있는 그들의 현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행의 지속가능성 슬로우 투어리즘     

 카톨릭이 국교인 이탈리아의 8월 15일은 성모승천대축일(Ferragosto)로 이를 전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를 지낸다. 계속되는 코로나 판데믹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바다와 햇빛을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8월의 한가운데 대부분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손소독제를 사용하며 여전히 상대방의 뺨에 키스하는 비쥬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눈다. 전세계에서 몰려온 여름 휴가객들과 어울리며 복작대던 지난여름과 달리 올여름은 해외여행의 어려움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를 방문하든 예전과 같은 혼잡은 찾아볼 수 없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탈리아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는 유례없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6월 15일을 기점으로 폐쇄되었던 문화시설도 문을 열었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관람을 해야 하지만 이미 당연해진 문화가 되었다.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을 타겟으로 했던 박물관들은 이제 초점을 내국인으로 돌렸다. 로마 관광의 일번지 바티칸 박물관은 로마 시민들이 퇴근 이후 방문이 편리하도록 운영 시간을 저녁 10시까지 연장했다. 바바라 자타(Barbara Jatta) 바티칸 박물관장은 ”(로마 시민들에게) 지금이 바로 박물관을 방문할 일생의 기회”라고 말했다. 

 자국민의 여행 장려를 위해 이탈리아 문화부에서는 관광 및 휴가 관련 세액공제, 여름휴가 지원, 관광 바우처 사용 기간 연장 등 다양한 지원책을 추진중이다. 이와 더불어 이탈리아에서는 여행의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 ‘슬로우 투어리즘(slow tourism)’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패스트 푸드에 대항하여 슬로우 푸드 운동이 탄생한 나라가 바로 이탈리아라는 사실을 알면 슬로우 투어리즘의 철학 또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일치기와 단체 관광 위주의 혼잡한 여행 문화인 오버 투어리즘(Over-tourism)에 반대하여 지역 자원을 활용하여 문화와 역사를 체험하는 여행을 의미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주요 관광지에서 사진만 찍고 떠나는 관광이 아닌 며칠간 도시 곳곳을 접하며 고유한 지역 문화를 만나는 여행으로 외부의 자원보다는 지역의 문화, 편의, 교통 시설을 이용하는 것을 장려한다. 결국 지역 고유의 문화자원과 지역민의 생활방식을 존중하며 지속가능한 여행을 가능케 한다. 슬로우 푸드 운동을 통해 지역에서 생산된 재료를 식문화로 꽃피운 움직임이 이제 여행을 통해 전파하려고 하는 것이다.           


삶을 살리는 문화예술 그리고 지속가능성     

 밀라노 브레라 미술원의 원장이었던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z)의 대표작 ‘키스(Il bacio)’는 밀라노 시민들에게 특히나 사랑받는 작품이다.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2월의 마지막 날 이탈리아 벽화 예술가 TvBoy는 그의 소셜 계정에 마스크를 쓰고 손소독제를 든 작품 ‘Co-vid19 시대의 사랑’을 게재했다. 그의 태그에는 밀라노 시장이 언급한  #MilanoNonSiFerma(밀라노는 멈추지 않는다)라는 메시지가 함께 놓여있었고 이탈리아 사람들, 그중에서도 밀라네제들은 작품 하나에 큰 위로를 받았다. 

 코로나 판데믹을 극복해나가는 지금 우리는 홀로 이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바이러스의 공포의 삶의 무력감, 경제적 어려움 안에서 우리 삶의 동력을 다시 찾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약 3개월간의 이동 제한을 통해 집 앞마당, 우리 지역의 소중함을 다시금 체감하고 있다. 고립의 순간 지역이 갖고 있는 자산을 꼼꼼히 살피고 코로나 판데믹의 위기 안에서 활용해나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솔루션을 고민하는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우리를 위로하고 지역을 돌보는 힘을 문화에서 찾았고 이 힘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대안을 강구하는 중이다. 아직 이탈리아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수는 계속해서 상위권에 머무르고 있고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경제적 타격이 곳곳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내 가까이, 지역을 기반으로 삶의 동력을 찾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쌓아올리고 있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다시 이탈리아에 모여 전세계인이 문화예술의 향연을 즐기는 그날을 상상해본다. Tutto andra` bene, Italia non si ferma.


*「코로나19(COVID-19)를 감각하는 사유들」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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