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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이 Feb 20. 2021

Park-ing? Parking!

위드 코로나 시대, 새로운 공원의 등장

근무하는 건물에 또다시 확진자가 발생했다. 방역을 위해 며칠간 전원 재택근무로 전환된 후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의 풍경은 제자리에 온 듯 보였다. 그러나 그 후로 2주간 개인적인 생활은 일상이 될 수 없었다. 만나기로 했던 친구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당분간 시차를 두고 만나기로 했다. ”아무래도 2주 뒤에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로 한 것은 나의 자발적 결정이었지만 원망의 화살은 코로나를 향했다. 소위 말하는 코로나 우울증(Covid-19 Blues)이 이런 것인가. 낯선 사람들과의 거리 두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과 내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일은 분명 달랐다. 친구들과의 심리적 거리는 2m 이상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있던 인연도 코로나로 멀어지는 느낌이 들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란 더욱 어렵게 보이는 요즘이다. 웃으며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일은 온라인 화상 대화로 만났을 때만이 가능하다. 사람들과의 교류에 온라인이 유일한 대안일까.      

     


자동차, 갑옷이 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세계적으로 한창일 때 독일의 한 햄버거 브랜드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왕관(Social-distance crowns)이라는 흥미로운 캠페인을 전개[1]했다. 햄버거를 구매한 고객이 6피트의 종이 왕관을 직접 만들어 쓰고 햄버거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다. 매장 내에서 고객 간 가까이 앉아있지 말라는 경고성 안내가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햄버거를 먹는 즐거움은 잃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위드 코로나 시대 일상을 지켜나가기 위한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이 기업은 한걸음 더 나아가 코로나로 인한 변화를 수용하는 미래형 매장(Future Restaurant) 계획안을 발표[2]했다. 배달과 드라이브 스루 고객이 늘어날 것을 감안하여 현장에서 식사를 하는 면적을 기존의 60%로 감소시키고 배달과 드라이브 스루 관련 시설에 매장을 할애했다. 도보 또는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들을 위해 비대면 픽업 락커도 설치했다. 미래형 매장 계획안은 위드 코로나 시대 이동 수단을 통한 접근이 공간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을 보여준다. 특히 매장 전체를 둘러싸는 3개의 드라이브 스루 레인이 인상 깊다. 비대면(언택트)의 전략으로서 자동차가 이동 수단이자 보호 수단으로 확장한 것이다. 자동차를 주차하는 공간과 매장에서 식사를 즐기거나 구매하는 경험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차를 탄 상태로 경험을 이어나갈 수 있다. 자동차를 통해 외부인과 적절한 거리를 확보하며 차창을 통해 접촉을 최소화하므로 자동차는 비대면을 위한 갑옷과 같이 작용한다.      

     


드라이브 스루 주차장의 재발견     


 코로나 선별 검사에 최초로 드라이브 스루 방식을 적용한 한국은 코로나 대응 정책에 전세계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감염 가능성을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시간 대비 검사 수를 늘릴 수 있는 장점 또한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가능했다. 드라이브 스루형 선별 검사의 최초 제안자를 포함한 의료진이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의하면 가장 바람직한 검사 장소로 인구 밀집지에서 벗어나 있는 대형주차장을 제안한다. 예약시스템을 둘 경우 작은 주차 공간 또한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이 구현 가능하다고 전한다.[3]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과 함께 비상시 전용 가능한 도시 공간으로서 주차장의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자동차를 주차하기 위한 기능적인 공간은 자동차의 흐름을 통해 다른 기능을 수행하면서 공공을 위한 또다른 장소가 출현한다.

 드라이브 스루의 인기는 코로나19 선별 검사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역자치단체의 지역특산품 판매를 위해, 공공기관에서는 대면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서나 아이들 장난감 대여 또한 드라이브 스루로 운영하고 있다[4]. 이러한 경우 공공 기관의 주차장이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장소로 전환된다. 의료 행정과 공적 서비스 이외에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하는 접점에 자동차가 등장한다. 한 연예인은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대기열 내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제하는 것보다 자동차를 통해 거리를 유지하며 코로나 감염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팬미팅의 대안을 제시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보존할 수 있는 장점 이외에 자동차의 이동성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사례도 있다.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말 그대로 차를 타고 지나가는 과정을 통해 시위와 축제를 즐기는 현장도 등장했다. 사람들이 모여 행진을 하는 시위는 카퍼레이드의 형태가 되었다. 올가을에 열린 마산국화축제는 아예 도보 입장이 불가했다. 예약한 차량만이 입장하여 꽃밭을 둘러볼 수 있도록 회장 자체가 자동차를 위해 설계되었다[5].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사람이 탄 자동차를 위한 길이 계획되었다는 면에서 코로나가 가져온 도시공간의 재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드라이브-인 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낯선 이들과 2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움직임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함께하며 어울리는 삶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여행을 되도록 자제하시고 밀폐, 밀집한 다중이용시설에 가지 마시고 모임을 피하시고...“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 하면 안 되는 것들이 많아진 세상에서 우리의 여가 문화는 새로운 지평을 맞이했다. 실내 공간보다 실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공원이 붐비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축제와 대규모 집회, 행사는 연이어 취소, 연기되고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상황이다. 한강공원에 탁트인 시야를 즐기고 있는 중에도 무언가 허전함이 감돈다. 야외에서 만날 수 있었던 작은 볼거리, 버스킹에서 플리마켓, 축제까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이벤트는 사라진지 오래다.  

 이러한 가운데 실내의 여가 문화와 야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공간이 특수를 맞이했다. 자동차를 주차하고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자동차 극장은 2월부터 신규 회원이 급증하며 손님이 50% 가량 증가했다.[6] 낮에는 일반 주차장으로 이용되는 공간이 밤이 되면 자동차 극장으로 전환해 사람들을 맞이한다. 차를 멈추는 주차, 정차의 행위가 문화예술을 즐기기 위한 접속의 순간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자동차에 승차한 채로 이용할 수 있는 이러한 드라이브 인(Drive-in) 방식이 위드 코로나 시대 모임에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일부 교회에서는 주말 학교 운동장이나 공터, 주차장을 빌려 드라이브인 예배를 진행했다[7]. 실내 공간에 의자에 앉아 설교를 듣는 행위와 야외공간에서 각자 자동차에 앉아 한 곳을 바라보는 장면은 분명 차이가 있지만 함께 모였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대입설명회, 재건축 설명회, 지방자치단체 회의 등 설명과 질문이 오가야 하는 각종 모임도 자동차와 야외 공간을 통해 시도[8]되었다. 자동차 극장의 방식을 차용하여 아카데미도 개설되었다[9]. 서울대공원 주차장에서 진행된 캠코 공매 아카데미에서 참가자들은 차 안에서 강의를 듣고 문자메시지로 질문을 했다. 자동차를 타고 즐기는 뮤지컬, 공연, 서커스에서는 경적을 울리며 흥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온라인을 통해 각종 문화행사를 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차창 건너 이 순간을 함께 즐기는 사람들과의 분위기는 온라인으로 대체될 수 없다. 예약과 사전 검사 등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현장에서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이점은 분명 코로나 이전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Park-ing? Parking!     


’지진옥외 대피소‘  집 앞 공원에 커다란 안내문이 있다는 사실을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이후에 알았다. 매일 다니던 길에 그 큰 글자를 신기하게도 마스크를 쓰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만약‘의 장소. 코로나의 유행과 함께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와 평상이 놓여있는 작은 공원이 새삼 달리 보였다. 코로나 때문에 밀폐된 공간이 두려워졌지만 코로나 덕분에 도시의 개방된 공간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자동차와 함께하는 외부 공간의 변화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공원녹지법에 따른 도시공원은 시민의 건강, 휴양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조성, 관리하는 공간으로, 해당 법에 의하면 주차장은 도시공원의 부속시설로 자리한다. 주차장의 사전적 정의는 자동차의 주차를 위한 시설이다. 그러나 코로나는 사람을 위한 공원, 자동차를 위한 주차장이라는 이분화의 경계를 허물었다. 위드 코로나 시대 자동차를 위한 공간과 시민의 정서를 위한 공간이 교차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비상시 우리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전용될 수 있는 공간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 새로운 공원 만들기(Park-ing)의 가능성은 자동차, 그리고 Parking(주차)에 있다.



[1] New York Post, “Burger King debuts giant crowns to encourage social distancing”, 2020.5.26

[2] CNN Business, “Here's what the Burger King of the future will look like”, 2020.9.3.

[3] Kwon, Ki Tae, et al. "Drive-through screening center for COVID-19: a safe and efficient screening system against massive community outbreak."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35.11 (2020).

[4] 한국경제 “책 대여·생선회 판매·교과서 배포…'드라이브 스루' 일상화”, 2020.4.4

[5] 중앙일보, “차 타고 국화밭 나들이, 가을 축제도 드라이브 스루가 대세”, 2020.10.7

[6] Tmap Trend Map 2020

[7] 한겨레 “코로나19 진풍경 ‘자동차극장서 드라이브-인 예배’”, 2020.3.22

[8] ChosunBiz, “코로나에 각광받는 '드라이브인'...대입 설명회, 재건축 설명회, 시 의회 회의도 차 안에서”, 2020.9.15

[9] 연합뉴스 “캠코, 서울대공원 주차장에서 '드라이브인 공매 강연'”, 2020.11.16


*ULC Press에서 발간한 <ULC A: 팬데믹 도시 기록>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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