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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이 Mar 31. 2021

지도의 진화와 길 위의 일상

모빌리티 발달이 가져온 공간과 도시에 대한 이야기

 My Map or Yours : 당신의 지도와 나의 지도는 다르다 

    

 “If you look at a map and if I look at a map, should it always be the same for you and me? (당신과 내가 지도를 볼 때, 항상 같은 지도여야만 할까요?” 

 미국의 저명한 기술비평가인 에브게니 모로조프Evgeny Morozov는 2013년 구글맵스의 수장인 Daniel Graf와의 인터뷰에서 미래의 지도에 관한 흥미로운 질문을 받습니다. 모로조프조차 농담인 줄로 알았던 이 질문은 지도에 의존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사진을 찍은 장소가 지도 위에 표시되고 위치 기반 모빌리티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상 안에서 지도는 우리에게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특히 나의 이동 반경 안에 별모양의 즐겨찾기가 수놓아있고 내비게이션과 길찾기 어플리케이션 없이 도시를 활보하는 행위는 보조바퀴를 떼고 두발자전거를 처음 타는 것과 같은 불안을 주기도 합니다. 나의 지도와 당신의 지도가 달라지는 배경으로 Graf는 우리가 검색하고 자주 방문하는 지역이 결국 지도의 개인화로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목적지로 입력하지 않는 장소는 이동의 시작이나 끝이 될 수 없습니다. 정찰기를 보내 깜깜한 영역에 빛을 비추는 것은 게임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이동과 끝은 검색한 장소에 핀이 꽂히는 순간 하나의 점으로 등장합니다. 경로는 시작과 끝의 연결선일 뿐, 길을 탐색하며 거니는 ‘길 위의 일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빌리티의 발달과 더불어, 지도를 보고 도시 공간을 읽는 일은 맥락적 사고보다 정해진 시간 내 목적지를 찾아가는 지시적 사고로 바뀌었습니다. 최단 거리와 최단 시간을 제공하는 빠른 길찾기 서비스는 시간을 지키는 명확함과 효율성이 이미 모빌리티 일상의 지표로 자리 잡았습니다. 익선동이 유명해졌을 때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흔치 않은 골목 구경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우연히 마주친 재미난 요소들을 구경하며 길 위의 여행이 충분히 가능한 추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맛집을 탐색한 후 길찾기 어플리케이션이 안내해주는 지시를 따라 간판을 발견하기에 급급합니다. 길 위에서 마주친 일상의 발견은 목적지에서의 용건을 해결한 후 다음 목적지로 설정되어 계획적으로 만나야만 합니다. 경유지 없이 돌아가거나 지도를 켜지 않은 채 골목을 헤매는 일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습니다.           



모빌리티와 지도 데이터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우리는 아마도 지도를 읽는 능력을 상실할지 모릅니다. 자동차에 몸을 싣고 목적지만 설정하면 창밖에 무엇이 있든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앞을 바라보고 주변 공간 정보를 인지,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필요로 하지만, 자율 주행 시대에 우리는 앞을 바라보지 않을 선택권을 갖습니다. 이동 중 밖을 보는 것 자체가 의미 없어지며 탑승자는 개인의 공간이 된 자동차 안에서 집중할 다른 무언가를 찾게 됩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자율 주행기술과 동시에 이동 중 즐길 수 있는 각종 콘텐츠 개발을 강화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시선이 자동차 내부에서 머무르면 이동 중 내외부 공간의 구분은 무의미해집니다. 외부 공간 정보를 데이터로 처리하여 시각화하는 과정은 도시 공간과 자동차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탑승자는 외부 온도와 바람의 세기, 자동차의 연료 상황 등 도시 공간과 자동차 관련 모든 정보를 자동차를 통해 인식합니다. 에브게니가 Graf와 나누었던 대화는 자율주행 시대에, 사람이 아닌 스마트한 자동차를 위한 지도에 관한 논의로 진화할 것입니다. 올해 하반기 현대자동차가 네이버와 함께 협업을 논의하며 지도를 기반으로 한 커넥티드카가 주요 과제로 꼽았습니다. 카카오모빌리티와 티맵모빌리티 등 기존 내비게이션 기반 사업자들은 점차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지도는 이제 단순히 공간을 인식하는 도구를 넘어 모빌리티 시장에서 중요한 데이터로서 컨텐츠와 서비스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도시 공간의 진화     


 시속 1,223km를 목표로 하는 모빌리티의 새로운 형태인 하이퍼 루프가 유인 시험주행을 마쳤습니다. 아직 시속 200km에 미치지 못하지만 향후 목표 시속에 도달할 경우, 자동차로 6시간이 걸리는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여정은 30분 이내로 축소됩니다. 기차가 도시 공간을 살해했다는 이야기는 다양한 모빌리티 디바이스가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더 이상 축소될 시간이 있을까라는 의문마저 들게 합니다. 이동의 시공간적 자유를 가져온 자동차의 영광 또한 영원하지 않습니다. 모빌리티의 발달은 이동을 위한 기계의 발달뿐만 아니라 이동 수단을 선택하고 보유하는 행태 또한 다각화하고 있습니다. 대중교통과 자동차 이외 짧은 거리를 잇는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모빌리티가 활발해졌습니다. 호출 택시로 국한되었던 수요응답형 모빌리티는 버스로까지 확장하며 이동의 시공간적 제약을 해소하고 있습니다. 차량을 반드시 소유하지 않아도 차량을 공유하거나 차량의 좌석을 공유하는 서비스를 통해 누구든지 원하는 때에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다양한 모빌리티의 등장은 이동의 방식뿐만 아니라 공간을 인지하고 향유하는 우리의 일상 또한 재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도로는 여전히 100여 년 전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던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사람을 위한 인도와 자동차를 위한 차도라는 이분법적인 공간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면을 응시하지 않는 가운데, 고속도로 주변 광고판과 각종 표지만 체계, 도로 이름 등 수학적 시스템은 사람이 아닌 자동차와 소통하기 위한 다른 모습이 요구될 것입니다. 퍼스널 모빌리티, 자율주행 자동차, 도심항공교통수단 등 여러 모빌리티 유형이 등장하며 다양한 길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이동 수단이 지나다니는 통로가 아니라 모두의 안전을 도모하며 조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위험한 길이라 여기고 차단했던 20세기의 논의와 달리 길과 소통하는 자동차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위해 도시 공간 또한 진화해나가고 있습니다.           



길 위의 일상우연의 회복     

 

 똑똑한 자동차와 지도 덕분에 도시에서 배회할 자유와 우연한 발견을 잃어버린 우리는 편리와 효율을 삶의 여유를 확보한다고 착각합니다. 완벽한 시스템으로서 작동하는 모빌리티 디바이스와 교통 시스템상에서 사람은 도로의 코드처럼 존재해야만 할까요. 시공간을 초월한 이동의 시대에 우연한 만남과 일상의 발견은 어디에 어떻게 머무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이동 위의 삶은 사람을 시스템의 일환으로 전환되며 일상의 한가운데 있으나 도시 공간과는 분리되어 개인을 공간으로부터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러한 가운데 효율성을 위해 잊어버린 고유한 일상의 가치를 어디에 위치시킬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돌아가더라도 보다 안전한 길, 천천히 갈 수 있는 길, 계절에 따라 꽃이 아름답고 드라이브를 하며 단풍을 즐길 수 있는 길을 선택하며 일상이 머무는 여정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이동의 시작과 끝의 연결고리가 아닌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길, 그 안에서 우리의 일상이 회복되는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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