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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이 Feb 07. 2022

신도시의 장소성을 찾아서

땅의 기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영종역사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이 공동기획한 전시, <우들 살던 섬 영종 용유와 바다>에는 신도시 개발 이전 영종도와 용유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다와 땅을 일구고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함께 도모했던 공동체의 역사를 소개한다. 땅을 메꿔 공항을 짓고 아파트가 늘어선 지금의 모습과 달리 마을이 형성되고 신도시가 개발되기까지 그 사이, 도시의  시간을 알 수 있다. 

 구술을 통해 영상 안에 등장하거나 농사 계획표 등 자료를 제공한 이들의 거주지가 기재된 점이 흥미롭다. 과거와 현재 주소지를 통해 영종, 용유 토박이 주민들이 신도시에 거주하고 있음을 짐작해본다. 우리들의 영종·용유 말이라는 ‘우들’과 ‘살던 섬’이라는 과거형 표현이 애잔한 추억 속에 주민들의 삶을 돌이켜본 전시의 취지를 보여준다. 배가 아닌 다리로 언제든지 오가는 섬이 아닌 섬. 영종 신도시의 건설은 과거와 현재, 인천의 극적인 변화를 가장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장소일 것이다. 

 영종역사관을 둘러본 후, 영종하늘도시를 바라보며 그곳에 살고 있을 아이들의 생활을 상상해본다. 동네나 마을이라는 말보다 단지라는 단어가 고향을 대신할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살고 있는 영종은 어떤 장소로 기억되고 있을까. 새 아파트와 단지, 길을 건너면 나오는 상가, 수많은 체인점 등,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신도시는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처럼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 장소의 혼이나 장소 정신, 장소성 등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장소에 깃든 분위기와 역사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우리는 뛰어놀고 헤매며 자연스레 땅을 읽고 기억하는 능력을 터득한다. 가장 효율적인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과 함께하지 않더라도 가끔 산책하며 주변을 관찰하는 것 또한 내가 살고 있는 땅을 기억하기 위한 행위이다. 그러나 신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어른들 또한 땅에 대한 기억을 스스로 형성하는 능력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마치 항상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장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2017년, 영국 건축회사 얼라이즈 앤 모리슨(Allies and Morrison)은 중동 오만(Oman)의 사막 한가운데, 624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신도시 계획안의 발표를 매우 시적인 표현으로 시작했다. 당연한 것처럼 들리는 이 표현은 아무도 살지 않던 사막 협곡을 두고 청중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사로잡았다. 설계의 목적은 명확했다. 도시가 존재하지 않았던 땅에 단순히 물리적인 도시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까지 갖춘 도시 건설을 추진한다는 의미였다.

 도시에 있어 오래된 것은 낡고 버려지며 새로움이 당연히 좋다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신도시에서도 그 땅에 사람들이 계속 살아온 것처럼 땅의 시간까지 설계해나간다는 사실은 신도시 건설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신도시가 주는 각종 편의에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닐지, 혹은 도시 건설이 물리적인 조건 이외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다른 요소들은 무엇일지 다각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물리적인 신도시 건설에 치우쳐 잃어버린 지니어스 로사이를 찾고 지켜가는 일, 눈부신 새로움 안에서 삶의 터전인 땅의 기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인천일보 「문화산책」칼럼 기고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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