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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이 Feb 09. 2022

일하는 삶

당신은 어디서 일하시나요?

 퇴근 후 포근한 분위기로 나를 반겨주던 집이 언제부턴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잠에서 덜 깬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고 점심시간이 아니지만, 괜히 허기가 진다.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이곳저곳 움직이는 나 자신을 보며 집이 갑자기 낯설다는 느낌마저 든다. 온라인 프로그램을 통해 동료들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만 분명 사무실과는 다른 분위기다. 집도 사무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도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이면 괜히 설레는 마음마저 든다. 분명 비슷한 책상과 의자를 두고 일하는 비슷한 행위지만, 사무 공간과 주거 공간은 분명 어떠한 차이를 갖는다. 

 주거 공간이 주 무대였던 과거와 달리 급속한 산업변화와 함께 우리는 현재 삶의 시간 대부분을 일의 현장에서 보낸다. 필자와 같이 사무 공간에서 주로 활동하는 경우, 사무 공간의 패턴은 기업의 제도적 환경을 반영한 물리적 형태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는 다시 사무 공간에서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보내는 사람들의 삶, 나아가 근무자와 근무자 간 관계적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기업의 자유로운 문화를 추구하기 위해 자율 좌석제를 운영하는 회사의 소식을 들었다. 분명 출근하는 순서대로 자유롭게 자리를 선택할 수 있다. 노트북과 개인 사물함이 있어 드라마에 나오거나 외국 유명 기업처럼 자리를 고를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하는 제도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실제 자율 좌석제를 운영하는 지인에게 소식을 들으니 제도는 자율이라고 하지만, 실상 이전과 비슷한 자리 구도로 자리를 잡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관리자로부터 먼 자리를 선호하긴 했지만, 결국 가까운 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팀장이 찾기 쉬운 범위 안에 팀원들이 자율적으로 좌석을 선택한다고 했다. 물론 경직된 조직의 분위기일 수도 있겠지만, 자유로운 공간을 자유롭게 쓰기엔 아직 우리의 생각이 그만큼 유연해지지 않은 탓도 있다.

 환경의 변화를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유연한 분위기는 공유 오피스에 가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고전적인 사무실에는 한쪽 구석에 있을법한 탕비실이 멋진 컨셉으로 중앙에 자리 잡는다. 회의를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생각을 공유하는 공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음료와 간식 등 다양한 먹거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작은 대화부터 중요한 회의 준비까지. 누군가의 뒷담화를 하거나 힘든 직장 생활의 동지를 만날 것만 같은 탕비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같은 소품, 같은 사람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행위가 공간의 변화로 인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었던, 혹은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한 천편일률적인 사무 공간은 어디서 출발했을까.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개인에게 또한 효율적인 사무 공간의 답은 무엇일까. 이는 1900년대 이후 일부 건축가들에게 이는 지속적인 숙제로 주어졌다. 한 사람씩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칸막이 가 된 작은 사무 공간인 큐비클cubicle은 이러한 효율성에 대한 답이자 개인 사무 공간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혁신적으로 등장했다. 같은 공간에 큐비클은 한 사람이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사무 환경이자 관리자에게는 최대한의 효율을 자랑하는 공간 활용과 최대한의 업무 효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듯한 희망을 주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이상적일 법한 전략에 90년대 후반부터 사무직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니킬 서발의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라는 책은 이러한 사무실의 역사를 흥미롭게 서술한다. 책에 따르면, 1997년 사무용 가구 업체 스틸케이스의 설문 조사에서는 직장인의 93%가 공간이 다른 형태였으면 좋겠다고 응답했고 2013년 시드니 대학 연구 또한 사무직 노동자의 60%가 큐비클인(cubicle人)인 자신이 일하는 공간에 대해 가장 불만족스러워한다고 답했다. 같은 면적에서 가장 효율적인 인력 배치와 최소한의 면적 대비 최고의 업무 효율을 꾀한 큐비클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감옥과도 같은 생활을 마련해준 셈이었다. 

 큐비클과 같은 업무 환경의 등장과 이에 대한 불만은 사람이 일에서 추구하는 바가 얼마나 변화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일을 왜 하는가‘에 대한 변화된 기준을 반영한다. 사무 공간에서의 효율성은 이제 얼마나 개인이 얼마나 존중받으며 일하는지, 서류의 흐름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큐비클의 파티션이 해체되는 것 또한 감시자의 입장이 아닌 근로자의 처지를 고려하는 배경에서 시도되고 있다. 나아가 공유오피스, 자율 좌석제 등의 확산으로 개방형 사무공간과 폐쇄형 사무공간의 적정 배치에 대한 많은 논의가 제기된다.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갈까>의 저자 요아힘 바우어는 일하면서 우리가 여러 세계와 만난다고 말한다. 외부 세계, 타인과 우리 주변 사회, 그리고 우리 자신과의 조우가 이루어지는 장소가 곧 일의 환경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은 성취와 인정이라는 그 자체로 의미뿐만 아니라 시대를 반영하는 삶의 지표로서 작용한다. 개인을 존중하기보다 생산성이라는 수치에 목매었던 과거를 벗어나 창의적인 환경, 소통을 위한 가구의 배치, 나아가 근로자의 건강을 위한 조명과 구조 등 사람을 향하는 업무 환경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왜 일하는가’, ‘어떻게 일하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하며 다양한 대안적 업무 환경이 등장하는 요즘, ‘어디서 일하는가’라는 일의 공간에 대한 논의 또한 이루어져야 하겠다.


*스카이데일리 「유영이의 도시인문학」칼럼 기고 (202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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