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관으로 초대하는 게임형 도시 여행
‘월페커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분단 전문팀의 기자가 되어 베를린 장벽과 DMZ에서 기사를 써보세요.’ 2017년 글로벌 게임디자인 스튜디오 놀공발전소는 분단의 역사를 주제로 독일문화원에서 ‘월페커즈(Wallpeckrs)-DMZ에서 베를린장벽까지’라는 전시를 열었다. 경계를 주제로 두 국가의 분단 역사를 다룬 전시는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심각한 분위기보다는 즐겁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침울하고 어려운 ‘분단’의 무게를 흥미로운 주제로 선보일 수 있었을까.
답은 게임에 있었다. 그들은 전시를 단순히 무언가를 바라보거나 읽는 활동으로 제공하지 않았다. 이 전시는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하나의 게임으로 주어졌다. 관람객은 ‘월페커즈’ 모바일 앱을 다운로드 받아 실행하며 기자증을 등록한다. 이로써 관람객이 아닌 분단 전문 기자로 새로운 세계관에 입성한다. 게임화된 취재와 편집을 통해 DMZ와 베를린 장벽에 관한 소식을 담아 신문을 작성하는 것이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정치, 스포츠, 문화 등 주제를 찾고, 실제 공간에 있는 설치 작품에서 텍스트 조각을 모아 퍼즐을 완성하듯 기사를 맞추어 나만의 신문을 완성한다. 딱딱한 교육 방식이나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둘 모두를 취하는 게임을 통해 도시의 가볍지 않은 이야기가 자연스레 전달된다. 제3자가 아닌 참여자로 역할을 해낸 관람객들은 현장에 더욱 몰입한다.
이처럼 온라인의 경험에 한정되지 않은 게임은 실제 공간에서의 경험을 새롭게 한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모든 것이 온라인 세상으로 이동할 것 같지만, 여전히 우리는 실제 공간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도시를 경험한다는 것은 단순히 온라인 정보를 통해 만족할 수 없다. 땅에 발을 딛고 물리적 환경에 놓여있는 한 우리는 도시와 소통하길 원한다.
이러한 가운데 도시공간과 게임을 접목해 여행의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사례들이 눈에 띈다. 목포를 무대로 펼쳐지는 게임인 ‘퍼퓸 오브 더 시티:목포’는 실내 및 야외 현실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형 미션 게임을 제작하는 유니크굿컴퍼니가 기획한 도시 여행 프로그램이다. 조향사가 된 여행자는 전용앱을 통해 각 장소를 이동하며 미션을 수행한다. 목포역에서부터 출발해 유달산 노적봉,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서산동 시화골목, 유달유원지 등을 이동하며 각 장소의 향기를 모으고 최종적으로 향수의 이름을 맞추며 목포의 탐험을 마친다. 내비게이션을 통해 다음 목적지를 설정하고 하는 여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퀴즈형식인 미션을 완료하며 장소를 한층 더 이해하며 여행의 깊이가 더해진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관을 접목한 여행 방식은 다양한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야외 방탈출이라 불리는 프로그램은 장소에 대한 다양한 시간대의 이야기를 접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시간 여행의 무대를 제공한다. 2018년 서울로7017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시티오브러브’가 대표적 예다. 서울역 고가가 만들어진 1970년대와 공원화 사업이 완료된 2017년을 잇는 의미에서 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사연과 현재 우리들을 잇는 매개체로 미션형 게임이 구성되었다. 참가자들은 과거의 연인이 만났던 장소와 그에 깃든 이야기를 따라가며 도시를 탐험한다. 물리적 공간만 바라본다면 경험할 수 없는 다른 시간대와 도시의 모습이 따라온다.
시간대를 잇는 것뿐만 아니라 공간의 역사를 적극 활용한 게임형 여행도 증가하고 있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작년 말 앱(APP)으로 즐기는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수원화성의 비밀’을 선보였다. 참여자가 역사 속 주인공이 되어 암호를 해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수원화성에 관한 역사문화를 인지하고 미션을 완료하면 수원화성 기념품을 주어진다. 의미와 재미를 모두 취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여행방식인 셈이다. 충남 서천군 또한 1500년의 역사가 깃든 한산면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산속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 ‘퍼퓸 오브 더 시티’를 설계한 기업에서는 전국 각지의 다양한 지역을 대상으로 게임형 여행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있으며, 자체 앱(APP) 리얼 월드에서는 서울 경복궁 대상 ‘세자저하가 사라졌다’ 가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국내 여행이 활발해지는 요즘, 그동안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국내의 명소를 찾는가 하면 차에서 캠핑을 하는 차박이나 호텔, 리조트에서 휴식을 즐기는 호캉스가 늘어나고 있다. 여전히 맛집을 검색하고 사진 명소를 목적지 삼아 떠나는 여행이지만 차박과 호캉스에는 어떻게 머무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그 고민을 여행의 길 위로 옮겨보면 어떨까. 평점으로 증명된 맛집과 메뉴, 최적의 할인 방법과 사진을 찍는 지점, 각도까지. 많은 이들에 의해 언급된 매뉴얼이 존재하는 듯한 여행에 색다른 이야기를 얹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 게임을 통해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 이야기를 짓는 참여자로 거듭나는 경험이 가능해진다. 새로운 세계관 안에서 우리의 도시 탐험이 더욱더 재미있는 추억으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유명한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며 ‘가보았다’는 인증보다 장소와 휴식, 여가를 즐기는 진짜 여행에 주목했으면 한다.
*스카이데일리 「유영이의 도시인문학」칼럼 기고 (2021.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