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에,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아직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고 있었을 때까지 생물학 교육과정에 '혀의 맛 지도'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생명과학 교육과정에서 신경계와 감각에 관한 내용을 다룰 때, 맛을 느끼는 세포인 미뢰가 혀의 각 부분에서 어디에 분포하고 있는지를 표시하는 그림이었죠.
제7차 교육과정은 1997년 교육부 고시로 발표되어, 2009 개정교육과정 (사실상의 제8차 교육과정)이 실시되기 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을 보고 뭔가 기억나는 게 있다면, 당신은 아...재…
교육과정에서 미각수용체는 맛의 종류를 짠맛 / 신맛 / 쓴맛 / 단맛 / 감칠맛의 다섯 가지로 나누어 느끼게 된다는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혀에서 맛을 느끼는 부분이 나누어져 있다는 개념은 과학적 오류가 있다는 논란 끝에, 이후 교육과정에서 혀의 맛 지도는 삭제됩니다.
실제로 우리는 혀의 모든 부분뿐만 아니라 입천장 등 구강 내의 여러 구역에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지 '혀의 맛 지도'는 각각의 맛을 담당하는 미뢰가 주로 분포한 위치를 설명하기 위한 자료였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문제였죠.
동물들에게도 각자의 맛 지도가 있다면
고양이와 관련된 정보에 관심이 많으신 집사님들은, 대부분 '고양이는 단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는 고양이 및 고양잇과 동물들이 오랜 세월 동안 엄격한 육식을 해 왔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데요.
고양이는 잡식을 하는 동물들에 비해 필요로 하는 탄수화물이나 당분이 상대적으로 훨씬 적기 때문에 단맛을 '감지할 필요'가 없고, 때문에 단맛을 감지하는 미각수용체(Tas1R2 단백질)가 퇴화한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죠.
그렇다면 맛 지도의 색깔이 사람과 다른 동물들이 고양잇과 동물들뿐이었을까요? 2010년대 이후 연구자들은 다양한 동물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다양한 미맹 동물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합니다.
Tas1R1 단백질이 없는 바다표범과 바다사자는 감칠맛을 느낄 수 없고, Tas1R1과 Tas1R2 단백질이 모두 없는 많은 박쥐 종들은 단맛과 감칠맛을 모두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맛에 가장 둔감한 포유류 챔피언은 바로 돌고래입니다. 이들은 단맛과 감칠맛에 관련된 유전자 뿐만 아니라 쓴맛을 느끼는 수용체와 관련된 유전자의 절반가량을 잃어버린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왜 그럴까요? 고래류 동물들은 먹이의 맛을 확인하지 않고 큰 입을 이용해 통째로 삼켜버리는 습성이 있죠. 과학자들은 돌고래류의 경우 '멋잇감의 맛 자체가 생존에 끼치는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맛감각과 관련한 유전자들이 퇴화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양이가 단맛은 잘 느끼지 못하는 대신, 아데노신삼인산(ATP)이라는 화학물질을 맛으로 느낄 수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ATP는 생명 활동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원이고 세포가 죽으면 더이상 ATP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먹이 속의 ATP를 맛으로 감지함으로써 '고기가 신선한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논리인데요.
고양이가 ATP를 '맛볼 수 있는지' 여부는 연구결과가 충분치 않아 과학적으로는 불분명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여러 종의 동물들은 (같은 종 내의 서로 다른 개체들도 마찬가지로) 같은 음식을 서로 다른 맛으로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시간이 더 지나고 연구결과가 쌓이면,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고양이들의 '맛 지도'가 완성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길 바라봅니다.
※ 본 콘텐츠는 양이삭 수의사(yes973@naver.com)가 노트펫에 기고한 칼럼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에디터 김승연 <ksy616@inb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