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례 배가 부르면 살찔 듯이 여기고, 한 차례 주리면 마를 듯이 여기는 것은 천한 짐승들이나 하는 짓이다. 시야가 짧은 사람은 오늘 뜻과 같지 않은 일이 있으면 당장에 눈물을 줄줄 흘리고, 다음날에 뜻에 맞는 일이 있으면 벙긋거리며 낯빛을 펴곤 하여, 일체의 근심ㆍ유쾌함ㆍ슬픔ㆍ기쁨ㆍ감격ㆍ분노ㆍ애정ㆍ미움 등의 감정이 대부분 아침저녁으로 변한다. 그러나 달관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보면 비웃지 않겠느냐? 그렇지만 소동파(蘇東坡)는 말하기를, “속된 눈은 너무 낮고 하늘을 통한 눈은 너무 높다.” 라고 하여 장수하고 단명함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죽고 사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소동파(蘇東坡)의 병통 또한 눈이 너무 높은 데 있었다. 요컨대 알아야 할 점은 '아침에 햇볕을 먼저 받는 곳은 저녁 때 그늘이 빨리 들고, 일찍 피는 꽃은 그 시듦도 빠르다' 라는 진리인 것이다. 운명은 돌고 돌아 한 시각도 멈추지 않는 것이니 이 세상에 뜻이 있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災害) 때문에 마침내 청운(靑雲)의 뜻까지 꺾어서는 안 된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18권 / 가계(家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