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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정문일침

좋은 책

by 파르헤시아

송나라 때 시인이며 서화가인 황산곡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대장부가 사흘 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스스로 깨달은 언어가 무의미하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추해진다.", "날마다 옛사람의 서화를 대하면 얼굴에 끼는 속기(俗氣)를 털어낼 수 있다." 흔히 책에서 오는 기(氣)를 '서권의 기(書卷氣)'라 하지 않습니까. '서권기(書卷氣)'란 독서에서 얻어지는 기개와 기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 사람의 글씨와 그림에 서권기가 있다', 이런 말을 합니다. 이는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고 그런 명화와 글씨를 날마다 대하며 감상함으로써 그것을 창조했던 그 인격이 옮겨와서 내 자신의 서권기(書卷氣)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좋은 책(良書)은 베스트셀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스트셀러는 한때입니다. 말하자면 베스트셀러가 모두 좋은 책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합니다. 오늘날 고전으로 남아있는 책들은 모두 세월이 결정해 준 것입니다. 세월의 체에 걸러져서 남은 책들이 바로 양서입니다. 그런 책은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그리고 읽는 사람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합니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사실 한 번 읽을 가치도 없습니다. 독서인은 양서(良書)와 비양서(非良書)를 가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양서와 비양서를 가릴 줄 아는 사람이 독서인입니다.


-법정(1932~2010),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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