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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정문일침

공정심(公正心)

by 파르헤시아

두렵고도 또 두려운 것은 약간의 재주를 부리며 스스로 기세를 뽐내는 것이다. 민망해 보이는 건 속알갱이는 전혀 없으면서 말만 많은 것이다. 하늘 아래서 천하 만물이 거하며 자유롭게 움직이고 노닐 수 있는 것은, 하늘이 아득히 높고 멀어서가 아니라 하늘 그자체로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물속에서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과 같다. 글을 쓰고 문장을 짓는 것은 일종의 기예(技藝)일 뿐이다. 글 짓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고상한 것과 속된 것, 진짜와 가짜를 혼동하고 그 진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평가하겠으며, 어떻게 사물의 가치를 평가하겠으며, 어떻게 세상사의 옳고 그름과 사람의 진가와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겠는가? 공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좋은 글을 알아볼 수 있고, 편견을 가진 사람과는 말로써 아무리 시시비비를 다투고 우열을 논한다해도 전혀 소용이 없다. 모방한 글은 그래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겉만 그럴듯하게 꾸민 가식적이고 현학적인 도학(道學 도덕적 혹은 종교적 학문이나 수행)은 말할 가치조차도 없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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