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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정문일침

주체성(主體性)

by 파르헤시아

나와 다른 사람을 마주 놓고 보면, 나는 나와 매우 가까운 존재이고 남은 먼 존재처럼 느껴진다. 또 나와 사물을 마주 놓고 보면, 나는 귀하고 소중한 존재이고 사물은 하찮은 존재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나와 세상을 마주 놓고 보면, 오히려 가까운 내가 나와는 먼 존재의 지배를 받고, 소중하고 귀한 내가 하찮은 것의 부림을 당하고 있다. 이것은 왜 그러한가? 그 까닭은 욕망이 마음의 밝음을 가리고, 습관이 참 본성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아하고 미워하며, 기뻐하고 성내며, 행동하고 멈추는 일까지 모두 남을 따라 할 뿐, 스스로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 심한 경우에는 말하는 모습이나 웃는 표정조차도 남에게 맞추어, 마치 남의 구경거리감이요, 노리갯감으로 전락해 버린 듯하다. 결국 정신과 생각, 심지어 땀구멍 하나하나 뼈마디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자기 것이 아닌 듯이 살아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인가!


-이용휴(李用休,1708~1782), 『아암기(我菴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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