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은 백수는 오늘도 고민합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현직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가 매번 나에게 말한다. “언니, 아무도 안 읽는 책 내요, 우리.” 그녀는 교재를 만드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일반 단행본 교정, 교열을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만큼 편집자들의 고충이 큰 편이다. 그러면 나는 그런 친구를 위해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잠시 고민을 했다. 한 페이지당 만 오천 원을 받겠다는 그 친구를 먹여 살리고 나도 돈 벌 수 있는 그런 글을 써야 한다. 걔에게 교정교열을 맡기기 위해! 오탈자 잘 잡아낸다는 그녀의 재능을 위해!
장르 소설은 대체로 한 화를 오천 자로 친다. A4로 약 세 장 정도 된다. 교정교열을 맡기게 된다면 세 장 곱하기 만 오천 원, 사만 오천 원이다. 그렇다면 한 화당 백 원에 팔게 되면 독자가 몇 명이어야 교정 교열비 지출을 커버할 수 있을까. 사백오십 명이 봐야지 가능하다. 고정 독자 수를 사백오십 명까지 얻을 수 있을까. 우리는 아무도 안 읽는 책을 내려고 하는데! 잠시 현자 타임을 갖고 와야겠다. 흠, 마니악한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신문처럼 광고를 받아서 하면 고정 독자 수를 커버할 수 있을 것 같다. 디자인도 내가 하면 되고, 그 비용은 안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이런 상상을 잠깐 하고 있자니 출판사를 차리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 똑땅하다. 똑땅해. 돈을 벌고 싶은 백수는 넘나 불쌍한 것. 왠지 언젠가는 이룰 수도 있으니까 버킷리스트에 출판사 차리기를 적어놔야겠다.
준비물 : 출판사를 낼 용기
내가 차리고 싶은 출판사는 전자책 위주로 내는 출판사다. 종이책은 이제 소품이 된 시대가 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다만 소장의 가치가 디지털 저장으로 바뀌게 되어 아쉬운 감정이 크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밑줄 그을 수도 없고, 모서리 부분에 낙서하는 재미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대신 터치펜이나 태블릿 전용 펜만 있다면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지만 공간을 차지하는 책이 이제는 이진법의 매트리스 속 책이 되고 있다. 친환경을 생각하는 나로선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역시 친구 YJ는 종이책이 주는 매력이 사라지는 게 아쉽다고 한다. 아무도 안 읽는 종이책 내고 싶다고 할 정도니까. 귀여운 YJ와 술잔을 기울이며 출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이다지도 즐거운 일인지. 다행히 내가 그런 일을 잠깐이라도 종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출판사를 다닌 게 싫지만 않았던 이유가 편집 일 말고 굿즈 제작, 이북 제작 및 등록, 인디자인,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일을 해봤기 때문이다. 난 이쪽이 더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여하튼, 아무도 안 읽을 책을 만든다면 읽을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