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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무 다른 역할 Oct 01. 2022

존 윅의 안타까운 진화

#영화 「불릿 트레인」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 2022년)

데이비드 레이치의 이름값은 높다. 

스턴트 배우 출신인 그는 존 윅, 분노의 질주: 홉스&쇼, 데드풀 2를 연출했고, 

존 윅 2, 존 윅 3, 노바디를 기획했다. 


액션이 스토리의 보조역할을 하던 기존의 영화와 달리, 데이비드 레이치의 액션은 영화의 중심이다. 

그가 만든 존 윅 시리즈는, 리얼 액션의 장을 열었다고 생각하는 '본' 시리즈에 이어, 

리얼과 스타일을 동시에 추구하면서도 수위 높은 액션을 보여줌으로써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그런 이유로, 그가 감독을 맡은 불릿 트레인에 기대가 컸다. 



액션만으로 놓고 본다면 이러한 기대는 충분히 충족된다. 


초고석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액션은 감독의 스타일대로 깔끔하고 새롭다. 

동작은 조잡하지 않고, 화려함을 추구하느라 현실적 개연성을 저버리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세계 각지에서 온 킬러들이 주인공인 영화인 만큼, 각양각색의 캐릭터에 맞춘 다양한 액션 에피소드도 좋다. 

물론, 열차 안이라는 공간적 제약과 여러 명의 주인공들이 얽히고설킨 전개를 담느라 다소 답답한 감이 있지만, 열차가 멈춰 선 영화의 후반부의 대규모 액션신은 호쾌하기 이를 데 없다. 


말하자면, 존 윅에서부터 보여주던 그의 액션이 자유롭게 진화한 느낌이다. 



하지만, 스토리와 캐릭터 측면에서 본다면 불릿 트레인은 산만하다. 


존 윅은 주인공 한 명이 별다른 군더더기 없이 선 굵은 액션을 이어간다. 

충분히 스토리를 가지치기할 수 있는 설정(과거를 감춘 킬러들의 에이스, 킬러를 그만두게 한 아내와의 스토리)이 있음에도 몇 개의 회상씬으로 처리했고, 주인공의 대사를 최대한 줄이고 미장센으로 그의 캐릭터를 극대화했다. 그런 이유로 영화는 존 윅이 '고작 강아지를 죽였다는 이유로' 러시아 폭력조직을 궤멸하는 통쾌한 액션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기존의 액션 영화들이 의무적으로 집어넣던 뻔한 것들을 제거함으로써 영화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다. 


불릿 트레인은 존 윅 이전의 영화들이 가지고 있던 뻔한 요소를 다시 가져온 느낌이다. 


기존 영화에서 볼 법한 킬러 캐릭터들이 고민 없이 등장하며, 

그들이 쉴 틈 없이 내뱉는 대사는 위트를 의도했음에도 재미가 없다. 

그런 이유로 캐릭터의 매력을 살린다기보다는 시끄럽기 이를 데 없다. 

(그건 브래드 피트가 말해도 마찬가지)


이런 안타까운 진화는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이 기획한 영화 노바디에서부터 조짐이 보였다. 

과거를 감추고 평범히 살던 주인공이 분노해 조직을 궤멸하는 구도는 존 윅과 흡사했지만, 

특수요원 출신이라는 소시민의 과거 설정은 뻔하고, 폭발의 전제로 깔아 뒀던 주인공의 울분(회사에서 당하고 가족에게 무시당하는 식의)은 시끄럽기만 할 뿐 새롭지 않았다. 



불릿 트레인의 또 하나의 뻔한 요소는 일본이다.  


깡패집단에 다름없는 야쿠자의 무사도를 비장미로 포장하던 할리우드의 덜떨어진 인식(비가 주연했던 닌자 어쌔신 류의)이 고스란히 답습된다. 이 '야쿠자 멘탈리티'는 영화의 결말까지 쭉 이어지는데, 이는 영화의 원작이 일본의 소설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안이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 일본스러운 이미지는 영화 내에서 일본도의 이미지로 반복되며 액션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새롭지도 자극적이지도 않고, 영화는 그런 이유로 전체적으로 맥이 빠지고 지루해진다. 


하지만 단순한 지루함을 넘어 일본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할리우드 영화에는 더 큰 불편함이 있다. 



이 불편함은 영화의 첫 화면에 제작사인 SONY 로고가 뜰 때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레이디버그(브래드 피트)가 걸어가는 도쿄의 거리는 미래 이미지로 연출되며 이후 초고속 열차에서의 이미지들도 마찬가지고, 앞서 말한 야쿠자에게도 적용된다. 


'왜색'은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불편하겠지만, 수백 년간 일본을 창으로 해서 아시아를 받아들인 서양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국적일 것이고, 그런 이유로 그 이미지를 가져와 독특함을 꾸미고 싶을 것이다. 

불릿 트레인에서는 이렇게 일본을 차용한 부분이 도드라진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색감. 기술의 첨단, 야쿠자 누아르 같은.


영화의 초반 레몬과 탠저린이라는 두 명의 영국 킬러가 삼합회를 죽인 회상을 하는 장면에서, 동양에 대한 서열적 인식은 확연히 드러난다. 정확히 몇 명을 죽였는지 의견이 갈려 옥신각신 하는 킬러들은 '일본'에서 '삼합회'를 죽였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삼합회 조직원들에게 킬러는 "왜 칼만 쓰는 건데?"라고 쿨하게 말하고 총을 쏜다. 

영화의 최종 빌런인 백의 사신(THE WHITE DEATH)은 러시아인으로서 일본의 야쿠자 조직을 힘으로 접수해서 암흑의 왕이 된 사람이다. 


비약일 수 있겠지만, 평이해보는 이런 설정들이 보여주는 건,  제국주의 시대부터 이어온 지겨운 위계일 수도 있겠다 싶다. 서양-일본-동양 순으로 이어지는 문화적 위계가 영화의 설정에 은연중에 녹아들어 간 건 아닐까. 



불릿 트레인은 존 윅을 답습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진화하지도 않았다. 


스토리나 미장센 같은 액션 외의 요소에 대해 욕심내는 건 긍정적이지만, 

액션의 새로움만큼 그 외의 요소에서도 새로움을 추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는 영화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58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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