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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훈 Mar 31. 2024

돌아왔을 땐 이미 도피가 아니었어

MC 스나이퍼 & MC BK "삶의 도피(Feat. Room9)


1.

 연기처럼 퍼져 나오는 몽롱한 신스음, 가슴 언저리를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 같은 건반 연주, 뼈를 깎는 고통처럼 들리는 드릴 소리, 서러움을 가득 뭉쳐놓은 발음의 가사들. 이 소리들을 한 움큼 쥐어 저녁마다 복용하던 때가 있었다. 곡의 제목은 "삶의 도피". 우울이 점점 깊어져가던 중학생 때였다.


 나약해져만 갔으니 사라져 갔던 믿음... 모든 걸 포기하게 해버린 저주의 대상도 어느덧 자신으로 돌아갔지.


 그 시절 나는 큰 체격으로 멀쩡해 보였을지는 몰라도 속은 썩어가고 있었다. 동창들과 작별하고 당연하다는 듯 끊긴 관계 앞에서 마음 아파하던 존재. 정형화된 학업으로 인해 답답해하던 존재. 창작을 했으나 현실에 대한 도피로 취급받던 존재. 매일 졸업 사진을 펼쳐보며 돌아가고 싶다고 눈물을 떨구던 존재.


 흐르는 시간을 증오했지만 내 증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흐르기만 하는 시간에 나는 좌절했다. 결국 스스로의 무력함을 자책하게 되었다. 내가 미련해서지, 내가 혼자 예민해서지, 새로운 나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잘못이지. 그 결과 교내에서 진행된 심리 검사에 우울 수치가 높게 나왔고 방학 때도 호출되어 심리 상담을 받곤 했다.


2.

 몇 번의 상담이 눈물을 흘리게는 했지만 끝나고 나면 다시 우울해질 일만 남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나는 의지할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내겐 그게 음악이었다. 누군가는 도피라고 했지만 반박할 말은 없었다. 한창 듣던 곡의 제목도 "삶의 도피"였으니까. 나는 verse를 웅얼거리며 영혼에 집어넣었고 문장은 내재화되어 내 영혼의 찌든 곳을 박박 닦아주었다. 특히 "삶의 도피"란 곡의 verse에서 시옷과 리을 발음이 일으키는 발생시키는 힘은 엄청났다.


 내게도 실망, 갈망하던 꿈들은 사망, 그저 나 홀로 사막, 서막의 시작일 뿐. 내 앞날이 너무 막막 ... 늘쌍 홀로 너무 싫어 손은 술로 몸은 피로 맘은 괴로움을 이길 수 없어 울고.


 삶. 실망. 그리고 마셔본 적 없지만 어감을 통해 어떤 맛의 액체인지 짐작되던 술이란 단어 등. 느낌도 가깝고 발음도 닮은 단어들이 입으로 굴려질 때 형성되는 거대한 거품 물결은 내게 공감을 일으켜 우울의 구석구석을 씻어내주었다. 다음날이면 다시 우울이 생겼지만 "삶의 도피"의 그 구간을 듣는 순간만큼은 속이 말끔하게 비워질 정도였다. 운율을 받아들인 나는 문장을 다룰 때 고통도 통제할 수 있음을 알았다. 내가 당시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였다. 누군가는 도피라고 했지만 반박할 말은 없었다. 도피라는 제목의 글도 있었으니까.


 글을 쓰고 가사를 듣고 고통을 감내하며 어느덧 나는 조금씩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내가 나를 살리는 문장을 쓰는데 이건 도피가 아니다.' 그제야 나는 도피라고 하는 이들에게 반박할 수 있었고 문장을 더 믿게 되었다. 말 못 할 고통을 쓰면서 나는 누구나 각자 말 못 할 고통을 안고 사는 것도 배웠다.


3.

 타인을 대하는 자세는 글에서도 일상에서도 나타났다. 함부로 타인의 고통을 재단하지 않으며 언제나 말 못 할 부분이 있음을 염두에 두는 것. 한 번 하고 끝날 위로를 하는 게 아니라 떨어져 있어도 인생에서 함께라는 느낌을 주는 것. 고통을 알기에 갖출 수 있는 자세였다. 그러자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인생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는 이가 되기도 했다. 우리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이 점차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인연들은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끊어지는 인연들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살아가며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들이었다. 버텨보자. 우리 살고 있으니. 어떻게든.이라고.


 삶의 도피 마지막 verse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좀 더 빡세게 개겨. 내가 총알받이 네놈 보고 술값 내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 오늘 먹다 내일 죽어도 내게 소중한 의리. 내가 일궈낸 권리 있을 수 없는 포기.


 중학생 때는 다 듣지 않고 넘기던 부분이었다. 앞선 verse 들에 비해 강력한 극복 의지를 보이는 느낌이 아직은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확히는 아직 듣기 이르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종종 그 부분을 넘보면서 나도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제는 술맛도 알게 되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의 의리도 계속해서 지켜가고 있으니 마지막 verse 역시 생략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민함은 섬세함이 되어 친구들을 챙겼고, 여유가 될 때는 술값도 종종 내곤 했다. 요즘도 계속 말하곤 했다. 빡세게 개겨보자. 포기하지 말자. 그 말은 친구들에게 해주는 동시에 내 안에 존재하는 예전의 내 모습들에게 해주는 말 같았다.


 이제 와서 들으니 "삶의 도피"라는 곡도 우울을 터놓는 verse에 앞서 이런 후렴으로 시작했다.


힘에 겨워도 내가 살기에 살아볼 만은 할 테니, 꼬마야 눈물을 닦고 좀 더 이겨내 보렴.


 예전에는 우울해하느라 미처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이 후렴은 한 우울한 중학생에게 새로운 친구들과 꿈과 작업물들이 나올 테니 기다려 보라는 예언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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