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초침 소리로 시작해 질주하듯 드랍되는 드럼 연주, 머릿속 기억을 가냘픈 실처럼 표현해낸 신스음, 학창 시절의 시선으로 빚어낸 앙증맞은 라임. 이거 왜 이렇게 아련할까 싶어 찬욱에게 곡을 메신저로 보낸다. 찬욱은 중학생 3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도 연락하며 온갖 이야기를 나누어 오고 있는 친구들 중 하나다. 어떤 감상을 들려줄까. 나는 의자에 기대어 시계를 바라본다. 회사 점심시간이 끝날 때다. 바쁜 오후 일과가 곧 시작되고 나는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을 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와 누운 채 찬욱의 답장을 확인한다.
"정훈아 학교 가야지"
나는 찬욱의 재치에 풋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가사 속 다빈이란 인물을 정훈으로 바꿔준 덕에 나는 Ghost K!D라는 곡을 옛날의 정훈에게 대입할 수 있게 되었다. 아련하다고 느낀 이유도 곡이 나와 닮았기 때문임을 그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학교 복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슬픈 애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전봇대 뒤에
멀리서 다짐해 오늘은 꼭
만들겠어 새로운 friends
퇴근한 스물여덟의 나는 지친 채 누워서 곰곰이 옛날의 나를 생각해 보았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교복을 입던 나를. 막 입학한 학교로 등교하던 나를. 남자 중학교라는 새로운 환경 속 큰 몸집 때문에 시비가 자주 걸리고 싸움에 휘말리기 일쑤였던 나를. 씩씩대는 녀석들에게 꿀리지 않으려 겉으로 드세 보이려 했던 나를. 싸우고 집에 들어가면 가지가지 한다는 말을 엄마로부터 듣던 나를.
결국 초등학교에 대한 그리움이 발발해 가슴만큼은 옛날에 멈춰있게 되었다. 다리는 현실을 걸으나 가슴은 현실에 없었다. 둥 둥 아무도 못 보는 내 실체는 이 중학교를 떠다니는 유령이 되고 말았다. 겉돌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령으로 계속 남기보다는 얼른 나를 현실로 이끌어줄 친구들을 찾을 수 있길 바랐다. 중학교로 나의 영혼을 초대할 이들을.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함께 삶을 헤쳐나갈 다른 Ghost K!D들을.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부디 그러길 바라며 잠이 들곤 했다.
정훈아 학교 가야지.
그 정훈은 다음 날에도 일어난다. 눈을 비비며 분명 누가 불렀던 것 같다고 느낀다. 나는 일어나서 두리번 거린다. 다시 보니 학교도 아니고 옛날 집도 아니다. 낯선 오피스텔 원룸이다. 아 벌써 스물여덟이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지.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
Ghost! Ghost! Ghost! Ghost!
점점 드럼이 빨라지고 묵혀온 감정을 윽박지르는 Ghost K!D처럼 나는 소리치면서 깨어난 기분이 든다. 나는 일어나서 혼자 아침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신입 사원으로 출근한 지 겨우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싱크대 앞에 서 있는 내 다리가 내 것 같지 않다. 현실을 사는 기분이 나지 않는다. 변한 환경으로 인해 누적된 긴장과 피로는 나의 감각을 무뎌지게 한다. 다리는 출근 준비를 하고 있지만 예전을 그리워하는 가슴은 공중에 붕 뜬 채 투명해져 간다. 어떻게 해야 다리를 감각하고 현실을 걸을 수 있더라. 나는 다시 타임머신을 타듯 ghost k!d를 튼다. 목적지는 찬욱이 설정해 준 대로 정훈의 과거이다.
그래 이제 보여줄 때가
된 것 같애 내가 정말 누군지
이번에는 3학년 시절로 도착한다. 매점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빨며 정훈은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있었다. 곁에는 앞으로도 함께할 이들이 있었다. 불과 3년 안에 무리를 이룬 우리는 신념과 낭만이 통하는 이들이었다. 찬욱도 그중 하나였다. 우리는 한가로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음을 차단하고 경계심을 잔뜩 세우던 신입생 때와는 나는 달라져 있었다. 진심을 보이고 미래에 대한 열정을 보이자 함께하기로 한 이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덕분에 나는 중학교라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고 이곳에서만의 값진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스탠드에 앉아있던 나는 무릎을 툭 툭 털며 일어나면서 말했다. 가보자. 찬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Go!
Ghost가 Go처럼 들리는 마무리 부분을 들으며 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음악을 따라 부르고 있다. Ghost! 출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슬슬 가야 하는데. 가서 새로움에 적응하고 나의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데. 스물여덟인 나는 중학생 때와는 달리 나이가 들어 그저 회피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닌가 두려워하고 있다. 다행히도 찬욱은 내가 그렇지 않다고 일깨워준다. 십 년 넘게 계속 연락을 이어가며 내 글을 읽고 피드백을 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계속해서 알려준다. 정훈 너는 사람들을 챙기고 다가가는 사람이야. 섬세하고 사려 깊고 강직하지. 우리를 대할 때나 글에서나 여전히 그 점들이 다 보여. 새로운 환경에서도 너의 존재가 가진 끌어당기는 힘은 발휘될 거야. 중학생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일깨워주는 친구 찬욱이다.
그런 어른 찬욱이 "정훈아 학교 가야지"라고 메신저를 보낸 건 시공간을 넘어 중학교 신입생인 정훈에게 닿는 것 같다. 정훈은 일어나 두리번 거린다. 분명 무슨 목소리가 들렸는데. 찬욱을 만나기 전이지만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자 앞으로의 미래에 있을 좋은 만남들도 꿈꾸게 된다.
가야지.
나는 뒤늦게 찬욱에게 답장한다.
직접 차린 아침밥을 다 먹고 엄마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고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하며 물줄기가 발밑으로 뚝 뚝 떨어지는 걸 내려다본다. 나는 지금도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지. 회사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 또 한 번 나의 영역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지. 고향에 있는 친구들도 나를 기다리고 있지. 갈 곳이 있지. Ghost!라고 악쓰던 때도 있지만 오늘은 희망찬 기분이 된다. 출근복을 입고 가방을 들춰 메고 현관을 나선다. 스텝이 우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