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훈 Jun 20. 2024

낭만이란 단어의 사용법

드렁큰 타이거 "True Romance (Feat. T)"


 앙상한 나뭇가지, 오래된 공가. 그런 것들로 차있는 폐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타이거 JK의 모습이 담긴 앨범 커버에 이끌린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몰랐다.


 '이 사진이 표현하는 건 낭만일 것이다.'


 당시 나는 '낭만'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중학교나 학원에서는 서서히 내신 관리라던가 문,이과 선택을 빠르게 준비하기를 권장하는 분위기였고 그 사이에서 예술을 하겠다는 내 말은 그저 '낭만적이구나.'라고 하는 타인의 말에 밀려나기 일쑤였다.


 낭만

 :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낭만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면서도 정작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특히 나를 향해 낭만적인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시선이 달갑지 않았다. 그 말에 따르면 내가 현실적이지 않은 사람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단지 예술을 한다는 이유로 현실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가?


 사회적 분위기는 예술을 낭만적인 일이라 일축하며 현실에도 집중할 것을 사람들에게 요청했다. 그렇지만 나는 누구보다 현실에 집중하고 있었다. 현실을 담은 작품을 썼고 내 감정과 이상을 현실과 구분 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매일 글을 쓰고 신념을 기록했다. 노력은 곧 나의 현실이었다.


음악에 미친 Loptimst(곡 프로듀서)는 밤을 새워
 음악에 지쳐 가는 나는 가끔 깊은 체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지만 I keep rewinding My true romance


 어느덧 방에는 "True romance"라는 곡이 흐르고 있었다. 커버 사진에 이끌려 확인하게 된 앨범의 트랙리스트에서 눈에 띈 제목의 곡이었다. "True romance". 낭만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던 내게 좋은 지침이 되어줄 것 같다는 예감이 재생 직전에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입부에 불을 붙이는 듯한 라이터 소리, 예술가의 한숨 같은 플루트 연주, 창작열의 현기증처럼 일렁이는 기타 연주, 강렬하게 질주하는 타이거 JK의 랩, 현실을 휘젓는듯한 바이올린 연주가 어우러지며 진짜 낭만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배경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타이거 JK는 음악을 대하는 여러 사람의 경우를 가사에서 나열했는데 이들에게 낭만이 무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누군가는 묵묵히 음악에 열중하고 있음을 알리며 작업하는 행위 자체를 묘사하며 운문을 마쳤다. 뒤따라 나오는 T(윤미래)의 목소리로 빚어진 후렴은 타이거 JK가 묘사한 행위에 고혹적인 리듬과 가사로 감정을 더했다.


He grabbed my hand said Te quiero I can't stop now
그는 내 손을 잡고 말했어 사랑해 난 멈출 수 없어
I'm in love oh I think I'm fallin baby
나는 사랑에 빠졌네 오 나는 빠져버린 아이
I just can't let go
난 그냥 놔둘 수 없어


 끊임없는 노력. 집중하고 있는 대상을 바라보는 일. 맞이해야 할 투쟁. 불꽃튀는 리듬. 예술을 할 때 발생하는 일들이었고 나는 "True romance"를 들으며 그것들을 회고했다. 낭만적이구나. 나는 놓치지 않고 그 문장을 공책에 옮겼다. 당당하게 낭만이란 단어를 쓰자 후련했다. 이 감정을 잊지 않고 고찰한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낭만은 현실을 도피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자세다.'


 내가 앨범 커버 속 타이거 JK의 사진을 낭만적이라 느낀 것도 그가 취하고 있던 자세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허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모습은 현실에서 이상을 보고 있음을 드러내는 당당한 자세였다. 낭만이었다. 중학생인 나는 깨달음에 신이 나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이후로도 수많은 장소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낭만을 다짐하곤 했다. 야자를 마치고 고등학교를 나서 밟은 운동장에서, 입학 면접을 보러 찾아간 대학교 입구에서, 야간 순찰 도중 군부대 등에서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올렸다.


 모든 걸 걸고 밤하늘의 세며 밤새워
 모든 걸 걸고 식어가는 열정을 불태워


 낭만이 있었기에 시집을 낼 수 있었고 낭독회를 할 수 있었다. 바라는 것을 현실로 이루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새로운 작업의 기반이 되고 있었다. 낭만은 현실에서 의욕을 내도록 했다. 다음 시집에 포함될 또 한 편의 작품에 닿기 위한 밤을 보내야지. 오늘도 작업실 창가에서 고개를 들고 물을 마시듯 생각을 삼켰다.



작가의 이전글 이거 왜 이렇게 아련하지/깨워주세요 계속 그렇게 나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