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립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
쭈뼛거리는 사이 시간이 흘러가있곤 했지.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처음 마주하던 상황들, 의중을 알 수 없던 사람들, 가늠할 수 없이 자라던 마음들. 내겐 미결된 것들이 점점 쌓여갔지.
누군가 알려주길 바랐어. 이럴 땐 이렇게 하면 된다, 네가 그런 고민을 하는 건 다 무엇 때문이다 정리해 주고 항상 이끌어주는 어른이 있어줬으면 좋았겠어. 안심하도록 책임까지 져주는 사람이 말이야.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내가 상황을 회피하거나 누군가를 놓아버릴 일도 없었겠지. 혼자 남아서 감정을 몰래 뒤늦게 달랠 필요도 말이야.
홀로 버려진 길 위에서
견딜 수 없이 울고 싶은 이유를,
나도 몰래 사랑하는 까닭을
그 누구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네
종종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란 노래가 떠올라. 난 그 제목과도 같은 상태라 할 수 있었지. 스무 살을 넘긴 지 오래되었는데도 가끔 여전히 학생 같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누가 일러주기를 바라고 있었지. 멀리 왔지만 내 안쪽은 제자리와도 같았어. 결국은 울면서 삶을 헤매는 때가 아직도 있었지.
이제 나는 어디를 또 울면서 가야 할까
가족이 모두 잠든 밤 몰래 거실로 나와 TV를 보던 중학생 때가 떠올라.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를 알게 된 것도 그때였어. OST로 삽입된 영화 <버스, 정류장>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노래만큼이나 습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의 영화였어. 캄캄한 거실 속 브라운관에서 송출되는 장면들은 도시에서의 어른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해주었어.
조숙과 냉소. 방어기제 뒤편에 고여있는 여림. 나는 영화 속 재섭과 소희를 보며 그런 인상을 받았어. 다른 연령으로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며 그들은 자신 앞에 놓인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방황하고 있었지. 피상적으로 글이 가르쳐지는 국어 보습학원, 예전과 달라진 관계를 마주하게 되는 동창회 자리, 합격과 탈락이 갈리는 운전 학원 등의 풍경은 너무 사실적이었어. 난 아직 어른이 되지도 않았는데 그 영화를 보면서 (특히 어른 재섭을 보면서) 어른이 겪는 냉랭한 현실을 맛본 듯했지. 영화의 말미에서 재섭은 결국 길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고 소희는 뒤에 조용히 서 있어주었어.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생각했지. 어른도 참 아이 같구나. 어쩔 수 없이 몸만 커진 아이.
나 역시 어른이 되고 누군가에게 삶의 여러 순간순간 명확한 대처법을 일러주지 못했어. 그제야 알았지. 어른들조차 자신이 처한 상황을 온전히 장담할 수 없기에 그랬던 게 아닐까. 우린 모두 누구 하나 타인이 완벽한 방법을 일러준 적 없는 삶을 사는 중이었지.
왜 사랑은 이렇게 두려운지
그런데 하늘은 왜 높고 맑은지
왜 하루도 그댈 잊을 수 없는 건지
그 누구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네
언젠가 동네 책방 벽걸이 플레이어에 [버스, 정류장 ost] CD가 꽂혀 있는 걸 보고 "어?"라고 소리를 내뱉은 스물다섯 살의 내게 책방 주인은 반응했지. 저 영화를 봤군요. 나는 끄덕였어.
누구는 글을 쓰거나 누구는 책방을 운영하면서 확신 대신 이야기를 건네는 어른이 되어있었지. 어쩌면 같거나 닮았을 이야기.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미래를 모르는 채로 살아가고 있었어. 아이, 어른 구분짓기를 떠나서 모두가 처음 살아보는 존재인 걸 깨달은 나는 이제 누구 하나 삶을 일러주지 않았던 것에 대해 섭섭해 하기보단 이해를 한다고 말해. 내가 지켜봐온 등들도 그랬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짠해지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