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 마지막 밤
댄싱 오로라 중에서도 최고 레벨 오로라에서만 관찰할 수 있다는 핑크 오로라.
전날 아름다운 댄싱 오로라를 만났기 때문에 마지막 오로라 투어를 떠나던 밤에 사실 별다른 큰 기대 없이 터벅터벅 나갔던 우리를 당황시킨 엄청난 오로라 폭풍.
이미 우리가 다 본거라며, 오로라가 초록색이지 핑크색이 어디 있냐던 남편의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들었던 황홀한 오로라.
그 핑크빛 오로라 폭풍 이야기.
오로라는 전기입자들의 충돌에 의한 발광 현상으로 발생하는 고도에 따라 다른 색을 띄게 된다. 약 200km~300km 상공의 산소와 충돌하는 경우에는 붉은색, 100km~200km 상공의 질소와 충돌하는 경우는 녹색, 100km 부근에서 질소와 충돌하는 경우에는 핑크색을 띄게 된다. 육안에 보이는 것은 대부분 녹색이나 희뿌연 색이 주된 색이다.
- 오로라 빌리지 가이드북에서 발췌
전날 댄싱 오로라를 보게 되었을 때 나는 의아했다.
커튼처럼 일렁이는 아름다운 댄싱 오로라를 만난 사람들은 온몸에 전율이 일고, 눈물이 나고 등등.. 의 갖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들었는데, 물론 굉장히 굉장히 멋있고 경이로웠지만 나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사진 촬영까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 감정이 메말랐나.. 싶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이미 아름다운 오로라를 매일 보았기 때문에 사실 마지막 날은 큰 기대가 없었다. 오늘은 그간 별로 못 찍은 우리 셀카나 찍자며 어김없이 주섬주섬 컵라면이나 챙기고 있었다.
마지막 밤도 역시 날이 참 좋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은 점차 노을로 물들어 갔고, 지평선 너머로 해가 넘어간 뒤에도 한참 동안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오로라 빌리지엔 환한 보름달이 빛나고 있었고, 오로라의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호숫가에서 보름달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다가, 미련 없이 다이닝 홀로 향했다. 와인을 홀짝이고 오늘은 글렀다며 좀 이따 컵라면이나 먹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쯤 밖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싶어 나와봤는데 여태 우리가 봐왔던 평범한 오로라였다.
‘오로라 빌리지에 오늘 처음 온 사람들인가 보군’
우리는 짐짓 거만한 태도로 하늘을 응시했다. 첫날은 이 정도 오로라만 봐도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는데 이제는 삼각대 다리를 내리는 일조차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래도 기왕 오로라가 나타났으니 오로라 배경으로 셀카나 찍자고 오로라 빌리지 내에서 가장 인적이 드물고 빛이 없는 언덕으로 향했다. (버팔로의 언덕이었든가.., 오로라 빌리지 내의 구릉들은 저마다 이름이 있다)
몽실거리는 오로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이리저리 카메라를 옮기며 세팅값을 맞춰보고 있었다. 신랑을 세워놓고 이것저것 설정값을 바꿔보며 테스트하고 있었는데 뒷배경 오로라가 뭔가 심상치 않았다. 처음엔 내가 노출을 너무 많이 줘서 오로라가 터진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오로라가 너무 세고 너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빠!!! 뒤돌아봐!!!” 나는 소리쳤고 카메라는 팽개쳐두고 신랑 옆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엄청난 오로라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전에 본 오로라 댄싱이 우아한 왈츠였다면.. 이건 탱고? 테크노??
그리고 핑크색인가 아닌가 긴가민가할 필요도 없을 만큼 확실한 핑크빛 오로라가 춤을 추었고, 핫핑크의 뒤를 이어 오색찬란한 무지개빛으로 빛났다.
와 정말 입이 떡 벌어지고 “핑크!!! 오빠 핑크 핑크 핑크!!!!”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었다.
말을 처음 배운 신생아마냥 ‘핑크’라는 단어 외에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어서 그 말만 반복했다. 과장 좀 보태서 백번 정도는 외친 듯하다.
눈물도 찔끔 났다. (여전히 엉엉 울진 않았다.)
어느새 주변엔 사람들도 많이 몰려들었다.
온전히 오로라를 감상하기 바빠서 카메라를 조작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대충 셔터만 눌러놓고 남편 옆에 달라붙어서 하늘만 바라봤다. 말 그대로 온 하늘에 오로라가 발광중이라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 지조차 알 수 없었다.
온 하늘을 한가득 메운 오로라는 매우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요동쳤다.
꽤 긴 시간동안 화려한 빛의 움직임을 선사하던 오로라는 서서히 하늘 저 멀리 옅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