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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라테스 Nov 13. 2021

내가 김성근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

글이 안 써질 때 내가 자주 쓰는 독일어 표현이 있다. "Ich befinde mich in der Sackgasse". '직역하면 나 지금 막다른 길에 있다' 정도 되는 말인데 내가 이 말을 하면 듣는 친구는 'schon wieder?' (벌써 또?) 라며 웃는다. 그렇게 막다른 길에 다다를때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시간은 나에게 머리를 식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그들이 삶에서 발버둥 치며 얻어낸 소중한 경험을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많이 참고했던 이야기는 운동선수들의 이야기였다. 차범근, 박찬호 등, 특히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타지에서 타인으로 사는 설움을 이겨내고 정상까지 간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어떤 어려움에도 끝까지 버텨서 결국 포기하지 않고 정상의 자리에 올라 사람들이 기억하는 선수로 남았다는 점이다. 그들의 경험담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는 나에게 좋은 자극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또 한 명의 스포츠인은 김성근 감독이다. 사실 야구감독 김성근에 대한 평가는 매우 극명하게 나뉜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선수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여서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열정적인 지도자라고 평가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를 선수를 혹사시켜 선수생명을 단축시키는 구시대적 발상을 가진 감독 정도로 폄하하기도 한다. 내가 직접 곁에서 그를 겪어본 것이 아니기에 인간 김성근에 대한 평가는 함부로 할 수 없겠지만 나는 그의 프로정신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 지휘봉을 잡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과연 '만년 하위권 팀인 한화'와 '김성근의 지옥 훈련' 중 과연 누가 승리(?)할지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결국 한화와의 동행은 또다시 영 좋지 않게 끝나버렸지만 당시 한화는 기적적인 역전승들을 일궈내는 '마리한화'로 거듭났었다. 그때 내가 인상 깊게 본 것은 바로 경기를 대하는 감독 김성근의 태도였다. 야구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위닝 멘탈리티 Winning metality'이다. 승리에 익숙해진 선수들은 경기에 지고 있어도 '뒤집을 수 있다'라는 희망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지만 패배의식에 찌든 선수들은 승기를 놓치면 쉽게 포기해버리고 만다. 보통 4~5점 차 이상으로 경기 중반에 지고 있다면 감독들은 이른바 '패전 처리조'라 불리는 투수들을 내거나 주전들을 빼서 다음 경기를 준비한다. 그런데 김성근의 한화는 지고 있어도 끝까지 절대 포기를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작전을 내고 '필승조' 카드를 투입한 끝에 결국은 역전을 해 내거나, 비록 경기에선 지더라도 끝까지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끈질긴 팀이라는 이미지를 상대에게 심어주었다. 

혹자들은 특정 투수만 투입해서 그들의 팔을 갈아버린다고 하여 '킬성근'이라고 부르거나, 마치 볼드모트처럼 그의 이름을 '김성근'이 아니라 일본식 이름 '세이콘'으로 바꿔 부르며 그를 욕하기도 한다. 물론 팔꿈치나 어깨는 쓸수록 강해지는 게 아니라 닳는다는 생각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특정 투수의 선수생명을 깎아서 선수의 인생을 망친다는 의견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프로의 세계, 혹은 승부의 세계를 너무 안일하게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 나에게 '10년 동안 가늘고 길게 선수생활할래? 아니면 1-2년을 뛰더라도 깊은 인상을 주는 선수가 될래?'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 없이 후자를 선택할 것 같다. 그리고 평생 동안 운동을 해 온 프로들은 다 이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임하고 있다고 믿고 싶고, 최소한 이러한 마음으로 운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승부의 세계에서 패배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김성근은 악착같이 훈련시킨다. 만약 그가 훈련을 시키기만 하고 본인은 쉬고 있다면 그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노년의 나이에도 선수들 펑고 (공을 쳐서 잡는 수비 훈련)를 직접 치며 지도한다. 펑고를 치는 게 받는 것만큼이나 힘든데 그 나이에 그렇게 선수들을 훈련시킨다는 열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영미 기자의 유튜브 채널에서 김성근 감독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너무 감명 깊게 봐서 그 영상을 캡처해 두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산이 높을수록 얼마나 고통스러운 거야. 그거를 이겨낸 사람이 정상 간 거야. 산은 멀리서 보면 낮아 가까이 올수록 높아. 아, 안 된다 하면 끝난 거야. 아 힘들어 이거를 이겨야 가는 거야. 그러면 생과 사가 걸려있다고. 미끄러지면 죽는 거 아냐. 그러니까 가는 거야.  

김성근 감독의 이 인터뷰는 마치 슬램덩크의 안 감독이 정대만에게 했던 "포기하는 순간 시합 종료예요"라는 말처럼 나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되는 인터뷰였다. 

얼마 전 김성근 감독이 훈련지도 중 공을 얼굴에 맞아 병원에 실려갔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 이후에 그는 별거 아니라며 다시 훈련을 이어갔다. 그의 프로의식을 보며, 직업이 학생이라 "프로공부러 여야만" 하는 나는 큰 자극을 받는다. 


*사진 출처: 이영미 기자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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