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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라테스 Oct 10. 2023

낮에는 학생, 밤에는 선생

어느 유학생의 이중생활

1. 어린 시절 제 꿈은 국어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국어라는 과목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제가 선생이 되어 어떤 과목을 맡는다면 

국어 정도가 그나마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말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이라는 단어가 글자 그대로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듯이

내가 걸어온 길을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덜 겪도록 돕는 일,

그 일이 제게는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일로 비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에 대한 꿈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산산이 부서지게 됩니다.

제가 다닌 학교는 사립고등학교였는데 

지금 시대에는 용인되지 않는 온갖 폭력과 강압이 넘쳐나는 곳이었습니다.

입학 전에 O.T. 를 가서 '다 나 까'로 말하는 법과 경례하는 법을 배우는 학교였지요.

매주 수학과 영어 쪽지 시험을 봐서 성적이 지난주보다 떨어지면

하키채로 엉덩이를 맞았습니다.

하키채는 그나마 나았는데

왜냐하면 선생들이 기분이 나쁘면 주먹으로 아이들의 '아구창'을 날리던 학교였기 때문입니다.

거짓말 같지만 더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각하는 아이들은 담임선생에게 김밥을 갖다 바쳐야 했고 

저는 새 보온병을 담임에게 뺏기기도 했습니다.

가끔 담임이 학생의 돈을 뺐는 일도 있었고

교직원 식당에 돈 내면서 밥 먹기 아깝다고

학생들 남은 급식을 국자채로 추잡하게 처먹던 그런 담임 밑에서 1학년을 보냈습니다.

방학 때 여행을 가서 자율학습을 3일 빠진다고 하니

반 아이들 앞에서 

'이런 새끼는 왕따를 당해야 한다'

라며 쌍욕을 하던 선생이었습니다.

아침 7시에 등교해서 밤 10시까지 이런 학교에 남아있다 보니

선생이고 뭐고 학교란 곳에 정이 떨어져 버리더군요

그래서 선생이 되겠다는 꿈은 어느새 잊혔습니다.


2. 유학생 신분으로 알바를 구하기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학생비자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이상을 일하면 거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차피 뭔가 일을 할 거면

가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한글학교에 지원해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유튜브나 티브이에 한글학교가 나오면 꽤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해외에서 자신의 모국어로 돈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글학교의 교사자리가 꽤나 매력적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일단 한글학교 교사는 직업이 될 수 없습니다.

직업은 삶을 영위할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정도로 돈을 많이 주는 한글학교는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최저시급이라도 맞춰주는 곳이 있다면 감사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해외의 한글학교는 이름이 '학교'이고 '학교'로 등록되긴 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학교와는 매우 다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한글학교는 학교보다는 

주말에만 운영되는 '임시 보육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글을 공부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뿌리가 같은 아이들을 함께하게하는 공간이지요.

그리고 보통 한글학교는 아이의 의지가 아니라 부모의 의지로 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느끼지 못합니다.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학교 친구들은 주말에 다 놀러 가는데 

왜 쓰지도 않는 한국어를 배우러 주말에 학교를 가야 한단 말입니까?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저는 한글학교에 근무하는 약 5년의 시간 동안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해외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가르친다는 일이 

참 보람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3. 하지만 어른의 사정으로 한글학교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아름다운 이별, 즉 끝을 잘 맺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건 정말 뜻대로 되지 않더군요.

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나서도 

뭔가 제 전공이나 미래와 관련 없는 일보다는

앞으로 할 일을 연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제 전공에 대한 이야기를 파독간호사로 오셨던 분들의 문화교실에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10년이나 살았던 저 역시 유학생 중에는 꽤나 오래 버텼다고 할 수 있지만

이 분들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입니다.

제 인생보다 긴 세월을 타국에서 보내셨으니 그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요?

다들 어찌나 열정적이고 집중해서 수업을 들으시는지

그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고 있으면

제가 앞으로의 인생에서 이 정도로 열정적인 학생(?)들을 또 가르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제 할머니와 동년배인 분들에게 선생님 소리를 듣는 것은 참 뜻깊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분들은 저를 선생님이라 부르시지만, 사실 제가 이 분들께 배우는 게 더 많습니다.


4. 올해부터는 시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시장의 이름이 찍힌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는 건 처음이라 

이것도 삶에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경험이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대부분의 학생은 직장인입니다.

일이 끝나고 공부를 하러 자기 돈을 내고 오는 학생들이라니

얼마나 열정적 일지 상상이 가시나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는 아직 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 학생들은 본인의 학교공부도 바쁜데 학교가 끝나고 또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합니다.

그들의 열정에 보답하기 위해 

저 역시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고 열정을 쏟아서 수업을 합니다. 

낮에는 학교에서 끝나지 않는 학업으로 힘이 빠지다가도

밤에는 선생으로 수업을 마치고 오면 

'내가 살아 있구나'라는 생각이 나면서 기운이 차오르는 희한한 경험을 합니다.

누군가가 어려워하는 것을 내가 설명해서 그 어려움을 해결할 때면

'아 나도 아직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자존감의 든든한 버팀목이 됩니다.


학생과 선생이라는 대비되는 자아가

오늘도 저를 더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낮에는 학생이지만

밤에는 선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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