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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크라테스 Apr 11. 2024

오늘이 마지막이라 말하는 학생을 보는 선생의 마음

"선생님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 될 것 같아요"

P 씨가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주변의 학생들이 물었다.

"왜?"

그러자 P 씨는 회사나 일상에서 너무 큰 스트레스들이 있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한다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P 씨에게 나는 

"그동안 열심히 공부해 줘서 고마워요"

라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P 씨는 나에게로 와서 그동안 감사했다며 막걸리를 내밀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막걸리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독일의 폴크스호크슐레 Volkshochschule는 우리나라에는 딱히 1:1로 대응하는 개념이 없는 것 같다. 시에서 운영하며 다양한 '시민강좌'들이 개설되어 있기에 그냥 '시민학교'정도로 번역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곳의 수업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외국어 수업'이다. 입시나 시험등을 목표로 하는 일반 어학원에 비해 시민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사람들의 특징은 '점수'나 '자격증' 같은 특정한 목표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특정 목표가 없이 자기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공부하다 보니 수업 태도가 매우 좋다. 질문도 많이 하고 대부분이 수업에 활발히 참여하는 편이다. 학생들은 이것저것 질문을 하면서 '질문이 너무 많아 미안하다'라고 나와 다른 학생들에게 사과를 하는데 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질문을 많이 한다는 것만큼 고마운 일이 없다. 그들이 어려워하는 점을 내 설명으로 인해 이해할 때 큰 보람을 느끼고, 답이 없는 공부만 지속하는 학생인 내가 누군가에게 쓸 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행복해지기도 한다. 


시민학교는 누구에게나 열려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수업에 참여한다. 독일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독일인, 학교를 다니는 아이서부터 은퇴를 하고 연금을 받는 분들까지 남녀노소 매우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지금 맡고 있는 수업은 어느덧 3학기 째인데, 이번에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말한 P 씨는 첫 학기부터 내 수업을 열정적으로 들었던 학생이었다. 항상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질문도 많이 하고 같은 반 학생들에게 농담도 잘 건네는, 그런 역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말해보자면 반장과도 같은 학생이었다. 그러던 P 씨가 수업을 더 이상 듣지 못하겠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매우 슬프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삶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그리고 그 스트레스를 견뎌내면서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는 또 다른 스트레스를 너무나 절실히 공감하는 유학생 신분인 나는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내 수업을 따라와 준 P 씨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과 돈을 투자에서 무언가를, 심지어 꼭 하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내가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이었다면,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어서 회사가 끝난 후에 수업을 듣고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를 더 할 수 있었을까? 아마 힘들었을 것 같다. 


수업을 진행하는 나 같은 사람을 독일어로 Kursleiter라고 한다. 수업을 이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수업을 이끄는 일은 그만큼 책임감도 따르지만 타인의 어려움을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뿌듯하다.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는 꾸역꾸역 버텨낼 정도로 심하다. 그러나 수업을 이끄는 일을 한다는 것은 부담이 되기보다 내 마음을 되려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아무리 힘들어도 수업을 하면 힘이 빠지기보다 힘을 얻고 온다. 극심한 압박감에서 살아가는 유학생인 나는, 결국 다음 학기에는 2개의 수업을 더 진행하기로 했다. 일을 하면서 기쁨을 얻는다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라고 한다면,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내 적성에 맞는 일 같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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