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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Aug 31. 2023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와박수근, 그리고나

[나목] 박완서

소설가 박완서 선생과 나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독서모임을 위해 그녀의 마지막 작품인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읽고 있었다. 그녀의 삶이 곳곳에 녹아 있는 수필은 소설과는 또 달랐다. 마당이 있는 집과 애착을 가지고 가꾸는 정원에 대해 담담하게 얘기를 들려주는가 하면 아들 읽은 슬픔을 다룬 글에서는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슬픔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견디는 거다’라고 했던 그녀의 말이 다시금 떠오르기도 했다. 이 외에도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 책과 영화에 관한 그녀만의 감상 등이 담담하게 녹아 있는 글을 아껴가며 읽었다. 이제 마지막 작품, 하나만 남은 상황이었다. 책장을 넘기니 <보석처럼 빛나던 나무와 여인>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별생각 없이 첫 페이지를 펼친 순간 내 눈은 커졌고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오래전 강원도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강원도의 겨울은 춥고 혹독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는 마음까지 얼어붙게 했고 위협적인 바람소리는 휑한 가슴으로 사정없이 휘몰아쳤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적막한 시골 생활은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고즈넉하다 못해 적막한 고요가 내려앉으면 평소에는 들리지도 않는 작은 소음마저 천둥처럼 귀를 울렸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겨울 속에서 나날이 시들어 가고 있던 그때 만난 작품이 박완서의 <나목>이었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나목>을 읽고 또 읽던 어느 날 박수근 미술관이 개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 없어 허기진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을 한편에 자리 잡은 미술관은 현대적인 건축물임에도 위화감 없이 고즈넉한 마을과 잘 어울렸다. 규모도 꽤 커서 전시관도 여러 개가 있었다. 박수근의 작품 앞에 섰다. 독특한 표현의 질감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다.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자, 동생을 업고 있는 소녀, 아이를 업고 우물에서 물을 긷는 아낙, 그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목’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평범한 사람들의 선한 모습은 어떤 심오한 주제보다 마음을 흔들었다. 겨우 지탱하고 있던 마음의 둑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어떤 전시실 앞에서 다시 발길을 멈추었다. 박수근 화백과 박완서 작가와의 인연을 설명한 자료가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소설 <나목> 속의 화가는 박수근 화백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나는 뒤늦게 인생의 큰 비밀 하나를 알아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소설가 박완서는 서울대학교 문리 대학에 입학해 청춘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학내에서 몇 안 되는 여대생이었는 데다 당시만 해도 문과대의 입지는 상아탑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의미였기에 그녀의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하지만 작가가 대학에 들어간 해는 하필 1950년이었다. 그 해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그녀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가족은 오빠를 잃고 갖은 고생을 하며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그녀는 학업을 포기하고 미군부대 PX에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짧은 영어로 미군병사를 설득해서 초상화를 그리도록 하는 게 그녀의 일이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중에 박수근이 있었다. 갑자기 닥친 불행 앞에서 자신에 대한 연민과 세상을 향한 분노로 날이 서 있던 작가는 ‘간판이나 그리는’ 화가들을 대놓고 무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박수근의 인품과 그의 작품 세계를 알게 되고 가까워진다. 



세계적인 화가와 한 시대를 풍미한 소설가가 콤비가 되어 미군들에게 호객 행위를 하고 스카프나 손수건 한 귀퉁이에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했다는 사실은 한 편의 희비극처럼 느껴졌다. 이후 결혼을 하고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작가는 어느 날 박수근 화백의 유고전이 열린 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전시장을 찾은 작가는 화가의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무른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차가운 윗목에서 언 손을 비비가며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한다. 그녀 나이 마흔 일  때의 일이다. 등단작 <나목>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후로 틈만 나면 미술관으로 향했다. 모진 풍파를 견디며 묵묵히 살아가는 선한 인상의 사람들을 보며 나는 위로받았다. 비록 미군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을지언정 예술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던 화가와 나목의 시기를 묵묵히 견디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작가는 ‘나목’을 자신과 동일시 했던 건 아니었을까. 강원도에서 지난한 겨울을 지나고 있던 한 여자에게도 ‘나목’은 겹쳐지고 다가올 봄을 예감할 수 있었다. 




박완서를 소설가의 길로 이끈 박수근 유작전 이후 45년의 시간이 흐른 2010년 갤러리 현대에서 박수근 45주기 전시가 다시 열렸다. 박완서는 다시 그의 작품 앞에 섰고 그녀가 특히 오래 머물렀던 그림은  <나무와 여인>이었다. 이후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보석처럼 빛나던 나무와 여인’이란 한 편의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얼마 전 읽은 그녀의 마지막 작품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에 실린 마지막 글이다. 박완서의 작가 생활의 시작과 끝에는 박수근이 있었으니 인연치고는 묘하다. 쓸데없는 상상력이 몽글몽글 피어오를 정도로…


2011년 1월, 박완서 작가의 타계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 현 하나가 뚝 끊어진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내 멋대로 이어왔던 작가와의 인연이 끊어졌다는데서 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을까. 책장에서 그녀의 책을 꺼내 손바닥으로 어루만졌다. 묵직한 슬픔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강원도의 모진 겨울과 조그맣고 쓸쓸한 내 등도 떠올랐다. 한 시절을 의지했던 작가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깊은 슬픔을 몰고 왔다. 한겨울 나목같이 보잘것없던 시절에 그녀의 작품을 만났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박완서 작가가 박수근 화백을 통해 또 다른 삶에의 용기를 냈듯이 박완서 작가를 통해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 이승에서의 인연을 모두 내려놓은 그녀는 홀가분한 나목이 되어 훨훨 날아갔다. 그녀의 작품을 하나씩 다시 읽는 것으로 나만의 애도를 했던 기억이 있다. 



강원도를 떠나 온 후 수시로 박수근 화백의 전시회를 찾아다녔다. 가을이 한창인 어느 날에는 부암동에서 전시회가 있었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전시장에서 겨울을 닮은 화가의 그림을 보며 생전 처음 그림을 사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 잡혔다. 결국 그날 나는 생애 처음으로 그림을 구매했다. 많은 작품 중에 내가 택한 작품은 <나무와 여인>이었다. 맞다, 소설가 박완서가 가장 아꼈던 박수근 화백의 작품이다. 그리고 작가의 마지막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왜 우리(?) 세 사람의 인연 운운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나무와 여인>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고개를 들면 바로 보이는 곳에 걸려 있다. 그림을 볼 때마다 강원도에서 보냈던 찬란했지만 슬픈 젊은 날이 떠오른다.


우연찮게 그녀의 마지막 작품을 읽게 되었고 오래전 기억이 떠올라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소회를 풀어보았다. 독서모임을 앞두고 매긴 나만의 별점은 5점 만점에 10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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