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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Apr 09. 2024

[필사와 단상] 버지니아 울프, <집안의 천사죽이기>


필사: 19세기에도 여성은 거의 전적으로 집에서, 자신의 감정속에서만 살았다. 19세기 소설들은 그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쓴 여성들이 자신의 성별 때문에 어떤 종류의 경험들에서는 배제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작가의 경험이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가령 콘래드의 소설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만일 그가 선원이 될 수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또는 톨스토이에게서 그가 군인으로서 전쟁에 대해 아는 것, 부유한 청년으로서 교육을 받고 온갖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인생과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을 제거한다면 <전쟁과 평화>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질 것이다. (P. 54)





단상: 소설가 박완서는 한때 ‘소시민적 내면심리를주로 묘사하는 작가’라는 점 등이 단점으로 평가되어 혹독하게 비판 받았다. 당시 시대상황에 비추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어려웠고 경험은 제한적이었다. 남성에게 의존해 삶을 꾸려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아무리 배운 여성이라고 해도 그녀의 경험치가 남성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울프의 말대로 작가의 경험이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비추어 봐도 그렇다. 조셉 콘래드나 톨스토이와 마찬가지로 황석영 작가는 월남전에 참전했고 이를 바탕으로 <무기의 그늘>을 완성했다. 하지만 박완서 작가는 전쟁에 나간 적도 없었고 제대로 된 조직에서 직장생활을 한 경험도 없었다. 이런 한계로 인해 그녀의 작품 세계는 ‘소시민적’ 경향에 머물렀다고 비판 받았다. 






하지만 당시 문단의 주류 세력역시 남성이었음을 기억하면 이런 비판 역시 주로 남성들의 입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소시민적 내면심리’의 대칭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데올로기나 사회비판이 담긴 거대담론이 있을 것이고 이것이 보다 중요한 소설의 제재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데올로기라는 거대 담론에 집착한 결과는 무수한 생명의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박완서 작가는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정신적으로 황폐화되어 가는 소시민의 삶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모순적인 사회구조, 인간의 실존까지, 소설이 탐구해야 할 영역을 훌륭하게 담아냈다. 소시민적 삶이 소설의 제재로 경시되어야 할 이유는 없음을 그녀는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거대담론 역시 더 나은 삶을 위한 고민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그들의 비판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도 알 수 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이 여성작가들의 경험을 제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한 환경 내에서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여성작가들이 있었음을 울프는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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